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기술에는 공포와 희망이 존재한다. 하드웨어 기술 총아인 로봇도 마찬가지다. 올해 초 한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킬러로봇'이 두려움 대상이라면 그 반대쪽에는 재활치료와 의지보조에 쓰이는 웨어러블 로봇이 있다. 인간이 입고 활동할 수 있는 웨어러블 로봇은 삶의 질을 한 단계 향상하는 신기술이다.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더 이상 미래 청사진에 그치지 않고 현실로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웨어러블 로봇, 장애 극복의 최전선
의료 영역에서 웨어러블 로봇은 사고 후 재활치료를 돕거나 치료 이후 장애인 보행 등을 보조하는 두 가지 용도로 활용된다.
해외에서는 많은 제품이 나왔을 뿐 아니라 제조사가 상장될 정도로 상용화가 이뤄지고 있다.
미국에서는 리워크 로보틱스, 엑소바이오닉스 등 기업이 의료용, 산업용 웨어러블 로봇 제품을 지속 출시하고 있다. 미국 재향군인부는 2015년 말부터 장애가 있는 재향군인에게 리워크 제품 구입 비용을 지원하고 있다.
일본 사이버다인은 보행 보조, 재활치료용 로봇 제품을 선보였을 뿐 아니라 현지에 체험센터를 만들어 사람들이 실제 로봇을 입어보고 적응하는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일본 혼다도 2013년 노약자 보행을 보조하는 웨어러블 로봇 '혼다 보행 어시스트(Honda Walking Assist)'를 선보였다.
국내에서도 지난해부터 각종 스포츠 행사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권기현 대한장애인사이클연맹 회장은 지난해 4월 기아와 kt위즈 경기에서 국내 웨어러블로봇 기업 '엑소아틀레트아시아'가 개발한 웨어러블 로봇을 착용하고 시구했다.
3월 열린 평창 동계 패럴림픽에서는 장애인 테니스 국가대표를 지낸 이용로 씨가 웨어러블 로봇 스타트업 'SG로보틱스'가 개발한 보행보조 로봇 '워크온 슈트'를 입고 성화 봉송을 했다. SG로보틱스는 지난해 LG전자에 투자를 유치하며 기술력을 인정 받은 기업이다.
국내에서도 웨어러블 로봇이 단순 보행 보조 도구가 아닌 재활치료를 위한 의료기기로서 지위를 인정받기 시작했다. 엑소아틀레트아시아는 8월 의료재활 웨어러블 로봇 '이에이엠(EAM)'으로 식약처 의료기기 인증을 받았다. SG로보틱스도 의료기기 인증을 준비 중이다.
웨어러블 로봇 확산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벽은 최소 수천만원에 달하는 비싼 가격이다. 의료기기 인증은 정확한 치료효과를 연구하고 건강보험 등으로 재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선결조건이다.
오주영 엑소아틀레트아시아 대표는 “재활치료용 웨어러블 로봇이 정부 의료기기로 인정 받은 것은 의료기관 대상 사업, 수가화, 임상시험 등 생태계 마련을 위한 디딤돌”이라면서 “한국 성과를 바탕으로 해외 시장 진출도 용이해졌다”고 설명했다.
◇로봇으로 직업병 예방, 장애인 취업 확대
웨어러블 로봇은 육체 근로자를 직업병으로부터 예방하고 작업 효율을 올려준다. 인간 근력을 지원하고 관절, 척추 등에 걸리는 과부하를 방지해 주기 때문이다.
로봇 도움을 받으면 위험하고 힘든 직업을 편하고 생산성 높은 직업으로 바꿔줄 수 있어 장애가 있어도 근로를 할 수 있게 돕는다.
LG전자는 지난달 31일 개막한 'IFA 2018'에서 웨어러블 로봇 첫 제품으로 하체에 착용할 수 있는 'LG 클로이 수트봇(LG CLOi SuitBot)'을 공개했다. 클로이 수트봇은 착용자 하체를 지지하고 근력을 강화해 제조업, 건설업 등 다양한 산업현장에서 사용할 수 있다. 보행이 불편한 사람도 돕는다.
글로벌 기업은 공장 생산라인에서 일하는 근로자에게 웨어러블 로봇을 도입하기 시작했다. 자동차 제조사 포드는 엑소바이오닉스와 함께 개발한 상체 지지 웨어러블 로봇 '엑소베스트'를 지난해부터 일부 공장에 적용했다. 최근 세계 7개국, 15개 공장 작업자에게 공급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로봇은 자동차 밑에서 팔을 올려 장시간 부품을 조립하는 근로자 허리, 어깨, 팔 부담을 덜어준다.
BMW도 지난해 10월 상체와 하체용 웨어러블 로봇을 미국 스파턴버그 공장에 도입했다. 상체 로봇은 위를 보고 작업하는 생산라인, 하체 로봇은 무릎을 굽혀 작업하는 생산라인 근로자에게 지급했다. 독일 아우디도 스위스 스타트업 누니와 공동 개발한 하체용 웨어러블 로봇을 독일 잉골슈타트 공장에 시범 적용했다.
웨어러블 로봇뿐 아니라 인간과 같이 일하는 협동로봇도 작업자 과부하를 줄여주는 기술이다. 힘들거나 위험한 일은 로봇이 맡고 정밀한 일은 인간이 담당해 작업효율과 안전성을 높여준다. 국내에서도 7월 두산인프라코어 인천공장이 처음으로 엔진제조 공정에 펜스 없이 협동로봇을 도입, 작업자 근골격계 부담을 줄이고 있다.
김정오 광운대 로봇학부 교수는 “웨어러블 로봇은 장애인과 노동자 복지 향상에 크게 기여한다”면서 “로봇 기술이 발전할수록 육체적으로 힘들고 위험한 일이 쉽고 편한 일이 돼 누구나 평등하게 일을 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오대석기자 ods@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