최근 암호화폐 가격이 연일 폭락하면서 많은 사람이 우려하고 있다. 암호화폐의 장밋빛 미래를 믿어 의심치 않던 필자를 비롯한 관련 업계 사람들조차 암호화폐와 블록체인 세상에 종말이 오는 것은 아닌가 하는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 일반 대중이 느끼는 공포는 더 클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블록체인은 금융권에 인터넷이나 스마트폰보다 더 강력한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2세대 블록체인 이더리움에 도입된 '스마트 계약'에 주목해야 한다. 스마트 계약은 제3자 개입 없이 거래 조건 이행 시 개인과 개인 간 계약이 자동 체결되는 기술이다. 그동안 수많은 공증과 보증이 필요로 해 온 것에 비하면 효율성이 높고 안전하다. 21세기 디지털 시대에서도 도장을 들고 계약서를 작성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혹자는 스마트 계약이 뭐 그리 대단하냐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우리나라처럼 금융 시스템이 잘 갖춰진 나라에서는 효용성을 느끼지 못할 수 있다. 그러나 금융 인프라가 잘 갖춰지지 않은 국가에서나 계약의 무결함 검증이 어려운 경우 국가 간 거래를 수반하는 계약에서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
몇 년 전 국내 모 대기업의 본사 재무팀 대리가 160억원 넘는 회사 돈을 횡령한 사건이 있었다. 외국에 친척 명의로 유령회사를 차려 놓고 계약서와 송장을 조작한 것이다. 시스템이 잘 갖춰진 대기업에서조차 해외 업체와의 계약이나 거래 검증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 준 사례다. 만약 해당 대기업에서도 장부 조작이 불가능한 스마트 계약을 도입했다면 결과는 달랐을 것이다.
스마트 계약은 개인간(P2P) 금융이나 핀테크 산업 발전도 촉진시킬 것으로 전망된다. P2P 금융이나 핀테크는 그동안 금융 산업에서 당연시돼 온 공증·인지세와 매몰비용이라는 한계 극복을 위해 태동했다. 그러나 거래 계약의 무결함을 검증하고 실제 자금 흐름의 모니터링에 제약이 있어 발전 속도는 더뎠다.
블록체인을 도입해서 누구나 원장을 들여다볼 수 있고 스마트 계약으로 무결함 증명이 가능해진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더 많은 사람이 참여하면서도 거래와 계약이 더 안전하게 체결되는 토대가 마련된다.
이미 국내외에서 P2P 금융이나 핀테크에 블록체인을 접목시키는 실험을 하고 있다. P2P금융 및 핀테크 업체가 직접 암호화폐공개(ICO)를 통해 새로운 P2P금융·핀테크 생태계를 구축하는 데 나선 것이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는 강력한 규제와 구조 문제로 새로운 변화와 그에 따르는 국가 경제 발전의 기회가 봉쇄돼 있다. 1인당 P2P 부동산 투자 상한액을 1000만원으로 제한했으며, 지난해 9월 ICO를 전면 금지했다. 국내 블록체인 기업들은 ICO를 하기 위해선 해외 법인을 설립할 수밖에 없었다. 이 덕분에 ICO 친화 정책을 펼친 지브롤터나 싱가포르, 스위스, 몰타, 에스토니아 등에는 ICO 자본이 대거 유입돼 때 아닌 호황을 누리고 있다.
모든 변화와 혁신에는 시행착오와 문제가 수반된다. 블록체인과 암호화폐 기술 또한 그렇다. 당장의 불완전성 때문에 원천 금지하는 대신 적극 제도권 안으로 끌어들여야 한다. 적절한 규제와 실험으로 양성화하고 발전시켜서 성장 동력으로 키워 가는 태도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승행 초대 한국 P2P금융협회장 겸 미드레이트 대표 jakelee@midtrad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