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스테이블코인의 도전

최근 암호화폐 업계는 스테이블코인에 주목한다. 스테이블코인은 암호화폐 가운데 가치가 안정성을 유지하도록 설계된 코인을 지칭하는 용어다.

스테이블코인을 둘러싼 많은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암호화폐가 효과 높은 지불 수단이 되려면 그 가치가 안정되고 사용하기 편리해야 한다. 중앙은행의 통화량 조절, 국제통화기금(IMF)의 특별인출권, 원자재 통화 등 실제 경제에서 화폐 가치 안정화를 위해 사용되는 여러 방법을 벤치마킹한 스테이블코인이 새롭게 탄생하고 있다.

대표 사례는 '테더(USDT)'라는 암호화폐다. 테더가 가치를 안정시키는 원리는 단순 명료하다. 달러를 보유한 만큼 테더를 발행한다. 다시 말해서 1테더를 가져오면 1달러를 반드시 내어 준다고 약속한 것이다. 테더는 현재 암호화폐거래소에서 다른 코인을 거래할 때 주로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테더는 약점이 있다. 이 코인은 하나의 사기업이 발행한다. 만일 필요한 만큼의 달러를 보관하고 있지 않다면 테더의 가치는 곤두박질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해 테더의 가격이 크게 출렁이던 당시 사람들은 테더가 정말 그만큼의 달러를 제대로 보유하고 있는지 크게 의심했다. 비록 지금은 안정된 가격을 유지하고 있지만 여전히 의혹의 불씨는 꺼지지 않았고, 한 개의 중앙 집중 기관에서 발행하는 스테이블코인이 가질 수밖에 없는 신용 위험에 대한 태생상의 한계를 큰 교훈으로 남겼다.

요즘 각광받고 있는 스테이블코인은 어떤 방식으로 암호화폐 가치의 안정성을 유지하고 있을까. 그 해답은 실제 화폐에서 찾을 수 있다.

더 이상 금본위제를 이용하지 않는 주요 화폐들이 여전히 가치를 유지하고 있는 핵심 가운데 하나는 화폐 사용량 증가 때문이다. 이들 화폐는 석유, 주요 광물, 곡물 등 중요한 자원의 거래에 사용되는 양을 꾸준히 늘려 왔다.

화폐가 통용되는 국가와 사용처가 늘어나면 화폐를 발행하는 발권력은 커지게 된다. 미국 달러는 연방준비은행이 마음먹은 대로 발행할 수 있다. 전 세계에 미치는 막강한 달러의 영향력을 바탕으로 더 많은 달러를 발행할 여력이 있기 때문이다. 미·중 간 무역전쟁은 화폐 가치를 두고 벌이는 발권력 싸움이기도 하다.

스테이블코인은 다양한 방법으로 안정된 가치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가장 기본인 안정화 기법은 가치를 평가할 수 있는 담보와 이를 근거로 코인을 발행하는 것이다. 스테이블코인 발행의 근거가 되는 담보는 실제로 광물 자산을 담보로 발행하기도 하고 대규모 기금을 조성해 이를 담보로 삼는 등 매우 다양하다. 각자의 알고리즘을 사용, 통화량을 조절하기도 한다. 이자율이나 지급준비율 같은 것을 도입하는 경우도 있다.

최근 다양한 기법의 여러 스테이블코인이 등장하고 있어 실제 화폐 못지않게 사용처를 늘리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현재 예상되는 스테이블코인의 사용처 가운데 가장 큰 곳은 암호화폐거래소다. 게임머니도 유력하게 떠오르는 사용처다. 승부가 인터넷쇼핑에서 판가름 날 수도 있다. 각 스테이블코인을 이용하는 사업자에게 어떤 혜택이 돌아가고, 사용자에게 얼마나 편리하게 쓸 수 있는지 여부가 진정한 승자를 가리게 될 가장 중요한 요소다.

스테이블코인 확산은 단순히 블록체인 기술의 조합만으로는 달성할 수 없다. 이해 관계자의 신뢰를 얻고, 사용처를 확장하고, 가치를 입증해야만 한다.

일부 국가에서 정부 주도의 디지털 화폐를 만들기도 한다. 이것 역시 정부가 가치를 보증하는 일종의 스테이블코인이다. 그러나 정부에 대한 신뢰가 부족한 상태에서는 암호화폐든 실물화폐든 가치 안정성을 쉽게 담보할 수 없다. 여러 스테이블코인의 고안자가 블록체인을 이용해 발행 권한을 분산시키고 투명하게 운영하려는 이유는 바로 신뢰가 화폐 가치와 안정에 미치는 영향력이 가장 크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비트코인의 탄생 동기인 리먼브라더스 사태, 훼손된 달러 가치, 집중된 화폐 발행 권력과 시민 피해, 이를 극복하기 위한 암호화폐의 저항과 도전은 지금부터인지도 모르겠다.

한인수 스카이메도우파트너스 매니징 파트너 frankinsoo.ha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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