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A사 : “비즈니스포럼은 대통령과 인사하고 밥 먹는 자리다. 국내 기업이 현지에 진출할 수 있는 방안 논의는 없다. 순방 가서 기업경영에 도움이 되는 자리는 없다”
#대기업 B사 : “청와대에서 순방 일정이 너무 늦게 나와 사전 준비할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 주어진 일정에 맞춰서 참여하기조차 빠듯하다”
#중견기업 C사 : “4대 그룹이나 일부 대기업들이 대부분 총수 위주로 참여하다보니 청와대도 우리 같은 중견기업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대통령 해외 순방에 경제사절단으로 참여한 기업인들이 이구동성으로 '우리는 들러리'를 외치고 있다. 기업 규모에 상관없이 한결같이 느끼는 경제사절단의 현 모습이다. 청와대가 대통령 해외 순방 경제사절단을 실용성과 효율성에 초점을 맞춰 개편하려는 배경이다.
문재인 정부 들어 경제사절단은 민간단체인 대한상공회의소에 전적으로 맡겨졌다. 과거 산업통상자원부가 신청을 받아 심의위원회를 구성하고 참가자를 선정했던 것과 달리, 대한상의가 맡으면서 재계는 기존과는 다른 역할과 분위기를 기대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 출범 1년이 지나도 경제사절단은 '그대로'였다. 재계는 오히려 더 '병풍화'됐다는 불만을 내놓고 있다.
주된 이유는 현 정부 들어 순방 일정 공유가 너무 급박하게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순방 일정을 통상 한달도 남지 않은 시점에 기업과 공유한다. 어떤 경우에는 2주전에 알려주기도 한다. 실질적으로 현지에서 사전 비즈니스미팅 자리 등을 만들 수 있는 여유가 없다. 사내 순방 참여 임원을 정하고, 일정에 맞춰 참여하기조차 빠듯하다는 주장이다.
경제사절단 운영 추제가 대한상의로 바뀌긴 했지만 운영 방식이나 형태는 그대로인 것도 한계로 드러났다. 모집 주체만 달라졌을 뿐 비즈니스포럼, 국빈만찬 등 과거 정권에서 진행해온 행사 형식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일대일 비즈니스 상담회와 같은 행사 등이 없어졌다.
게다가 이번 정부에서는 민간차원의 양해각서(MOU)에 크게 의미 부여를 하지 않고 있다. 이전 정부에서 영양가 없는 MOU를 남발한 데 따른 성찰 차원에서다. 늘상 대통령 순방이 끝나고 나면 '몇 조원 규모의 경제적 효과' 등이 발표됐다. 대부분 경제사절단에 참여한 기업들을 쥐어 짜 얻어내 MOU 결과다. 순방성과를 숫자로 포장했다.
현 정부는 이런 보여주기식 순방 성과에 선을 그었다. 경제사절단에 'MOU 남발'을 요구하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기업들의 부담은 크게 줄었지만 역효과도 있다. 이러한 반강제적인 경제협력 요구가 없어지면서 공식적인 행사 참여가 경제사절단의 주요 역할이 돼버린 것이다.
순방에 참여한 한 재계 관계자는 “예전에는 순방 때마다 어떤 선물보따리를 준비해서 풀어야 할지가 고민이었으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면서도 “하지만 행사 초청 연예인과 기념사진 찍은 게 전부다”고 털어놨다.
실질적으로 경제인들이 사업 거래를 할 수 있는 장이 없다는 것도 주요 불만 중에 하나다. 상견례 성격의 자리가 대부분이라 인사치레로만 끝난다는 것이다. 기업들이 그나마 참여를 희망하는 행사는 '비즈니스라운지테이블'이다. 이 행사는 비즈니스포럼 전에 개최되는 사전 미팅 성격으로, 양국 기업인 10여명 정도만 참여한다. 소수정예 행사다. 하지만 10여명 모두에게 발언권이 주어지진 않는다. 일부 기업만 발언할 수 있다. 이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또 발언권을 얻기 위해 대기업들간 눈치전이 치열하다. 그렇다보니 중소기업에게는 감히 넘볼 수 없는 행사로 고착화됐다.
쉴 새 없는 순방으로 기업들의 피로감도 커졌다. 해외 순방이 한달에 두 번까지도 진행됐다. 또 순방 당시 2~3개 이상 나라를 동시 방문한다. 기업들은 나라별로 맞춤형 고위 경영진을 선별해야 할 뿐 아니라 이에 맞춰 수행원도 별도로 꾸려야 한다.
재계 관계자는 “관례상 순방 때마다 고위 경영진을 보내고 있는데, 때로는 관련된 적합한 경영진이 없는데도 눈치가 보여 참가할 수밖에 없는 경우도 있다”며 “시간을 쪼개서 일하는 최고경영진들이 단지 행사 격을 높이기 위해 참석하는 경우가 있다”고 털어놨다.
대통령 해외순방이 실질적인 경제 성과로 이어지기 위해선 해당 지역에 사업 연관성이 높거나 신사업을 추진하려는 기업인들을 대상으로 알짜배기 사절단이 꾸려져야 한다. 현지 비즈니스에 가장 적합한 비즈니스그룹군을 뽑아 현지 관료와 경제계 핀셋 매칭을 해줘야 한다. 중소기업군은 별도 트랙으로 사절단이 꾸려 효율성을 높일 수 있는 것도 고려할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경제사절단이 해외순방 들러리가 아니라 실질적인 사업 성과를 위한 통로가 되기 위해서는 보다 철저한 사전 기획과 사후 관리가 필요해 보인다”며 “우선은 기존 형식에서 탈피해야 할 것이고, 기업들과의 소통을 늘려 애로 사항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성현희 청와대/정책 전문기자 sunghh@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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