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수십 년간 내연기관 자동차 시장을 이끌던 디젤차가 빠르게 침몰하고 있다. 국내외 자동차 시장에서 큰 후폭풍을 몰고 온 폭스바겐 디젤게이트에 이어 BMW 화차(火車)게이트까지 디젤차에 대한 악재가 반복되고 있다.
그동안 승용 디젤차가 인기를 끌었던 이유는 우수한 연료 효율성 때문이다. 디젤 엔진은 가솔린 엔진보다 열효율이 높아 힘과 연비 면에서 유리했다. 연료 가격도 가솔린보다 저렴해 경제성까지 갖췄다. 2000년대 이후 승용 디젤차들은 터보차저, 커먼레일 등 다양한 첨단 엔진 기술을 접목하면서 클린 디젤이라는 명성까지 얻었다.
클린 디젤에 대한 환상이 깨진 건 폭스바겐이다. 2015년 9월 폭스바겐 디젤 엔진이 기준치 수십 배에 달하는 배출가스를 뿜어낸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클린 디젤 명성은 금이 가기 시작했다. 한국을 비롯한 각국 정부는 리콜 명령과 함께 판매 정지, 과징금 처분을 내렸다.
최근 국내에서 수십 차례 발생한 BMW 화재도 디젤차에 대한 불신을 증폭하는 원인이 됐다. 반복되는 이슈에 소비자는 디젤차를 외면하기 시작했고, 제조사는 디젤차 생산과 개발을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다.
◇디젤스캔들 왜 반복되나
폭스바겐이 촉발한 디젤스캔들은 최근 BMW로 확대됐다. 두 사건 공통점은 모두 디젤 엔진 특정 부품이 문제를 제공했다는 점이다. 단순히 브랜드를 넘어 디젤차 자체 신뢰도에 큰 타격을 입혔다는 점도 닮았다.
폭스바겐 배출가스 조작이 환경에 대한 문제였다면 BMW는 화재가 반복되면서 안전을 위협했다는 점에서 그 여파가 상당하다. BMW는 폭염이 기승을 부렸던 올여름을 기점으로 자사 차량에서 화재 사고가 잇따르자 7월 말 42개 차종 10만6317대에 이르는 수입차 사상 초유의 리콜을 결정했다.
디젤차에 문제가 집중되는 것은 강화된 환경 규제가 주원인으로 지목된다. 갈수록 강력해지는 배출가스 규제는 기술력으로 이를 극복해왔던 제조사를 점차 한계치로 내몰고 있다. 제조사가 환경 규제를 충족하기 위해 폭발력이 강한 디젤 엔진에 여러 장치를 추가로 부착하면서 문제점이 하나둘 드러나기 시작한 셈이다. 규제 충족과 연비를 위해 제조사 부품 자체의 품질과 안전성이 무너졌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BMW가 화재 사고 원인으로 지목한 배기가스재순환장치(EGR)는 디젤차 고질적 문제를 잘 보여주는 사례 중 하나다. EGR는 폭스바겐 디젤게이트 원인이기도 했다. EGR는 온도를 낮춘 배기가스 일부를 엔진으로 다시 유입해 불완전연소 조건을 제공, 질소산화물(NOx) 발생을 줄이는 역할을 한다. EGR 가동률을 낮추면 출력과 연비가 향상되지만, 배출가스가 증가한다는 단점이 있다.
폭스바겐은 인증시험 등 특정 상황에서 EGR가 정상 작동해 배출가스를 줄이고, 도로 위에서 EGR 작동을 중단하도록 했다. BMW는 EGR 결함으로 발생한 구멍에 고온 배출가스가 누출되면서 화재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디젤차 포기하는 제조사들
국내외에서 더 강력한 배출가스 규제가 시행되면서 디젤차는 존재 자체를 위협받고 있다. 제조사 입장에서 디젤차 개발과 생산은 이제 경영상 리스크로 작용하고 있다.
이달부터 국내에서 시행하는 국제표준시험방법(WLTP)은 실제 도로에서 주행 중 뿜어내는 배출가스를 시험해 인증한다. 전 세계에서 가장 까다로운 배출가스 규제로 꼽힌다. WLTP를 적용하면 시험주행 시간과 거리, 평균속도가 늘어나고 감속과 가속 상황이 늘어난다.
주행 상황이 악화되지만, 시험 차량 질소산화물 배출량은 기존과 동일한 0.08g/㎞ 이하를 충족해야 한다. 새 규제에 충족하려면 제조사는 EGR, 희박질소촉매장치(LNT) 등 기존 저감장치 외에 요소수로 질소산화물을 줄이는 선택적환원촉매장치(SCR)를 추가해야 한다.
이에 현대차는 지난달부터 일부 승용 디젤차에 생산을 중단하기로 했다. 그랜저와 쏘나타, i30, 맥스크루즈 등 비교적 판매량이 적은 디젤차를 아예 단종한다. 디젤차는 소비자 선호도가 높아지는 하이브리드차 등 친환경차로 만회하겠단 전략이다.
글로벌 자동차 제조사도 디젤차 퇴출 흐름에 동참하고 있다. 디젤게이트 주인공 폭스바겐은 2025년까지 200억 유로를 투자해 전기차와 하이브리드차 등 80종에 달하는 친환경차를 내놓을 계획이다. 2025년까지 전체 제품 4분의 1을 전기차로 채우고, 연간 300만대 이상 전기차를 판매해 글로벌 전기차 1위를 목표로 제시했다.
1920년대 디젤차를 처음 양산한 메르세데스-벤츠도 2022년까지 100만유로를 투자해 50종 이상 전기차를 내놓겠다고 밝혔다. 모든 차량을 단번에 전기차로 바꿀 순 없지만, 순차적으로 차종 1개 이상 하이브리드차나 전기차를 선보일 계획이다.
완성차 업체 관계자는 “제조사 입장에서 갈수록 강화되는 세계 각국 환경규제에 대응하려면 엄청난 비용과 시간이 소요된다”면서 “향후 시장 환경을 고려하면 디젤차보다 전기차 등 친환경차 개발에 집중하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치연 자동차 전문기자 chiye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