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부처 간 칸막이 식으로 운영돼 비효율이 크다면서 연구관리 전문 기관 통·폐합을 추진하고 있다. 한국연구재단·한국산업기술진흥원 등 12개 부처 17개 기관을 10개 부처 10개로 줄이고, 연구관리 전문 기관을 기능·단계별 다섯 곳으로 통·폐합하겠다는 최종 방침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전면 통합의 경우 부작용이 예상돼 우선 이번에 '1부처 1기관'으로 통합한다는 것이다.
일견 통·폐합의 당위성은 있어 보인다. 일부 신생 기관의 연구개발 관리 능력도 구설수에 오른 적이 있다. 17개 전문 기관이 관리하는 예산이 지난 한 해 국가 R&D 예산 19조4000억원 가운데 58%인 11조1724억원이나 된다. 과제 중복도 통·폐합을 통해 줄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다. 그러나 이런 통·폐합만으로 국가 R&D 효율을 실제로 높여 줄지 의문이다.
첫째 통·폐합으로 인한 비대화·관료화 문제다. 이번에 통·폐합 대상으로 거론되는 곳 가운데에는 대형 기관이 많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한국연구재단·정보통신기술진흥센터·정보통신산업진흥원 등 세 곳, 산업통상자원부의 산업기술진흥원·산업기술평가관리원·에너지기술평가원 등 세 곳, 문화체육관광부의 콘텐츠진흥원·국민체육진흥공단 등 두 곳이다. 나머지는 각 부나 청에 하나씩으로, 이번 대상이 아니다. 이 가운데 연구재단은 지난 연도 예산 4조3080억원, 정보통신기술진흥센터는 1조209억원, 산업기술진흥원은 1조2259억원, 산업기술평가관리원은 1조4812억원이었다. 이들 기관이 통·폐합되면 과기정통부는 5조3750억원, 산업부는 3조3804억원의 초대형 기관이 각각 탄생하게 된다. 관료화와 이에 따르는 비효율이 걱정되는 것도 이 탓이다. 실상 나머지는 각 부나 청에 하나씩으로, 통폐합 대상이 아니다.
둘째 통·폐합으로 인한 전문성 하락도 걱정이다. 예컨대 과학기술 부문 연구재단과 정보통신 부문 정보통신기술진흥센터, 정보통신산업진흥원는 전문 분야가 판이하게 다르다. 한쪽은 기초·도전 연구가 중요하고 장기성 연구가 많다. 다른 쪽은 산업기술 성격이 강하고 중단기성 연구가 많다. 억지로 한 지붕에 모아 놓으면 필연으로 세 들어 사는 기관은 위축되고 전문성은 차츰 소실되기 마련이다. 통·폐합으로 인한 인원 변동이 없으니 우려 없다고 반론할 수 있다. 그러나 시간문제일 뿐 벌어질 일이고, 또 한편 조직이 그대로라면 정작 통·폐합의 이점은 무엇이냐는 의구심도 생긴다.
셋째 내부에 있는 칸막이는 아예 논외다. 거대 기관이 됐을 때 더 견고해질 분야 간, 부서 간 칸막이를 어떻게 할지에는 고민이 미치지 못했다.
중복 연구를 문제로 보는 시각도 여전히 조심스럽다. 기관이 커지면 그만큼 중복을 걸러 내기 쉽겠지만 이것이 통·폐합의 주된 이유가 되기는 어렵다. 여느 학습 과정이 그렇듯 반복과 중복을 심화의 과정과 완벽히 구분해 내기는 어렵다. 이유가 타당한지 따져야 하는 것이지 비슷하다고 결단할 사항이 아니다. 융합 연구도 중복 연구란 잣대에 걸려 위축될 수 있다.
결국 고민의 시작은 국가 연구개발 사업을 다루는 과정에서 수많은 칸막이가 있었다는 데 있다. 그 가운데에는 기관을 통·폐합해서 걷어 낼 수 있는 칸막이도 있겠지만 여태껏 연구 현장의 벽 허물기란 이 정도 문제를 말한 게 아니다.
칸막이가 쳐지면 그 그늘에 사람과 아이디어는 갇힌다. 연구계도 사람도 편 나뉘고, 결국 창의성은 가로막힌다.
이만큼 오랜 시간 끌어왔다면 이제쯤 내놓을 해결책은 좀 더 근본에 가까워야 한다. 그렇지 않고선 정도의 차이일 뿐 겉보기에 그럴싸한 또 하나의 미봉책이 될까 우려스럽다.
◇ET교수포럼 명단(가나다 순)=김현수(순천향대), 문주현(동국대), 박재민(건국대), 박호정(고려대), 송성진(성균관대), 오중산(숙명여대), 이우영(연세대), 이젬마(경희대), 이종수(서울대), 정도진(중앙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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