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시내에 '대전이 4차 산업혁명 특별시'라는 현수막이 자주 보인다. 벤처기업 경영자로서 의문이 생긴다. 대전시가 못 이룬 오랜 꿈을 구호로 표출한 것은 아닌가 싶다.
전자통신연구원에서 연구원 생활을 하다가 대덕밸리에 벤처를 창업한 지 벌써 19년이 흘렀다. 창업 초기에는 대덕연구단지와 테크노밸리야말로 연구원 출신이 꿈을 실현할 수 있는 최적지라고 판단했다. 당시만 해도 이런 판단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그러나 지금의 대덕밸리는 전혀 그렇지 못하다. 최근 동료 벤처기업인을 만났다. 코스닥 상장까지 한 기업인이다. 그런데 그는 “가장 크게 잘못한 경영 판단이 대덕밸리에서 창업한 것”이라고 털어놓았다. 그의 의견에 동조하고 싶다. 대덕밸리 벤처기업 대표 대부분이 그렇게 생각한다.
네이버에서 '혁신클러스터'를 검색하면 딱 한 곳이 나온다. 바로 대덕밸리다. 그런 대덕밸리가 요즘에는 혁신 역량이 뚝 떨어졌다. 혁신 생태계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역동성 강한 벤처 1세대와 패기 넘치는 벤처 2세대를 거쳐 벤처 3, 4세대로 대물림하는 뭔가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벤처 3, 4세대가 보이지 않는다.
언제부터인가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핵심 화두로 창업을 통한 일자리 창출이 떠올랐다. 창업을 활성화해서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일자리를 늘리려는 정책 목표에는 동의한다. 그러나 그 방법론은 선뜻 동조하기 어렵다.
기술 중심 벤처 창업은 아이디어를 토대로 기술을 개발하고, 이를 시제품 단계를 거쳐 양산하는 시점에서 인력 수요가 폭증한다. 그러나 지금은 그저 생계형 창업을 우선시하는 듯하다.
지난해 전주남부시장 청년몰을 다녀왔다. 전통시장 중심으로 야간에는 야시장이 열리고 시장건물 2층에는 청년몰이 위치해 있어서 많은 사람이 몰려들었다. 그러나 이는 혁신이라기보다 그저 아이디어를 상업화한 하나의 사례에 지나지 않았다. 안정된 일자리를 창출할 혁신형 기업 창업이 너무 부족해 보인다.
세계경제포럼에서는 4차 산업혁명을 '혁신 기술 간 융합을 통해 미래 경쟁력을 높이는 차세대 산업혁명'으로 규정했다.
대전이 '4차 산업혁명 특별시'로 자리매김하려면 대전에 있는 장점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대덕밸리라는 기반 위에 융합과 공유경제를 구현하는 4차 산업혁명 패러다임을 가미해야 새로운 형태의 창업을 활성화할 수 있을 것이다.
혁신 중소기업을 육성하고 창업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4차 산업혁명에 걸맞은 다양한 벤처 생태계를 조성해야 한다. 창업 리스크와 두려움을 없애 줄 다양한 입구와 출구를 만들어야 한다.
예를 들어 사업 구상 초기부터 선배 기업인과 창업 로드맵을 함께 고민하고 협력할 수 있는 연결고리를 만들어 주는 작업이 필요하다. 선배 기업은 새로운 성장 동력과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고, 후배 기업은 초기 시장에 안착할 수 있는 조언과 산업 네트워크를 확보할 수 있다. 선·후배 기업이 모두 윈윈할 수 있는 협력 모델이다.
지금이라도 기술 벤처와 벤처 지원 인프라가 밀집돼 있는 대덕밸리에 4차 산업혁명을 함께 준비할 수 있는 '초연결 생태계 네트워크'를 만들어야 한다. 연결하고 또 연결하다 보면 산·학·연·관이 실타래 같은 신경회로망으로 연결돼 알파고처럼 미래를 예측하고 준비할 수 있는 거대한 유기 생명체가 만들어질 것이다. 이를 통해 대덕밸리가 4차 산업혁명의 메카로 성장하는 날을 꿈꾸어 본다.
박찬구 대덕이노폴리스벤처협회장 ckpark@wiworl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