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 농단 사태와 롯데그룹 경영 비리 혐의로 구속 수감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에게 중형이 구형됐다. 신 회장 구속 이후 주요 의사 결정에 차질을 빚고 있는 롯데그룹으로서는 주요 성장 동력인 인수합병(M&A)과 대규모 투자 등에 차질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검찰은 29일 서울고법 형사8부(강승준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신 회장 등 롯데 총수 일가 항소심 결심 공판에서 신 회장에게 두 사건을 합해 총 징역 14년과 벌금 1000억원, 추징금 70억원을 구형했다.
검찰은 “그룹 책임자로서 배임·횡령 범행을 적극 막을 의무가 있는데도 이를 계속하게 하고, 가족들이 불법 이익 취득에 주도 역할을 했다”면서 “모든 의사 결정의 정점에 있었고, 각종 범행에 대해 형사 책임을 직접 물을 수 있는 많은 증거가 있다”고 설명했다.
신 회장은 이날 최후 변론을 통해 “최순실의 존재는 전혀 몰랐고, K스포츠재단을 통해 사익을 추구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꿈에도 몰랐다”며 “국가 경제를, 그리고 그룹을 위해 다시 한번 일할 기회를 달라”고 선처를 호소했다.
항소심에서는 재판부가 묵시적 청탁을 인정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앞서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서원씨 항소심 결과에 비춰 볼 경우 신 회장의 상황은 낙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박 전 대통령과 최씨의 항소심 재판부는 신 회장과 박 전 대통령 사이에 묵시적 청탁이 존재하고 K스포츠재단에 70억원을 지원한 행위에 대가 관계가 성립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롯데는 묵시적 청탁의 존재에 대해 강하게 부인하고 있다. 묵시적 청탁에 대한 원심의 법리상 오해가 있다며 대법원 판례를 근거로 공무원으로부터 지원 요구를 받게 되면 선처나 불이익을 받지 않길 기대하는 것만으로 대가 관계를 인식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주장이다.
롯데그룹은 신 회장의 법정 구속 이후 6개여월 동안 경영에 상당한 차질을 빚고 있다. 최근 10년 동안 한 해 5조∼10조원을 투자하고 한 해 평균 1만5000명을 채용해 왔지만 현재까지 투자와 채용 계획을 정하지도 못한 상황이다.
해외 사업과 M&A로 사세를 키워 온 롯데그룹은 신 회장의 구속 이후 사실상 모든 결정을 보류한 상황이다. 올해 롯데는 국내외에서 10여건, 총 11조원 규모의 M&A를 검토했지만 모두 결정을 못 내려 포기하거나 연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배 구조 개선 및 경영 투명성 강화 차원에서 진행하고 있는 지주사 체제 전환도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롯데는 지난해 10월 롯데지주를 설립했으며, 지주사 체제를 완전히 갖추기 위해서는 편입 계열사를 확대하고 금융 계열사를 정리해야 하는 문제가 남아 있지만 최종 의사결정자인 신 회장의 직접 판단이 없어 모두 차질을 빚고 있다.
검찰의 중형 구형에 롯데그룹은 10월 5일로 예정된 법원의 2심 선고에서 최대한 형을 낮춘 판결을 기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한편 검찰은 신 회장과 함께 기소된 다른 총수 일가에도 중형을 구형했다. 신격호 명예회장에게는 징역 10년에 벌금 3000억원이 구형됐다. 신동주 전 일본롯데홀딩스 부회장(SDJ코퍼레이션 회장)은 징역 5년에 벌금 125억원,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은 징역 10년과 벌금 2000억원에 추징금 32억원, 신 명예회장과 사실혼 관계인 서미경씨에게는 징역 7년에 벌금 1200억원을 각각 구형했다.
이주현 유통 전문기자 jhjh13@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