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프 크루텐든은 대학생 용돈 쪼들림에 의문을 품었다. 학생은 매번 돈이 모자라고, 큰돈이 필요한 상황이 닥치면 해결 방법이 없다. 우리나라에서도 일부 대학생이 비싼 신용카드 이자나 대부업체 고금리로 신용불량자가 된다. 크루텐든은 많은 벤처 창업가가 그러하듯 자신의 문제에서 사업 아이디어를 찾았다.
'도토리(Acorns)'라고 명명된 이 유니콘 핀테크 기업 작동 원리는 다음과 같다. 커피를 한 잔 사는 경우 3달러 25센트가 청구된다. 이때 현금으로 4달러를 지불하면 커피숍에서 75센트 잔돈을 거슬러 줄 것이다. 잔돈이 적으면 커피숍에 놓은 유니세프 기부통에 넣을지도 모르고 잔돈을 주머니에 넣었다가 집에 가서 돼지저금통에 넣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애콘스(Acorns)로 지불하면 75센트를 저축 계좌로 옮겨 준다. 일정 금액이 모이면 로보어드바이저가 투자 자산에 투자한다. 방 안의 돼지 저금통은 나의 알뜰한 습관에 따라 배가 불러 오지만 애콘스는 자동으로 채워 준다. 그리고 투자까지 알선해 준다. 이를 통해 돈이 모이는 재미와 투자로 돈이 불어나는 희열을 젊은이에게 일찍부터 가르치고 있다. '스마트 돼지저금통'이다.
서비스는 학생에게 무료다. 저소득층이 서비스를 활용해서 5000달러를 모으면 그때 0.25% 관리 수수료를 내게 하고 있다. 학생이 아닌 경우 이렇게 저축한 돈을 세금이 부과되는 금융상품에 투자하면 월 1달러, 연금 상품에 투자하면 월 2달러의 아주 저렴한 수수료를 청구한다.
이는 파괴성 혁신 이론 전형이다. 통상 하루하루 먹고 살기가 어려운 계층은 은행이 외면하는 수익성 없는 계층이다. 그런 비고객을 고객화하는 혁신을 우리는 파괴성 혁신이라고 한다. 많은 성공 기업을 보면 기존 고객보다 지불 능력이 낮은 소비자에게 해결책을 제공해서 큰 성공을 거둔다. 디지털 카메라는 초기에 기존 아날로그 카메라에 비해 형편없는 품질이었지만 카메라 사용법을 배울 필요도 없고 필름을 살 필요도 없는 소비자층에서 먼저 시작돼 제품 성능이 올라가면서 아날로그를 대체했다.
은행이 버린 저소득층, 비정규직이나 프리랜서 등 연금 저축을 붓기 어려운 계층은 급속도로 확장되고 있다. 그 결과 애콘스는 350만명이 넘는 고객을 확보했다. 더 놀라운 것은 젊은이 구전 효과로 고객 유치비용이 다른 금융회사에 비해 50배나 적다는 점이다.
성공에는 고객이 고객을 유치하면 받는 인센티브가 한몫했다. 다른 고객을 소개하면 기존 고객에게 5달러를 준다. 학생에게 5달러는 적은 돈이 아니다. 앱에서 쉽게 친구들을 초청할 수 있게 설계한 것도 애콘스 성공 요인이다. 앱에서 바로 메신저, 페이스북, 트위터 등 SNS 친구를 초대할 수 있다. 최근에도 월 60만명의 새로운 고객을 확보했다.
애콘스는 페이팔 투자는 물론 전략 협력을 통해 페이팔 사용자가 바로 애콘스 서비스를 활용할 수 있게 하고 있다. 고객은 투자와 지불 수단을 하나의 서비스로 누릴 수 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여기저기 흩어진 마일리지 포인트를 모아 투자로 연결해 주는 애콘스와 유사한 사업을 시도했지만 규제 당국에 의해 무산됐다. 시장 혁신이 규제에 의해 봉쇄됐다. 이러한 현실 타개 없이 유니콘 기업 출현은 어림도 없다. 사회 문제 해결은 시장이 아니라 정부 부담으로 남는다. '티끌 모아 태산이 된다'는 진실을 깨닫도록 스마트 앱과 로보어드바이저 같은 인공지능이 다음 세대를 돕고 있는 사례가 애콘스다.
이병태 KAIST 교수 btlee@business.kaist.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