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말 한파가 몰아치던 한국을 떠나 미국 로스앤젤레스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77년 역사를 자랑하는 지프(Jeep)의 본고장 미국 현지에서 '뉴 체로키'를 만나기 위해서다.
LA는 지프를 타기에 최고의 도시였다. 이곳의 1월 평균 기온은 8.8~18℃로 한국의 10월과 비슷했다. 선선한 바람과 따사로운 햇살 아래 지프가 새롭게 선보인 뉴 체로키를 국내 출시 전 먼저 타봤다.
본격적인 뉴 체로키 시승은 도착 다음 날 아침부터 시작됐다. 세계 곳곳에서 모인 기자들 앞에 놓인 빨간색 뉴 체로키는 강렬한 인상을 줬다. 지프의 전통을 상징하는 고유의 디자인을 세련되고 대담한 스타일로 재해석했다. 겉모습에서 가장 달라진 부분은 강렬한 눈매였다. 새로운 Bi-LED 프로젝터 헤드램프는 주간 주행등과 함께 뉴 체로키의 새로운 얼굴을 완성했다.
브라이언 닐랜더 피아트크라이슬러(FCA) 수석 디자이너는 “뉴 체로키는 지프 브랜드 특유의 남성미를 살리면서도 내·외관 디자인에 현대적인 세련미를 강조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했다.
이어 “실내에 들어서면 한결 우아해졌다는 것을 알아볼 수 있을 것”이라면서 “새틴 크롬과 고광택 피아노 블랙 등 고급 소재를 통해 섬세한 디자인 감각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LA 도심을 지나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되는 말리부 크리크(Malibu Creek) 주립공원에 접어들었다. 시승차는 2.4리터 가솔린 엔진과 9단 자동변속기를 탑재했다. 최고출력은 177마력/6400rpm, 최대토크는 23.4㎏·m/3900rpm이다. 제원상 높은 수치는 아니지만 굽이진 산길에서 헤쳐 나가기에 부족함 없는 힘을 보여줬다. 가솔린 엔진이기에 정숙성도 괜찮은 편이다.
구불구불한 코너에선 직관적인 핸들링 감각을 선보인다. 차고가 높은 차체 특성상 SUV는 코너링에 불리할 수밖에 없지만, 뉴 체로키는 예상보다 안정적으로 코너를 탈출했다. 세심한 업그레이드를 거친 엔진과 변속기는 빠른 응답성으로 코너 탈출 후 즉각적이며 부드럽게 재가속을 진행한다.
세단 못지않은 편안한 승차감도 인상적이다. 맥퍼슨 스트럿 방식의 전륜 독립 서스펜션과 후륜 독립 멀티-링크 서스펜션은 안락함을 제공하는 동시에 노면을 고르게 흡수한다. 지프는 승차감 개선을 위해 차체 비틀림 강성 개선과 서스펜션 최적화에 심혈을 기울였다.
다음 목적지 캐니언 랜치(Canyon Ranch)로 향했다. 지프는 주립공원 모퉁이에 자리한 이곳에 뉴 체로키의 오프로드 성능을 보여주기 위한 시승 코스를 마련했다. 도심형 SUV의 외관을 지녔지만 오프로드에선 터프함을 과시했다.
뉴 체로키는 날씨에 상관없이 최상의 주행성능을 발휘하는 사륜구동(4x4) 시스템을 장착했다. 사륜구동 시스템은 네 바퀴를 구동하지 않을 때 에너지 손실을 줄이고 연비를 향상하는 뒤 차축 분리 기술을 적용했다. 이 기술은 운전자 개입 없이 이륜과 사륜구동을 매끄럽게 전환한다.
강력한 사륜구동 시스템을 바탕으로 뉴 체로키는 50도에 달하는 급경사와 바퀴가 푹 빠질 정도로 깊은 웅덩이, 아찔하게 솟아 오른 커다란 바위를 거침없이 넘었다. 뉴 체로키에 대한 개발진의 자신감이 느껴졌다.
폴 스미스 FCA 수석 엔지니어는 80가지 이상 첨단 주행 기술을 뉴 체로키의 주목할 만한 변화로 꼽았다. 그는 “운전자가 평행·직각 주차하는 것을 돕는 파크 센스 액티브 주차 보조 시스템, 제동 기능을 포함한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 플러스 등 80가지가 넘는 능동형·수동형 주행 안전 기술을 통해 가장 안전하고 편안한 SUV를 개발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가족을 위한 SUV로도 손색이 없다. 새롭게 디자인한 핸즈프리 파워 리프트게이트는 차체 아래를 발로 차는 동작만으로 트렁크를 쉽게 여닫을 수 있다. 또 기존 모델보다 더 길고 넓어진 최대 1549리터의 트렁크 공간을 갖췄다.
미국 일리노이주 벨비데레 공장에서 생산되는 뉴 체로키는 지난달 17일부터 국내에서도 판매를 시작했다. 가솔린 모델 기준 가격은 4490만~4790만원, 복합 연비는 리터당 9.2km수준이다. 올 하반기에는 디젤 모델이 추가로 들어온다.
동급 경쟁자가 무수히 많지만 지프의 전통을 계승한 뉴 체로키가 가진 매력은 뚜렷했다. 뉴 체로키는 국내외 시장에서 현대차 싼타페, 쉐보레 이쿼녹스, 토요타 RAV4, 포드 이스케이프 등 쟁쟁한 중형 SUV들을 넘어설 수 있을지 주목된다.
로스앤젤레스(미국)=정치연 자동차 전문기자 chiye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