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기계연, 동유럽에 R&D·기업진출 협력 거점 만든다

기계기술과 제조업은 경제 성장의 열쇠다. 인공지능(AI) 및 사물인터넷(IoT)과 같은 혁신 기술도 결국은 제조업을 보다 쉽고 효율 높게 운영하거나 부가가치를 높이기 위한 기술이다. 경제 활동 근간은 제조업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다.

독일은 이미 '인더스트리 4.0'을 표방하며 기술 개발 및 강점 분야 선점을 고심하고 있다. 양대 제조 강대국인 미국과 중국도 다양한 분야에 걸쳐 새로운 기술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신흥국 추격 속도도 날로 빨라진다. 새로운 활로 개척이 절실한 상황이다. 전에 없던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고, 이를 바탕으로 신시장에 진출해야 한다.

한국기계연구원(원장 박천홍)이 동유럽의 오랜 기초과학 기술을 활용하기 위한 거점 확보에 나섰다. 동유럽은 전통적으로 기초과학과 기계기술은 앞서 있으나 시장이 좁아 크게 성장하지 못하고 있는 지역이다.

이에 기계연은 이들 지역 대학 및 연구기관과 기계기술 고도화를 위한 협력과 이를 토대로 국내 기업 사업화와 시장 확대를 지원할 계획이다.

기계연이 첫 번째 거점으로 삼은 지역은 체코다. 체코는 독일과 유사한 산업 환경을 보유하고 있는 국가다. 대학 교육 및 연구개발(R&D) 인프라도 우수하다. 또 다른 장점이라면 협력비용이 많이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1인당 GDP가 2만달러 이하다. 4만4000달러에 달하는 독일과 비교하면 절반도 안 되는 수준이다. 보다 적은 협력비용으로 큰 효과를 거둘 수 있다.

박천홍 원장과 기계연 연구진이 체코 공대 내 연구 시설을 돌아보는 모습
박천홍 원장과 기계연 연구진이 체코 공대 내 연구 시설을 돌아보는 모습

기계연은 우선 체코공대와 연구협력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맺었다. 300년 역사를 자랑하는 체코공대는 체코에서는 1~2위를 다투는 공대다. 특히 메카트로닉스 관련 학과는 170년이나 됐다. 아직도 원로 교수가 관련 지식을 하나 하나 전수하는 옛날식 교육방식을 고집하고 있다. 그만큼 교육 효과에 대한 자부심도 대단하다. 기계연과는 2009년부터 협력 연구를 진행해 왔다.

보이테흐 페트라첵 체코공대 총장은 기계연과 연구협력 협약을 맺은 뒤 “체코공대는 오랜 전통을 바탕으로 학생들이 한 분야에만 매몰되지 않고 넓은 시야를 가지도록 교육하고 있다”면서 “산·학연구소를 두고 기업과 다양한 형태로 협력하는데 이번에 지구 반대편에 있는 연구소와 다양한 분야에서 공동연구를 진행하는 것 자체에 의미를 두고 싶다”고 말했다.

보이테흐 페트라첵 체코공대 총장
보이테흐 페트라첵 체코공대 총장

연구협력 분야도 다양하다 기계연 초정밀시스템연구실은 공작기계 및 설계를 가상화하는 기술을 공동 개발한다. 2022년 완료를 목표로 '버츄얼 모델 기반 지능형 머신 툴'을 개발하기로 했다. 이 기술은 AI 학습과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이용, 기계 거동에 따른 각종 결과를 시뮬레이션으로 파악할 수 있다. '스마트 공작기계' 구현에 필요한 핵심기술이다. 향후 제조업 분야에서 막대한 이익을 창출할 수 있는 기반 기술이다.

박천홍 기계연 원장(사진 왼쪽)과 보이테흐 페트라첵 체코공대 총장(오른쪽)이 협력 MOU를 맺은 후 기념 사진을 찍는 모습
박천홍 기계연 원장(사진 왼쪽)과 보이테흐 페트라첵 체코공대 총장(오른쪽)이 협력 MOU를 맺은 후 기념 사진을 찍는 모습

공작기계 오차를 보정하는 협력 연구도 추진한다. 기계연과 체코 공대는 그동안 온도, 압력, 힘, 소재 스트레스, 진동 등 물리 수치를 활용해 각종 기계 거동 결과를 해석·예측하는 기술을 개발해 왔다. 체코공대의 기계기술과 해석 수학 분야에 조예가 깊은 원로 교수들이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볼베어링'과 같은 기계 핵심 부품 발열량을 예측하는 모델 개발이 대표 사례다.

