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오방'
서울 대치동 지란지교홀딩스 사무실. 오디오방이란 명패가 붙은 곳이 있다. 누가 무슨 일을 하는 방인가라는 호기심을 불러온다. 오치영 지란지교 창업자 방이다. 3개월 전만해도 그 방 명패는 '오서방(OH CEO BANG)'이었는데 '오디오방'로 바꿨다. 오서방은 이제 오디오로 불린다. '디오'는 드림오피서(Dream Officer)란다.
1994년 대전에서 지란지교를 창업한 오 대표는 2014년 20주년 행사에서 CDO(Chief Dream Officer)가 되겠다는 비전을 제시했다. 이후 4년 만에 그는 정말 CDO가 됐다. 3월 말 그는 직함을 대표에서 CDO로 바꿨다.
대담=신혜권 SW융합산업부장
◇프로그래밍 맘껏 하고 싶어 창업
오 CDO는 초등학생 시절 로봇 태권브이에 심취했다. 로봇을 만드는 과학자가 꿈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가 선물한 애플 컴퓨터가 꿈을 송두리째 바꿨다. 중학생 시절부터 컴퓨터에 푹 빠져 살았다. 대학에 들어가 컴퓨터 그룹과외, 군고구마 장수 등 오너십이 있는 아르바이트를 주로 했다. 그는 이런 일을 통해 사업 감각을 키웠다고 믿는다. 군 복무 후 2년간 아무 생각 없이 컴퓨터 프로그래밍에 미쳤다.
4학년 졸업이 다가오면서 진로를 고민했다. 그 때 가장 잘 하면서 하고 싶은 일을 꿈꿨다. 바로 프로그래밍이었다. 프로그래밍을 마음껏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창업이었다. 1994년 대학교 4학년 때 창업했다. 당시 그의 작은 소원은 '사람들이 내가 만든 소프트웨어를 쓰면서 행복했으면 좋겠다'였다. 이 꿈이 지금의 지란지교를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련을 넘어서다
그는 사업을 잘 몰랐기에 겁 없이 창업했다고 말한다. 체력과 열정 면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열심히 달렸다. 2002년 지란지교소프트 상장 작업을 시작하며 시련이 부딪혔다. 코스닥 등록을 위해 외형 확대가 필요했다. 계획했던 방향대로 회사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회사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채 상장 작업을 시작했고 연말이 되니 직원에게 줄 급여가 없었다고 회고했다. 사옥도 팔고 급여도 줄여가면서 하나씩 문제를 풀었다. 그렇게 1년이면 회사가 회복될 줄 알았는데 그 여파가 7~8년을 갔다. 혹독한 기간이 그렇게 길게 이어질 줄 몰랐다. 회사가 어려워지면 기존 문제뿐 아니라 주변 여건까지 불안정해져 두 배 이상의 시련이 찾아온다. 그는 이 일을 계기로 사람과 자금 시스템을 만들었다. 직원을 적절한 위치에 배치하며 채용할 때부터 관리하는 시스템과 현금 흐름을 예측하는 자금 관리 시스템을 구축했다. 개인적으로 운동을 통해 몸과 마음을 단련했다.
◇꿈꾸는 사람…CDO가 되다
그는 2014년 창업 20주년 행사에서 '드림 플랫폼'이란 비전을 발표했다. 그가 CDO가 된 건 갑작스런 일이 아니다. 20주년이 되기 이전부터 그는 다른 회사와 차별화된 지란지교만이 직원에게 해 줄 수 있는 무언가를 고민했다. 창업 후 두 번째 꿈을 꾸기 시작했다. 그가 지란지교를 통해 꿈을 이룬 것처럼 회사가 구성원의 꿈을 이루는 플랫폼이 되기를 소망했다.
그는 창업 당시를 회상하며 '회사가 구성원의 꿈을 이룰 수 있는 플랫폼이 되자'는 답을 얻었다. '지란인이 개개인 열정과 노력으로 꿈을 이루도록 최선을 다해 도와주자.' 그가 CDO가 된 이유다. 회사가 구성원의 다양한 꿈을 이룰 수 있는 드림플랫폼이 되면 차별화된 인재를 영입하고 성과도 내는 선순환이 이뤄진다.
