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업계가 문재인 정부 고용정책을 성장의 걸림돌로 인식했다.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 취지에는 공감하면서도 업계 현실에 부합하는 추가 대책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창업 초기 일정 기간 동안 예외를 인정하거나, 적정한 보상을 약속하고 근로시간을 연장하는 등 벤처기업에 적합한 조항이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고용정책 개선'은 혁신성장을 위한 문재인 정부의 시급한 과제에서도 우선순위에 꼽혔다.
전자신문은 벤처기업협회와 함께 지난 2일부터 11일까지 벤처기업 상대로 '문재인 정부 혁신성장 정책'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설문에는 벤처확인기업(2016년 말 기준) 383개사가 참여했다.
◇최저임금 인상·근로시간 단축에 부정적
설문조사에서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등 문재인 정부 고용(일자리) 정책이 기업에 미칠 영향'에 대해 응답기업 절반에 가까운 44.1%가 '부정적'이라고 답했다. 긍정적이라는 응답은 29.5%, 보통이라는 답변이 26.4%를 기록했다.
벤처업계가 문재인 정부 고용정책을 부정적으로 보는 이유는 열악한 창업 현실을 고려하지 않고 일괄적인 기준을 적용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업계는 벤처기업을 제조업과 같은 잣대로 일괄적으로 근로시간 단축을 적용하지 말고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스타트업 단계에서 남들보다 더 일해 성공하려는 것을 일률적으로 규제하는 발상 자체를 이해하지 못한다.
스타트업은 당장 돈을 벌기 힘든 초창기 고생하는 직원에게 스톡옵션 등 성과 보상책을 약속한다. 근로시간에 맞추라며 사무실 불을 끄거나, 최저임금 지급여력이 없어 창업을 못하는 상황으로 몰고 가면 혁신성장의 기수인 벤처기업과 스타트업이 존재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근로시간 단축과 최저임금 인상 때문에 벤처기업 폐업시 창업자가 범법자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주 52시간 이상 근로한 직원이나, 최저임금을 보장받는 대신 스톡옵션 등을 약속받았던 직원이 사업 실패·폐업 후 창업자를 근로기준법 위반으로 신고할 수 있기 때문이다.
벤처기업 관계자는 “혁신 기술과 아이디어로 승부하는 벤처기업 속성상 '속도'가 생명”이라며 “급변하는 시장에 대응하기 위해 근무시간이 따로 없을 정도로 바쁘게 돌아가는 상황에서 정부 고용정책을 따르기 버거운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고용정책 개선' '상생 기반' 마련 시급
벤처업계가 정부 고용정책을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만큼, '혁신성장을 위한 문재인 정부의 향후 시급 과제'로도 '고용정책 개선(20%)'이 우선순위에 꼽혔다. '대중소기업 상생 기반 마련(23.4%)', 'R&D 촉진 및 신기술 확보 지원(21.8%)' 등도 시급한 과제로 지목됐다. '신산업 육성을 위한 규제개혁(12.6%)' '창업 지원 제도 개선(11.3%)' '정부 컨트롤타워 역할 강화(6%)' 등이 뒤를 이었다.
고용정책 개선 관련해 중소기업연구원은 최근 국내 중소기업 현실을 반영해 근로기준법을 조속히 개정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놨다. '탄력적 근로시간제' 단위 기간을 현행 3개월에서 1년으로 확대 개정해 중소기업이 대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탄력적 근로시간제는 업무량이 몰리는 시기에 근로 시간을 늘리고 적은 시기에 줄이는 제도다. 정해진 기간 안에서 유연하게 근로 시간을 조정하는 게 골자다. 프로젝트 단위로 돌아가는 벤처·스타트업 기업 근로환경에 적합하다. 고용정책 개선 내용으로 성과공유제를 활성화해 임금, 복지수준 등 중소기업의 낮은 근로조건 문제를 해소하는 방안도 제시됐다.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추진에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는 의견은 정부도 언급했다. 홍종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은 최근 언론인터뷰에서 내년 최저임금 인상 관련해 “문재인 정부가 (2020년 1만원 달성을) 공약했지만, 경제 상황과 관계없이 무조건 지키는 것은 합리적인 선택이 아니다”라며 “상황에 따라 신축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소기업에 부담이 간다면 인상 폭을 조정해야 한다는 뜻이다.
설문조사에서는 또다른 시급 과제로 △중소기업 세금 부담 감소 △부가세, 4대 보험 스타트업 감면 정책 △인건비(최저임금) 지원 개선 △대중소기업 임금 격차 완화 △'데스밸리' 탈출 지원 정책 △벤처기업 '스케일 업' 정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함봉균 산업정책부(세종) 기자 hbkone@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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