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쪼그라든 R&D 지원...“글로벌 시장 고려해 지속 늘려야”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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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나라 연구개발(R&D) 수준은 국가 경쟁력과 직결된다. 우리나라가 정보통신기술(ICT) 강국으로 자리매김 한 배경에도 정부·민간의 R&D 경쟁력 제고 노력이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 도래로 R&D 중요성은 한층 커졌다. 문재인 정부도 혁신성장 주요 수단으로 R&D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오히려 R&D 조세·예산 지원은 뒷걸음질 치고 있다. 지출 증가보다는 효율화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업계는 지출 효율화가 지원 축소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치열해지는 글로벌 경쟁, 선진국의 누적된 R&D 투자, 중국의 빠른 성장 등을 고려하면 아직 우리나라는 갈 길이 멀다는 설명이다.

◇R&D 예산 증가율 '뚝'

과거 R&D 예산은 다른 어떤 부문보다 빠른 속도로 늘었다. 과학기술 경쟁력을 끌어올리겠다는 정부의 강한 의지가 반영됐다.

통계청에 따르면 1998년 R&D 예산은 3조3000억원이었다. 이후 매년 적게는 6.6%, 많게는 36.6%까지 증가해 2008년 처음 10조원대(11조1000억원)를 돌파했다. 그러나 2011년 증가율이 10% 아래(8.7%)로 떨어진 후 연간 5~7% 증가율에 머물다 2016년, 2017년에 1%대로 급락했다. 문재인 정부가 직접 짠 올해 예산에서도 R&D 부문은 1.1% 증가에 그쳤다.

더 큰 문제는 앞으로다. 2008년 처음 10조원대를 기록한 R&D 예산은 13년이 지난 2021년에야 20조원을 기록할 전망이다. 기획재정부가 5년 동안 연평균 R&D 예산 증가율을 0.7%로 제시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의 적극적 재정지출 성향을 고려하면 R&D 부문은 사실상 감소로 봐야 한다는 게 업계 지적이다. 정부는 5년 동안 전체 예산을 총 100조원 늘릴 계획이다. 전체 예산은 2017년 처음 400조원을 돌파했고, 2021년 500조원을 넘어선다.

업계 관계자는 “R&D 예산은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 빠르게 늘다가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거치며 속도가 떨어졌다”며 “문 정부가 들어선 후 R&D 예산 확대에 기대가 높았지만 지난 정부와 비슷한 기조를 유지하면서 업계 실망이 컸다”고 말했다.

정부가 R&D 예산 증가율을 낮춘 데에는 '그동안 많이 투자했지만 성과는 부족했다'는 인식이 바탕이 됐다.

기획재정부는 국가재정운용계획에서 “경제성장률이 둔화되고 복지수요가 증대되는 등 경제·사회적 여건 변화로 정부와 기업의 R&D 증가율은 둔화되고 있다”며 “정부 재정 지출을 통한 양적 R&D 투자 노력은 한계에 이르렀다”고 밝혔다.

기재부에 따르면 2015년 기준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총 R&D 투자 비중은 4.23%로 세계 2위 수준이다. 절대 규모는 742억달러로 세계 5위다. 이를 바탕으로 2011~2015년 SCI 논문 건수가 연평균 6.0% 증가하는 등 R&D의 양적 성장을 이뤘다고 분석했다.

반면 질적 성과는 낮다는 지적이다.

기재부는 “우리나라의 논문 1편당 평균 피인용 횟수는 0.58회로 세계 평균인 0.53회보다 낮다”며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의 2016년 기준 과학기술경쟁력은 전년대비 2단계 하락한 세계 8위”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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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예결위도 “재검토해야”…줄어드는 조세지원에 업계 우려↑

R&D 예산은 지출 효율화가 필요하다는데 업계도 공감한다. 성과 제고에 초점을 맞춘 정부의 각종 R&D 혁신 정책도 비교적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지출 효율화 때문에 지원 규모를 축소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국회 예산결산위원회도 정부의 낮은 R&D 예산 증가율에 우려를 나타냈다.