CDO는 구성원이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하도록 지원한다. 신사업도 좋고 제품에 새로운 기능을 넣어도 좋다. 의지와 방향이 있다면 믿고 응원한다. 꿈을 이루고 싶은 구성원에게 길을 열어준다. 울타리도 된다. 새로운 사업은 항상 큰 위험이 따른다. 오 CDO는 위험 때문에 도전마저 못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그가 창업을 했던 것처럼 책임과 열정이 있는 사람에게 기회를 준다. 지란지교는 업무에서 다양한 기회와 권한을 갖는다. 원하는 교육을 신청하고 책도 마음껏 구입하게 했다.
오 CDO는 직함을 바꾸기 전부터 직원 꿈 찾기를 도왔다. 지란지교에는 '지꿈인(지란지교를 꿈꾸는 사람들)'이란 프로젝트가 있다. 참여한 직원은 오 CDO와 꿈을 나눈다. 7주간 매주 월요일 오 CDO와 저녁을 함께 하며 지란지교 미래와 본인 꿈, 목표에 대해 서로 고민하고 답을 찾는다. 지금은 지꿈인 시즌2를 3개월 이상 된 신규 입사자 대상으로 매달 한번 씩 진행한다.
◇일본을 제 집처럼
그는 드림플랫폼 최고 책임자임과 동시에 지란지교 해외 비즈니스와 신규 사업을 이끈다. 지란홀딩스를 만들고 패밀리 기업 간 협력을 도모한다. 24년간 사업을 하면서 일본에서 가능성을 엿봤다. 그는 지난해 일본에 4개 회사를 설립했다. 지란소프트재팬(홀딩스)을 중심으로 J시큐리티, 다이렉트클라우드, 엠시스템즈, 워크인사이츠 등으로 구성된다.
그는 일본에서 지란소프트재팬 대표를 맡는다. 매월 한 달에 세 번 화·수·목요일은 일본에서 일한다. 월·금요일은 한국서 CDO 역할을 한다. 일주일을 나눠 두 나라를 오간다. 아무리 가까운 일본이라도 일주일에 한 번씩 가는 건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지란지교가 일본에 진출한지 벌써 15년째다. 첫 매출이 나올 때까지 3년이 걸렸다.
그가 일본에 법인을 세우고 일주일에 삼일씩 머문 지 3년이 됐다. 그는 운동을 빼놓지 않는다. 체력이 있어야 출장을 가고 사업을 지속하기 때문이다. 대외 행사에서 그의 얼굴을 보기가 쉽지 않다. 일본 업무로 삼일을 비우는데다 이틀은 한국 직원과 같이한다.
오 CDO는 일본 사업은 한국보다 3배 이상 어렵다고 강조한다. 그것도 대표가 직접 해외 사업을 진두지휘했을 경우다. “한국에서 100%를 하고 해외에서 50%만 노력해서 성공을 바라는 건 말도 안 된다”고 강조한다. 3배 이상 노력해야 시장에 간신히 안착할 만한 정도다.
그는 삼일씩 일본에 머물며 직접 의사 결정을 한다. 그는 일본은 해 볼만한 시장이라고 강조한다. 시장 규모가 크고 믿을 만한 나라다. 거래 신뢰가 형성되면 지속 성장할 수 있는 시장이다. 제품과 서비스 품질을 중요시하며 거래처 신뢰를 우선으로 한다. 물론 납품하기 위해 거쳐야 하는 단계가 많다. 오 CDO는 “일본서 물건 하나를 납품하려면 여러 단계를 거쳐야 하는데 이를 지켜줘야 한다”면서 “함께 공생하는 문화를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본 보안에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
지란지교는 일본에서 연 매출 100억원을 올린다. 국내 소프트웨어 기업 중 해외에서 100억원 매출을 올리는 곳은 손에 꼽힌다. 지란지교가 일본에 안착한 비밀은 무엇일까. 그는 일본 보안에 필요한 모든 것을 찾아낸다고 귀뜸 했다. 없는 기술은 만들고 조합한다. 합리적 가격으로 시장에 공급하는 원칙을 세웠다. J시큐리티는 'All for Japan Security'를 의미한다. 무조건 개발하는 게 아니라 한국이나 이스라엘 등 세계에서 적합한 제품을 찾는다.
