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2019년 예산안은 '재정의 적극적 역할'에 방점을 찍었다. 돈을 풀어 경기 회복세를 강화하고, 고용난을 해결한다는 목표다. 재원을 배분한 12개 분야 중 사회간접자본(SOC)을 제외한 모든 영역에서 작년보다 예산을 늘렸다.
문제는 '효과'다. 일자리 문제는 아무리 돈을 풀어도 해결이 어렵다는 평가다. 정부는 이런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뾰족한 대안은 내놓지 못했다.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수정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높지만 정부는 묵묵부답이다.
◇정부 “지금은 돈을 쓸 때”…재정건정성 악화 우려도
정부는 매년 예산안을 짤 때 5년짜리 중기 계획인 '국가재정 운용계획'을 함께 만든다. 작년 작성한 국가재정 운용계획에서 정부는 2019년 예산을 453조3000억원으로 설정했다. 2017~2021년 연평균 재정지출 증가율은 5.8%로 설정했다. 그러나 이 계획은 불과 1년 만에 크게 변했다.
정부가 편성한 내년 예산안은 470조5000억원이다. 국가재정 운용계획상 수치보다 16조원 이상 많다. 전년대비 증가율 9.7%는 글로벌 금융위기가 있던 2009년(10.6%) 이후 가장 높다.
다만 정부는 현재를 경제위기로 보지는 않는다고 설명했다. 지금은 구조적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며, 재정을 적극 투입했을때 '실'보다 '득'이 크다는 판단이다.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돈을 써야할 때는 경제 위기거나, 경제·사회가 구조적 문제가 있어 변화·개혁이 필요한 때인데 지금은 후자”라며 “재정투입을 통한 중장기 사회·국가적 편익이 단기적 투자 증대보다 크고, 재정 지속 가능성에 확신이 있어야 한다는 두 전제조건을 모두 충족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앞으로 5년도 재정을 적극 늘린다. 이번 확정한 국가재정 운용계획에 따르면 정부 예산은 2020년 500조를 처음 돌파(504조6000억원)하고, 2022년 567조6000억원까지 불어난다.
재정건전성 악화 우려가 나온다. 정부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관리재정수지(통합재정수지에서 국민연금 등 사회보장성기금을 제외한 수지)를 2018~2022년 -3% 이내에서 관리하겠다고 밝혔다. 작년 국가재정운용계획에서는 '-2% 내외'를 제시했는데, 이보다 악화를 예상한 것이다.
최상대 기재부 재정혁신국장은 “지금은 확장적 재정이 필요한 상황”이라며 “-3%는 상징성이 있고 준거가 되는 수준이다. 유럽연합(EU)의 재정수지 건전성 잣대도 -3% 이내”라고 말했다.
◇일자리 예산 '쑥'…R&D 늘기는 했지만
정부는 재정지출 분야를 보건·복지·노동, 교육, 연구개발(R&D) 등 총 12개로 나눠서 공개했다. 12개 분야 가운데 내년 예산이 줄어드는 것은 SOC 뿐이다. 그러나 지역밀착형 생활 SOC 등 '사실상 SOC' 예산이 많아 감소로 보기 어렵다는 분석도 나온다.
가장 두드러진 예산 증가는 일자리를 포함한 복지 분야다.
보건·복지·노동 예산은 올해보다 17조6000억원 많은 162조2000억원을 투입한다. 이 가운데 일자리 예산은 23조5000억원이다. 올해보다 22%나 많다.
올해 추가경정예산으로 재정을 투입한 청년추가고용장려금, 청년내일채움공제 사업을 내년 본예산에 반영, 지원을 확대한다. 청년이 학교 졸업 후 구직활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청년구직활동지원금을 신설(10만명 대상, 총 2000억원)했다. 노인·신중년·장애인 등 취약계층 일자리 지원, 4차 산업혁명 대비 인력 양성훈련 강화, 실업급여 보장성 강화도 눈에 띈다.
혁신성장 분야에도 재정을 적극 투입한다.
연구개발(R&D) 예산이 최초로 20조원을 돌파(20조4000억원)한다. 과거 정부는 연평균 10% 수준으로 R&D 예산을 빠르게 늘렸지만 최근 3년 동안은 “지출 효율화가 시급하다”며 소폭 증액에 그쳤다.
다만 내년 증가율 3.7%이 만족할 수준은 아니라는 게 업계 평가다. 혁신성장이 '경제정책 3대 축' 가운데 하나인 점을 고려하면 보다 적극적인 재정 투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다만 정부는 국가재정운용계획에서 향후 5년간 R&D 예산 증가율을 5.2%로 제시, 2022년 24조원까지 늘릴 계획임을 밝혔다.
이 밖에 플랫폼 경제 기반 구축(5조1000억원), 방송통신위원회 예산 확대(2569억원), 혁신창업 지원(3조7000억원) 등이 혁신성장 예산으로 분류된다.
김 부총리는 “(R&D 외에) 질적으로 다른 많은 분야에서 혁신성장 철학이 예산에 반영됐다”고 말했다.
◇정부도 “재정만으로 일자리 해결 못 해”…계속되는 정책수정 논란
정부가 대대적 재정지출에 나섰지만 정책 효과를 두고 전망이 엇갈린다.
일자리 문제가 '돈 풀기'로 해결되겠냐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지난 1년 동안 본예산·추경으로 일자리에 총 54조원을 투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용상황은 악화일로를 걸었다.
정부 역시 재정지출 만으로 일자리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인정했다. 결국 일자리는 민간에서 나온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마땅한 대안을 제시하지는 못 했다.
김 부총리는 “일자리 문제 해결은 재정 투입 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민간과 시장이 나서야 한다”며 “그러려면 기업가 정신, 적극적 투자 마인드가 필요하고 정책이 이를 북돋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적극적 투자로 정부 의지를 보여주고 인재양성, 생태계 조성 등 민간이 하기 어려운 분야에 예산을 투입해 시장에서 그런 기운이 일어나도록 도와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근본적으로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수정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경직적 근로시간 단축이 우리 경제에 역효과를 냈다는 주장이다. 정책 수정 없이 재정 지출 확대로 만들어내는 효과는 머잖아 한계에 부딪힐 것이라는 평가다.
김 부총리 역시 최저임금 인상을 두고 “정책 효과가 바람직하지 않은 모습으로 나왔다”고 인정했다. 그러면서도 소득주도성장 정책 수정에는 여전히 부정적인 모습이다.
김 부총리는 “최근 고용이 어려운 것은 구조적·경기적 원인이 맞물려 복합 작용했다”면서도 “정부가 추진한 정책 중 호흡·수용성 측면에서 생각이 덜했던 부분, 부정적 영향도 일부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최저임금 인상 문제는 사회·고용 안전망이 많이 부족한 상태에 있다는 현실 인식, 총 취업인구 중 자영업자가 21%에 달한다는 현실, 일부 사업주의 최저임금 인상 수용성 여부 등을 같이 봐야 하는 측면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유선일 경제정책 기자 ysi@etnews.com, 안호천 통신방송 전문기자 hca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