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초 충남대에서 열린 첫 대입개편 열린마당. 진행방식이 바뀌어선지 고성이 오갔던 지난해 8월 수능개편시안 공청회와는 달랐다. 교사·학부모·학생이 비교적 차분한 분위기에서 의견을 개진했다. 하지만 내용은 지난해 공청회와 다를 바 없었다. “공교육을 믿을 수 없다”는 게 참석자의 한결 같은 반응이었다. 학부모는 학생부를 작성하는 교사를 믿을 수 없고, 교사는 달라진 제도가 현실과 동떨어졌다고 토로했다.
이런 상황에서 제 아무리 혁신적인 입시안이 나와도 현실에 발을 붙일 수 없다. 학생 개개인 특성을 살릴 수 있는 학생부 전형 취지는 공감하지만 공정성을 담보하지 못한 탓에 객관식 문제로 줄 세우는 수능이 낫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다.
역대 정부는 하나같이 대입 제도 개혁을 통해 교육개혁을 완성하고자 했다. 대입이 교육의 성과물로 평가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대입과 교육을 별개로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대입 제도 개혁은 우리나라에서는 교육 전반 개혁을 위한 가장 중요한 과제다.
문재인 정부 역시 국정운영 계획에서 '대입전형 간소화 등을 통해 교실에서 시작되는 공교육 혁신'을 강조했다.
정권 초기부터 대입 개혁 단추가 잘못 꿰졌다. 절대평가를 도입하겠다고 성급하게 약속했다가 1년 유예 결과를 낳았다. 공론화를 이유로 교육부가 국가교육회의에 공을 넘겼으나 상황은 같다. 현실적으로 국가교육회의가 4개월 만에 새로운 안을 내놓기는 쉽지 않다. 결국 수시·정시 통합 등 교육부가 이송한 5개 모델이 문재인 정부의 대입 개혁안이 될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여론을 고려해 기존 틀을 재배치하는 형태일 뿐이라는 점이다. 대입 제도에 따라 교실이 달라지는데, 교실에서 바뀐 대입제도가 어떻게 적용될 것인지를 고려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왜 대입제도 개혁이 중요하나
사교육 부담을 줄이기 위해 수능을 EBS와 연계해 출제하니 학교 교실이 EBS 문제풀이식으로 바뀌었다. 동아리 활동·심화학습 등 다양한 활동을 장려하기 위해 학생부를 강화했으나,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탓에 사교육을 부추긴다는 비난만 받았다.
대입개편 열린마당에서 한 교사는 학생부에 대해 “두 달 동안 12만자를 어떻게 쓰나. 결국 복사하고 붙여넣기 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 학부모는 “교사가 성적 좋은 몇 명만 학생부를 써주고, 나머지는 학생이 직접 써서 제출하는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대입 제도가 교실현장과 떨어질 수 없다는 것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다양한 경험을 쌓은 인재를 원하는 상위권 대학은 교육부 방침에 아랑곳하지 않고 수시 위주로 학생을 선발하고 있다. 교육부의 우려 전달에도 서울대는 2020학년도 수시 모집 비율을 전년과 동일한 79.6%로 유지하기로 했다.
교사가 현장에서 적용할 수 있는 방향을 고려하지 않은 대입 개혁이 추진되다보니, 사교육 의존도는 높아지고 있다. 학부모는 현실에 뿌리를 두지 않아 부작용만 양산한 교육제도를 '누더기'라고 표현한다.
공교육이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살아갈 학생에게 필요한 창의성과 소통능력을 키우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데에는 모두 인식을 같이 한다. 하지만 이를 위한 공교육 혁신 주장은 겉돌고 있다. 일부 혁신가가 외치는 소리 정도로 치부된다.
◇교실에 바탕을 둔 장기적인 개혁이 답
국가교육회의는 공론화 과정을 거쳐 4개월 안에 대입 개편안을 마련해야 한다. 수십년 동안 실패한 대입제도 혁신을 4개월 안에 마무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가장 공정한 방안에 힘을 실으면서, 공교육을 살리는 방향에 초점을 둔 장기 개편안 마련에 주력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다.
김진경 대입개편특위 위원장은 “대입 개편은 국가 거버넌스 같은 본질적인 문제가 결합됐다”면서 “수능은 국가통제형 거버넌스에 맞는 대입제도이고, 학종은 주민이 직접 통제하는 민주적 거버넌스 아래 선발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학종을 진전시키고 싶다면 학교를 지역 주민까지 참여하는 민주적 거버넌스로 녹여내는 것과 맞물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입 개편을 큰 틀에서 논의해야 한다는 뜻이다.
장기 과제를 논의할 때 에듀테크를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다양성을 강조하는 교육은 그만큼 학교와 교사의 투자를 필요로 한다. 해외에서는 이러한 부담을 에듀테크로 해결했다. 지능형 학습 분석 플랫폼 같은 에듀테크는 학생 수준별 맞춤형 수업을 위해 필요한 인프라다. 채점하고 학생수준을 파악하는 것은 인공지능(AI)에 맡기고, 교사가 분석 자료를 기반으로 그에 맞는 교육을 하는 형태다.
김용재 노리 공동대표는 “미국에서는 학교에서 수학교육 프로그램을 도입해 수학을 가르친다”면서 “단순한 문제 풀이 수업을 벗어나 기본원리를 파악하는 데 에듀테크가 도움을 준다”고 말했다.
문보경 정책 전문기자 okmu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