지란지교가 일본에 공급하는 제품은 10여가지다. 지란지교 패밀리 기업이 개발한 제품뿐 아니라 국내외 다른 보안기업 제품도 포함한다. 매년 지란지교를 통해 일본 시장에 진출하려는 국내 기업이 늘어난다. 지란지교가 일본에 국내 소프트웨어와 보안제품을 유통하는 플랫폼으로 자리 잡은 덕이다. 매년 5월 일본 도쿄 빅사이트에는 'IT위크'라는 대형 전시가 열린다. 올해 일본에 본사를 둔 글로벌 보안기업 트렌드마이크로와 동일한 규모로 전시 행사를 열었다. 160여명의 파트너를 초청하는 행사도 가졌다.
그는 지난 3년간 일본에 머물며 일본 시장을 꼼꼼히 파악했다. 일본 제품은 품질은 높은데 대응력이 떨어진다. 급증하는 사이버 위협에 신속히 대응이 안 된다. 미국 제품은 일본 시장 특성에 맞게 커스터마이징을 해주지 않는다. 그의 성공 비결은 일본을 이해한 맞춤 기능이다. 오 CDO는 일본에 안주하지 않는다. 일본 모델을 아시아에 이식하는 작업도 시작했다. 아시아 환경에 맞는 제대로 된 제품을 공급할 또 다른 꿈을 꾼다.
◇글로벌 친구와 네트워킹
4월 세계 최대 보안 콘퍼런스 RSA가 열렸다. 지란지교는 매년 RSA에 부스를 만든다. 올해는 '엑소스피어'란 지란지교 미국 법인이 전시했다. 아디 루핀 엑소스피어 대표는 이스라엘인이다. 미국 보안시장은 이스라엘 영향력이 크다. 체크포인트를 비롯해 이스라엘 핵심기술을 공급한다.
오 CDO는 매년 RSA에서 작은 파티를 연다. 일본에서 온 파트너를 비롯해 평소 알고 지내던 미국과 이스라엘 친구들이 참석한다. 아디 루핀 대표도 여기서 알게 된 사람으로 연을 이어 미국 법인 대표를 맡겼다. 미국에서 성공하려면 현지 상황을 꿰뚫고 있는 사람이 필요했다. 매년 미국서 열리는 지란패밀리 파티는 사람을 이어주는 네트워킹이 이뤄진다. 오 CDO가 어떤 꿈을 가졌는지 공유하고 함께 실천 방향을 이야기한다. 실리콘밸리서 일하는 글로벌 친구들 조언이 이어진다.
◇일십백천만을 향해
그는 2007년 매출액 100억을 달성한 후 100년 기업을 바라보며 일명 '일십백천만'이란 목표를 세웠다.
지란지교는 즐겁고 독보적 1조 기업을 꿈꾼다. 모든 직원이 꿈을 갖고 꿈을 이루게 돕는 드림플랫폼 기반으로 한다. '일'이란 넘버원이 아니라 온리원이 되겠다는 것이다. '십'은 성장가치가 있는 10개의 큰 꿈을 발굴해 키우는 것을 뜻한다. '백'은 글로벌 소프트웨어 기업 100위 진입을 말한다. 10개의 큰 꿈 가치가 각 1000억원에 버금가게 만드는 게 '천'이다. 1000억원 가치를 지닌 꿈 10개가 모여 1조원 가치를 가진 기업이 된다. 1조원의 가치를 가진 즐겁고 따뜻한 글로벌 소프트웨어 그룹이다.
지란지교 패밀리에 소속된 기업만 20개가 넘는다. 이들은 자율적으로 운영된다. 오 CEO는 패밀리 기업 간 시너지를 통해 더 큰 가치를 만드는 선장이다.
오치영 CDO는 1969년 생으로 충남대 전산학과를 졸업했다. 1993년 삼성전자 소프트웨어 멤버십을 거쳐 1994년 지란지교소프트를 창립했다. 현재 지란지교 CDO로 활동한다. 오 CDO는 2002년 산업자원부장관 표창, 2009년 지식경제부장관 표창, 2010년 국무총리 표창, 2014년 대통령 표창을 수상했다.
정리=
김인순 보안 전문기자 insoon@etnews.com
사진=윤성혁기자 shyo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