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고급차 브랜드 벤틀리는 롤스로이스, 마이바흐와 함께 세계 3대 명차로 불린다. 벤테이가는 벤틀리가 시대의 흐름을 반영해 개발한 첫 번째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이다.
지구상에서 가장 빠르고 강력한 럭셔리 SUV를 목표로 개발된 벤테이가를 실제 레이싱 대회가 열리는 용인 스피드웨이 서킷에서 시승했다. 12기통 엔진을 탑재한 벤테이가는 강력한 힘을 바탕으로 서킷에서 기대 이상의 압도적인 달리기 실력을 보여줬다.
외관은 벤틀리 디자인의 정수를 보여준다. 전면은 동그란 전조등과 커다란 크롬 그릴이 시선을 압도한다. 벤틀리 가문의 일원임을 나타내는 상징적인 디자인 요소다.
5.1m에 달하는 전장과 2m에 달하는 전폭을 지녔지만, 적절한 비례를 통해 SUV임에도 안정적인 느낌이 든다. 측면에선 22인치 휠과 폭이 285㎜에 달하는 고성능 타이어가 눈길을 끈다. 차체를 더 역동적으로 보이게 하며, 노면 접지력을 높인다.
실내는 럭셔리 SUV라는 수식어에 걸맞게 호화롭다. 곳곳을 최고급 소가죽과 나무로 장식했다. 4인승으로 구성된 독립형 시트는 어느 자리에 앉아도 편안하게 몸을 감싼다. 시트와 도어 트림을 마감한 벤틀리 고유 다이아몬드 퀼팅도 인상적이다.
뒷좌석은 18개 방향으로 조절되는 시트 조절 기능과 마사지 기능 풋레스트가 제공된다. 최고급 가죽으로 뒤덮은 리어 콘솔을 열면 컵홀더와 수납공간, USB 충전 포트 등 다양한 기능이 숨겨져 있다. 지붕 전체를 덮을 만큼 넓은 파노라마 선루프는 시원한 개방감을 선사한다. 스티어링 휠 등 일부 부품은 아우디 등과 공유한다. 벤틀리가 폭스바겐그룹 자회사라 가능한 일이다.
시동을 걸면 우렁찬 엔진음이 운전자를 반긴다. 벤테이가는 배기량이 6.0ℓ에 달하는 트윈 터보 12기통 가솔린 엔진을 탑재했다. 높은 배기량 만큼 출력과 토크도 강력하다. 최고출력은 608마력, 최대토크는 91.8㎏·m에 이른다.
넘치는 힘은 대배기량 차량의 매력적인 요소다. 시승 구간이 제한적이라 높은 속도를 내진 못했지만, 서킷을 도는 동안 가속 페달의 20~30%만을 사용했을 만큼 여유로운 주행 감각이 돋보였다. 저속부터 고속 영역까지 어떤 구간에서도 가속 페달에 힘을 주면 원하는 만큼 신속한 가속이 가능했다. 제원상 시속 100㎞까지 가속 시간은 4.1초, 최고속도는 시속 301㎞이다.
엔진과 결합하는 8단 자동변속기는 일반적인 주행에서 부드럽게 변속을 진행하지만, 스포츠 모드를 설정하자 돌변했다. 변속 시점을 늦추고 마치 수동변속기처럼 변속 체결감을 높여 빠르게 속도를 올린다. 이 변속기는 5~8단에서 운전자가 가속 페달에서 발을 떼면 스스로 토크 컨버터를 열고 엔진을 멈춰 운동 에너지만으로 탄성 주행을 유도한다. 가속 페달을 밟거나 내리막에서 속도 향상이 감지되면 변속기는 자동으로 변속을 진행한다.
벤테이가에 처음 도입된 다이내믹 라이드 시스템은 48V 시스템을 활용하는 전자식 액티브 롤링 제어 기술이다. 무게 중심이 높은 대형 차량에 적합한 이 시스템은 코너링 시 롤링을 유발하는 횡력에 대응하고 타이어 접지력을 높여 안정성과 승차감을 제공한다.
벤테이가는 전자식 파워 스티어링(EPAS)를 채택해 저속에서 가볍고 고속에서 무게감 있는 조향 감각을 갖췄다. 다만 서킷과 같이 다소 과격한 주행에서는 더 날렵하고 묵직한 설정으로 운전의 재미를 높였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서킷이라는 제한된 공간의 시승에서 벤테이가의 모든 진가를 느끼긴 어려웠다. 하지만 벤틀리가 만든 SUV가 고가의 가격에도 높은 판매고를 올리고 있는 이유는 찾을 수 있었다. 그만큼 멋스럽고 편안하며 강력했다.
벤테이가 가격은 기본형 기준 3억4000만원부터 시작된다. 기본형에 벤틀리가 제공하는 개인 맞춤 사양인 뮬리너 비즈포크 시스템을 적용해 자신이 원하는 벤테이가를 구매할 수 있다. 벤테이가는 지난 1년간 국내에서만 130여대가 판매됐다.
정치연 자동차 전문기자 chiye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