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R&D 지원받은 中企 '오히려 역성장'…“특허 늘린다고 기업 안 큰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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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로부터 연구개발(R&D)을 지원받은 중소기업은 그렇지 않은 기업보다 성장성이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원 대상 선정방식에 문제가 있어 정부가 오히려 역성장이 예상되는 중소기업을 지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특허·논문이 아닌 부가가치 창출 등 경제성과를 궁극적 평가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성호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12일 '중소기업 R&D 지원의 정책효과와 개선방안' 보고서에서 이런 분석을 내놨다.

정부의 중소기업 대상 R&D 보조금은 연 3조원에 육박,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미국에 이어 2위 규모다. 이 연구위원은 정부 지원이 R&D 투자, 기술역량 제고에 기여했지만 부가가치·매출·영업이익 증대에는 실패했다고 평가했다.

정부 R&D 지원을 받은 중소기업은 지원 2~3년 후 그렇지 않은 기업보다 오히려 성장성이 크게 떨어졌다. 지식재산권 등록 증가율만 우월했고, 영업이익 등은 역성장 했다는 분석이다.

이 연구위원은 “정부 지원이 민간 투자의 마중물 역할에는 성공했지만 막상 수혜기업의 운영성과 개선으로는 귀결되지 못 했다”고 말했다.

정부의 지원 대상 선정방식을 원인으로 지적했다. 중소기업의 기술력을 중심으로 경직적·형식적 평가를 한다는 설명이다. 이미 기술력이 높은 기업은 기술력을 더 높일 여력이 크지 않은데도 지원하고, 성과평가 기준이 특허 획득 등에 집중돼 '장롱특허'만 늘고 있다고 지적했다.

중소기업과 달리 대기업은 특허 양적 확대가 출원·갱신 비용 증가, 연구역량 낭비로 이어진다고 판단하고 R&D 부서의 평가체계를 전환해 특허 출원이 오히려 줄었다고 설명했다. 중소기업 특허 출원은 2013년 3만4547건에서 2016년 4만6813건으로 늘었지만, 대기업은 같은 기간 4만8045건에서 3만8800건으로 줄었다.

이 연구위원은 “한 해 3개 이상 특허를 등록한 기업은 부가가치가 평균적으로 역성장 하는 경향이 나타났다”며 “특허 획득이 기업 성장에 저절로 기여할 것이라는 순진한 가정은 폐기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기술 성과보다 부가가치 등 경제 성과를 궁극적 목표로 설정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를 통해 개발한 예측모형으로 수혜자를 선정하면 부가가치 증진 효과를 2배 이상 확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수혜자 선정에서 소외됐던 소기업에 대한 소액 지원금을 제공하는 정책실험도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이 연구위원은 국내 22개 R&D 관리 전문기관이 연간 2조원 이상(2016년 기준)을 운영비로 사용하며, 이는 국가 R&D 예산의 10%가 넘는 수준이라는 점도 지적했다.

이 연구위원은 “정부는 수혜자 선정 업무를 객관적 알고리즘에 상당 부분 위임해 시혜자·관리자 역할에서 탈피해 조력자 역할로 변신해야 한다”며 “후보·선정 기업이 경험이 부족해도 연구를 체계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제안서 작성 단계부터 필요한 자문을 제공하는 역할에 전념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선일 경제정책 기자 ysi@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