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보험사, 실손보험료 인하 놓고 줄다리기 '팽팽'

정부가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하면서 보험사 실손보험료 인하를 유도하고 있지만, 보험업계가 반발하고 있다. 기존 손해율이 높아 보험료 인하 여력이 없다는 이유다.

26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기존 의료 비급여 항목 3800여개를 단계적으로 국민건강보험이 보장하도록 범위를 확대하는 이른바 '문재인 케어' 시행을 앞두고 있다.

2022년까지 비급여 항목 의료비 보장을 확대함으로써 보험사 비용 지출을 줄여 실손 보험료 인하를 유도하기 위한 조치다.

실손보험은 의무보험은 아니지만, 건강보험이 보장하지 않는 도수치료나 비급여 주사제 등 비급여 항목을 보장한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개인 실손 보험 계약 수는 3419만 건으로 전년 말(3332만 건) 대비 2.6%(87만 건) 증가했다. 우리나라 국민의 60% 넘게 현재 실손 보험에 가입하고 있는 셈이다.

이 때문에 정부는 비급여 항목 의료비 보장을 확대하면 보험사 비용이 줄어 보험료 인하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김상우 국회 예산정책처 예산분석관은 지난해 말 “문재인 케어 정책 실행으로 민간 의료보험의 보험료가 유지돼 보험사의 보험금 지출은 2022년까지 3조8044억 원 감소할 것으로 추산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보험사들은 이런 주장이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주장이다. 문재인 케어의 세부 사항이 확정되지도 않았고, 당장은 실손보험 손해율이 높아 보험료 인하여력이 없다는 입장이다.

앞서 10개 손보사는 2016년과 2017년에도 손해율이 높아 실손 보험료를 각각 23.0%, 16.2%씩 인상한 바 있다.

지난해는 개인 실손 보험의 위험 손해율은 121.7%로 전년(131.3%) 대비 9.6%포인트(P) 낮아졌지만, 여전히 100%를 웃돌고 있다. 위험 손해율은 발생 손해액을 위험보험료로 나눈 수치다. 이 수치가 100%를 넘는다는 것은 가입자가 낸 돈보다 받아간 돈이 더 많다는 의미다.

각 사별 손해율을 보면 한화손보가 138.1%로 가장 높다. 롯데손보 121.9%, 흥국화재 119.5%, 현대해상 118.9% 등의 순이다. 가장 낮은 삼성화재도 103.1%다. 이들 모두 지난 2016년과 비교하면 손해율 감소가 있었지만, 모두 100%를 넘는다.

손보사 관계자는 “실손 보험 손해율이 여전히 100%를 크게 웃돌고 있는 상황이라 사실상 적자를 보면서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며 “의무보험도 아닌 실손 보험이 가입자가 많다는 이유로 정부가 과도하게 개입하고 있다”고 말했다.

금융위원회는 지난해 12월 '보험업 감독규정 및 보험업 감독업무 시행세칙'을 개정하고 기존 35%이던 실손 보험료 연간 조정 폭을 25%로 낮췄다. 또 금융감독원도 지난해 12월 보장내역이 줄면 당연히 가격도 내려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업계는 우선 무리한 정책 강행보다는 문재인 케어에 대한 세부적인 내용이 확정되고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비급여 항목 의료비 보장 확대 노력에도 세부적인 사항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라며 “지금 나온 안을 살펴보면 예비급여라고 명칭한 부분도 비급여 항목처럼 취급될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럴 경우 현재와 다를 바가 없어지기 때문에 실손 보험료를 급하게 인하했다가 낭패를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예비급여는 급여화에 앞서 상대적으로 비용·효과성이 떨어지는 비급여 항목을 따로 분리하고 30~90%의 본인부담률을 차등 적용, 적정 가격을 관리·평가해 급여화 여부를 결정하는 중간 단계를 의미한다. 이에 보험사들은 중간 단계인 예비급여가 비급여로 대체할 가능성이 있다는 설명이다.

업계는 금융당국이 한국개발연구원(KDI)에 의뢰한 발표에 주목하고 있다. 앞서 금융당국은 지난해 9월 KDI에 문재인 케어 실행에 따른 실손 보험의 반사이익 검토를 의뢰한 바 있다.

이 관계자는 “KDI에서 문재인 케어 실행에 대한 실손 보험 반사이익을 검토하고 있다”며 “정책 실행에 따른 반사이익이 있다는 보고서와 세부내용이 확정되고 나서 가격 인하를 논의해도 늦지 않다”고 말했다.

박윤호기자 yun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