예결위는 “향후 5년간 정부 총지출 증가율보다 R&D 재정투자 증가율을 낮은 수준으로 유지하려는 정책의 적정성을 재검토해야 한다”며 “국제 경제·산업 트렌드가 급변하는 가운데 선진국은 기술혁신을 토대로 경쟁력 강화에 주력하고 있다는 점 등을 고려해야 한다. 적정한 투자규모에 대한 검토, R&D 효율화 방안 모색이 요구된다”고 지적했다.

예산만 문제가 아니다. R&D에 제공하는 조세지원도 지속 줄고 있어 업계 우려가 크다.

정부는 중소기업·R&D 등 특정 분야에 조세감면·비과세·소득공제·세액공제 등으로 조세지원을 하고 있다. 정부가 기업 세금을 덜 거두는 것이라 지출을 늘리는 것과 다를 바 없어 '조세지출'로 정의한다.

R&D 부문 조세지원은 최근 5년 동안 감소 추세다. 문 정부 들어서도 이런 기조는 이어졌다. 예산과 마찬가지로 전체 조세지원은 빠르게 늘어나는데 R&D 부문은 오히려 감소하는 모습이다.

2013년 R&D 부문 조세지원 규모는 3조4983억원에 달했다. 전체 조세지원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0.3%였다. 그러나 올해는 2조6709억원으로 5년 전보다 약 8000억원 적은 규모다. 비중도 6.71%에 불과하다.

전체 조세지원 규모는 2013년 33조8350억원에서 올해 39조8053억원으로 약 6조원 늘었는데 R&D 부문은 오히려 줄었다. 같은 기간 분야별로 중소기업(1조5202억원→2조6791억원), 고용지원(505억원→6421억원) 등이 크게 늘어난 것과 대조된다.

업계는 올해와 내년이 더 불안하다고 지적했다. 일몰이 예정된 R&D 조세지원 제도가 많기 때문이다. 정부 분류에 따른 R&D 부문 조세지원 제도는 총 14개로, 이 가운데 9개가 올해나 내년 일몰이 예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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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화되는 글로벌 경쟁…R&D 지원 늘려야

한국경제연구원은 '우리나라 R&D 활동과 조세지원제도의 문제점' 보고서에서 우리 정부의 R&D 조세지원이 부족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한경연은 “세계 주요국의 혁신지원 추세와 달리 우리나라만 R&D 조세유인을 낮추는 것은 통계적 착시에 의한 역주행 측면이 강해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한경연에 따르면 GDP 대비 R&D 조세지원 규모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우리나라가 프랑스 다음으로 높다. 그러나 민간의 R&D 투자결정 의사에 중요한 기업 R&D 투자당 조세유인 규모는 우리나라가 7.4%로, 캐나다(21%)·프랑스(18%)·네덜란드(14%) 등보다 낮다.

한경연은 “GDP 기준 통계에 근거해 민간 R&D 규모와 조세지원은 이미 충분하다고 보는 것은 통계적 착시”라며 “우리나라가 선진 경쟁국 대비 R&D 조세지원을 더 낮게 가져가야 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했다.

선진국과 비교해 R&D 지원 규모는 아직 충분한 수준이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해 과학기술정보통신부(당시 미래창조과학부)는 '우리나라 과학기술 주요 지표 한눈에 보기'에서 '누적 R&D 격차'를 언급했다.

과기부는 “미국, 일본 등은 1970년대부터 GDP 대비 2% 이상을 R&D에 투자하고 있다”며 “한국은 1994년 2%에 도달했고, 최근 R&D 투자를 확대하고 있지만 선진국과 누적 R&D 격차가 크다”고 밝혔다.

과기부는 또 중국과 우리나라를 비교하며 “중국은 1990년대 후반 이후 R&D 투자를 급속도로 확대해 2001년 우리나라를 추월했다”며 “최근 그 격차는 더욱 확대됐다”고 설명했다.

업계는 정부가 R&D 지출 효율화와 지원 확대를 동시 추진할 것을 당부했다. 4차 산업혁명 도래로 글로벌 경쟁이 심화되는 만큼 국가 R&D 경쟁력을 지속 높여가야 한다는 지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최근 세수 확대 등으로 재정여건이 비교적 양호한 만큼 정부가 R&D 지원을 늘릴 여력은 있다”며 “글로벌 시장 경쟁을 고려하면 지금의 지원 수준은 충분하지 않다”고 말했다.

유선일 경제정책 기자 ysi@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