기계연과 체코 공대는 MOU를 맺은 3일 협력 포럼을 열고 향후 협력 방안을 논의 했다.
기계연과 체코 공대는 MOU를 맺은 3일 협력 포럼을 열고 향후 협력 방안을 논의 했다.

전기차 부품 연구도 진행한다. 스마트산업기계연구실은 2019년까지 체코공대와 전기차 감속기 협력 연구를 진행한다. 감속기는 모터 출력으로 자동차 속도를 줄이는 장치다. 철로 된 기어를 알루미늄 하우징으로 감싼 형태로 부품 경량화가 과제다. 공동 연구팀은 올해까지 탄소섬유 강화 플라스틱으로 하우징을 구현하고, 이후 기어 축 경량화에 도전할 계획이다.

오정석 초정밀시스템연구실장은 “체코공대를 비롯한 체코 현지 연구기관은 우리나라에서 갖추지 못한 기초분야 기술력이 높은 곳”이라면서 “이번 MOU로 기계연과 국가 기계 기술을 한층 높일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기계연은 체코공대 외에도 체코 과학원 산하 물리연구소 내 레이저 전문 연구소인 하이레이즈(HILASE)와도 협력 MOU를 체결했다.

박천홍 기계연 원장(사진 오른쪽)과 토마스 모첵 HiLASE 센터장(왼쪽)
박천홍 기계연 원장(사진 오른쪽)과 토마스 모첵 HiLASE 센터장(왼쪽)

하이레이즈는 체코 정부가 2011년부터 2014년까지 총 3200만유로를 투입해 설립한 세계 최대 규모 레이저 전문 연구소다. 최첨단 연구시설을 갖추고 세계 각지에서 모인 60여명의 레이저 전문가가 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유럽연합(EU)이 지원하는 범유럽권 신규 연구기반시설인 극한광기반시설(ELI)에 레이저를 공급해주는 역할을 한다. 하이레이즈가 설계해 개발하고, ELI는 이를 사용해 연구하는 형태다.

하이레이즈와는 기계연 광응용기계 연구실이 2022년 완성을 목표로 레이저 가공 및 레이저 가공 측정 기술을 공동 연구하기로 했다. 기존에 없던 특성을 지닌 레이저 및 이를 활용한 측정 기술도 개발한다.

하이레이즈와 국내 기업을 연결해 하이레이즈가 개발할 레이저를 상용화 하거나, 기업이 요구하는 사양의 레이저를 맞춤형으로 개발해주는 비즈니스 매칭 사업도 병행할 예정이다.

기계연은 이번에 확보한 체코 내 협력 거점을 토대로 국내 기업이 동유럽 기계 기술을 활용하거나 시장을 함께 개척하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박천홍 원장(사진 중앙)을 비롯한 기계연 연구진이 HiLASE 연구실을 탐방하는 모습
박천홍 원장(사진 중앙)을 비롯한 기계연 연구진이 HiLASE 연구실을 탐방하는 모습

체코는 기초과학 분야 기술 수준이 높지만 시장이 협소해 성장하지 못하는 지역 가운데 하나다. 인구가 1000만명에 불과한데다 이웃한 독일의 기술력이 워낙 뛰어나 빛을 보지 못하는 형편이다. 이런 연유로 체코공대와 하이레이즈 등 공작기계와 레이저 등 기초 기술 분야에서 우리와 협력할 수 있는 접점과 수요가 많을 것으로 보인다.

체코는 제조업 비중이 GDP 대비 27%로 아주 높은 국가다. 특히 자동차 분야에 강하다. 유럽 내 5위 자동차 생산국이다. 2016년 기준 자동차 134만대가 체코에서 만들어졌다. 부품 기업도 많아 글로벌 100대 자동차 부품 기업 가운데 60여개가 체코에 위치하고 있다.

그러나 자동차 부품 생산에 필수인 공작기계 기업은 국내 기업보다 규모가 작다. 공산국가 시절에서 민주화 과정을 거치면서 큰 성장을 이루지 못했다.

기계연은 체코를 시작으로 동유럽 지역에 더 많은 협력 거점을 만들 계획이다. 체코공대와는 국내 기업을 연결해 기술애로를 해소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박천홍 기계연 원장은 “동유럽 진출 또는 동유럽 연구기관 및 대학과 협력을 희망하는 기업에 적극 소개해 협력의 폭을 넓힐 계획”이라며 “체코 연구소와 대학은 우리와 협력해 시너지를 높일 수 있는 부분이 아주 많다”고 말했다.

<표> 기계연-체코공대 협력 경과

<표> 기계연-체코공대 협력 기대성과

<표> 기계연-하이레이즈 협력 경과

<표>기계연-하이레이즈 협력 주제

<표> 체코 산업 비중(2016년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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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하(체코)=김순기기자 soonkki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