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26일 저녁 광화문 인근 한 호프집을 '깜짝 방문'해 국민과 대화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는 퇴근길 국민을 직접 만나 민심을 듣겠다던 대선후보 시절 공약을 지킨 것으로, 국민들의 생생한 정책 의견을 듣기 위한 취지로 마련됐다.
문 대통령은 “오로지 듣는 자리라고 생각하고 왔다”며 이날 저녁 7시경 서울 종로구청 인근 '쌍쌍호프'에서 자영업자와 중소기업체 사장, 청년구직자 등 18명의 시민과 호프 타임을 가졌다.
특히 참석자들은 고용노동부 장관 등과의 만남인 줄로만 알고서 호프집을 찾았다가, 문 대통령,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 김의겸 대변인과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 등이 모습을 드러내자 깜짝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매장 밖에서는 수십여명의 시민들이 유리 너머 문 대통령의 사진을 찍거나, '대통령님 사랑합니다'라고 쓴 종이를 유리에 갖다 대는 모습도 보였다.
문 대통령은 “요즘 최저임금과 고용 문제 등이 심각하게 얘기가 나오는 상황이어서 그런 말씀들을 듣고자 자리를 마련했다. 아무런 메시지를 준비하지 않고 왔다”고 말문을 열었다. 본격적인 대화를 시작하자 자영업자들로부터 건의사항이 쏟아져 나왔다.
23년 동안 음식점을 운영해온 이종환 씨는 문 대통령에게 “정부에서 정책을 세울 때 생업과 사업을 구분해주셨으면 좋겠다”며 “최저근로자만도 못한 실적이라 종업원 안쓰고 가족끼리 하려고도 한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그는 “제 자식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다. 일본같이 대를 이어 성장시키면 좋은데 그게 굉장히 아쉽다”고 토로했다.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정광천 사장은 “주 52시간제와 최저임금 인상으로 생산직 기업들은 굉장히 고통스러워 한다”며 “최저임금 인상을 업종과 지역별로 속도 조절을 할 필요가 있다”고 건의했다.
이에 문 대통령은 “최저임금 문제의 경우 서울 물가와 지역 물가도 다르고, 지역별·업종별로 다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다. 고용 규모도 다를 수 있다”며 “그에 따른 논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임금을 제대로 못 받아 어려움을 겪는 분들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 최저임금인데 직종에 차별을 가하면 취지에 맞지 않는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쉬운 문제는 아니다. 앞으로 이런 논의를 많이 하겠다”고 덧붙였다.
이어 문 대통령은 “자영업에 대한 사회안전망을 모색하고 여러 문제에 대해 굉장히 무겁게 생각한다”며 “그런 부분을 적극 보완할 것이고, 국회에서도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도시락업체를 운영하는 변양희 시장은 “정부가 근로시간 단축을 발표한 뒤 저녁 도시락 배달도 줄었다. 마음고생이 너무 심하다”고 말했다.
편의점주 이태희 씨는 가맹점 불공정 계약 문제를 얘기하며 “심야영업만 안하게 해달라”고 건의했다. 문 대통령은 “가맹점에 운영시간이 (계약으로) 묶여있나”라고 물었고, 임종석 비서실장은 “자영업비서관을 신설했으니, 종합적인 대안을 만들어보겠다”고 약속했다.
이날 저녁 호프 타임 도중 외부에서 지켜보던 직장인 6명도 즉석에서 합류했다. 문 대통령과 주 52시간 근무제를 두고 얘기를 나눴다.
문 대통령은 “주 52시간제 근무제를 시행하니 뭐가 좋나, 육아는 할만 한가”라고 묻자, 한 남자 직원이 “집에서 설거지만 한다. 제 얼굴을 낯설어하던 아이가 저를 많이 찾고 좋다”고 답했다.
문 대통령은 “노동시간이 짧아져 급여나 수당이 줄어든 것에 대한 불만은 없나”라고 묻기도 했다.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이같은 대화 내용을 듣다가 “대기업들이 잘하겠다”며 “소위 임금이 낮은 분들의 임금을 올리는 것은 좋은데, 다른 정책도 같이 가면 좋지 않겠나. 직접적 분배정책도 같은 효과가 나오는 것 아닌가 싶고, 다양한 정책이 있으면 좋겠다”고 의견을 냈다.
청년 구직자 이찬희 씨는 취업 준비에 드는 돈이 많다고 호소했다. 또 다른 구직자 배준 씨는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다 과감하게 포기했다”고 말했다.
'퇴근길 국민과의 대화'라는 명칭으로 진행된 이날 대화는 오후 7시부터 예정된 시간을 넘겨 100여분 진행됐다.
문 대통령은 “오늘 정말 많은 얘기를 듣고 싶어 왔는데 경력단절여성·취준생·자영업자 등 여러분의 많은 얘기를 들었다”며 “다양한 얘기를 들을 수 있어서 앞으로 큰 도움이 될 것 같다”고 했다.
성현희 청와대/정책 전문기자 sunghh@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