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임·횡령과 상속세 탈루 등으로 수백억원에 달하는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를 받고 있는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검찰에 소환 조사를 받았다.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 '물벼락 갑질'에서 비롯된 검찰 칼날이 조양호 회장까지 이어지면서 한진그룹은 창립 이래 최대 위기에 몰리게 됐다.

조 회장은 28일 오전 9시20분께 서울남부지검에 조세포탈과 횡령·배임 혐의에 대한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했다.
지난해 9월 자택공사에 회사돈을 유용한 혐의로 경찰에 출석한 지 9개월 만에 다시 포토라인에 선 조 회장은 '두 딸과 아내에 이어 포토라인 서게 됐는데 국민에게 한 말씀 부탁한다'는 취재진의 질문에 “검찰 조사에 성실히 임하겠다”고 했고, '상속세는 왜 안 낸 거냐'는 질문에 “검찰에 모든 걸 말씀드리겠다”고 했다. 이어 '횡령·배임 혐의를 인정하느냐'는 물음에 “죄송하다”고 답했다. '회장직을 물러날 생각이 없느냐'는 질문에는 말없이 검찰청으로 들어갔다.
검찰은 지난 4월 30일 서울지방국세청이 조 회장을 수백억대 조세포탈 혐의로 고발함에 따라 기업·금융범죄를 전담하는 형사6부에 배당하고 수사해 왔다. 수사 착수 두 달 만에 소환 결정한 검찰은 조 회장을 상대로 조세포탈과 횡령·배임 혐의 등을 추궁할 전망이다.
검찰은 조 회장 형제가 창업주 고 조중훈 전 회장 해외보유 자산을 물려받는 과정에서 상속 신고를 하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이들이 납부하지 않은 상속세는 500억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탈세 자산의 해외 소재지는 파리 부동산으로 파악됐다.
검찰은 조 회장 소환에 앞서 지난 25일 두 동생 조남호 한진중공업 회장과 조정호 메리츠금융지주 회장에 대한 조사를 이미 마쳤다. 26일에는 수감 중인 최은영 유수홀딩스 회장도 소환 조사했다.
검찰은 부동산을 관리하는 그룹 계열사에 일감을 몰아주는 등 방법으로 회사에 손해를 끼치고 일가 소유인 면세품 중개업체를 통해 '통행세'를 걷는 방식으로 부당이득을 챙겼을 것으로 보고 조사하고 있다. 2014년 '땅콩 회항' 사건으로 수사를 받고 기소된 조 회장의 딸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변호사 비용을 회삿돈으로 대신 지불한 혐의를 포착하고 수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조 회장이 처남이 대표인 기내식 납품 업체에 일감을 몰아줬다는 의혹도 살펴보고 있다.
재계에서는 조 회장이 검찰에 소환 조사를 받으면서 한진그룹 전체에 위기가 닥친 것으로 보고 있다. 앞서 '물벼락 갑질'로 조현민 전 전무를 시작으로 장녀인 조현아 대한항공 전 부사장, 조 회장 부인인 이명희 전 일우재단 이사장이 검찰, 경찰, 서울출입국외국인청 이민특수조사대 등에 소환 조사를 받았다. 아울러 한진그룹 계열 저비용항공사(LCC) 진에어는 국토교통부로부터 조 전 전무를 불법으로 등기이사에 올린 것에 대한 제재를 받을 예정이다.
류종은 자동차/항공 전문기자 rje312@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