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업비밀' 도장 나눠주는 중기부... "기술침해 분쟁, 비밀관리성 입증 관건"

#대기업과 하도급 계약을 맺은 A사는 대기업 요청에 따라 설계도면을 제출했으나 계약이 해지됐다. 이후 대기업 계열사가 해당 도면에 기반을 둔 제품을 납품한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공정거래위원회에 이를 제소했으나 '영업비밀'임을 입증하지 못해 조사 대상이 아니라는 답변을 받았다.

이런 현실을 감안해 정부와 관련기관이 '영업비밀 도장' 배포에 나섰다.

9일 업계에 따르면 중소벤처기업부와 대·중소기업·농어업협력재단은 최근 간단히 사용할 수 있는 '영업비밀' 도장을 제작, 각 지방청에 배포했다. 기술침해 관련 상담이나 세미나 참여 기업에게 기념품으로 제공할 예정이다.

중기부와 대중소기업농어업협력재단은 중소기업이 간과하기 쉬운 비밀관리성 강화를 홍보하기 위해 영업비밀 도장을 행사마다 제공할 예정이다.
중기부와 대중소기업농어업협력재단은 중소기업이 간과하기 쉬운 비밀관리성 강화를 홍보하기 위해 영업비밀 도장을 행사마다 제공할 예정이다.

영업비밀 도장 배포는 중기부가 역점 추진하는 중소기업 기술탈취 근절 방안 일환이다. 중소기업 대부분이 보안 전담 인력이나 부서가 없고 관련 체계도 미흡한 상황에서 가장 기본적이고 손쉬운 실천방안을 알린다는 취지다.

중기부 관계자는 “영업비밀 유출 피해를 입은 중소기업이 검찰이나 공정위에 제소하더라도 영업비밀로 관리하고 보호하려는 노력을 입증하지 못해 안타깝게 패소하거나 수사조차 진행되지 못한 사례가 많았다”며 “대기업 등에 제공하는 문서·자료에 '영업비밀'이라고 찍혀 있기라도 하면 법적 분쟁 시 큰 도움이 된다”고 도장 제작 배경을 밝혔다.

영업비밀은 공공연히 알려져 있지 않고 독립된 경제적 가치를 지니는 기술·경영상 정보를 의미한다. 상당한 노력에 의해 비밀로 유지된 생산방법, 판매방법, 그 밖에 영업활동에 유용한 기술상 또는 경영상 정보 등을 포함한다.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에 의해 보호 받지만 상당 수 중소기업은 기술탈취 분쟁에서 효력을 인정받지 못해 패소하는 상황이다.

영업비밀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비밀성, 경제적 유용성, 비밀관리성이라는 세 가지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비밀성, 경제적 유용성은 상대적으로 입증이 쉬운 반면 비밀관리성은 기본적인 고지조차 이뤄지지 않은 사례가 다수다.

전문가는 영업비밀 날인이 간단하면서도 효과적인 비밀관리성 입증 수단이라고 조언한다. 지금까지 사건화된 중소기업 기술분쟁 이슈 역시 여러 문건 중 극소수의 영업비밀 표시가 효력을 발휘했다는 설명이다. 영업비밀 도장만 찍혀있다고 모두 보호받는 것은 아니지만 현장조사나 압수수색 등 다음 단계로 이어지기 위한 최소한의 요건으로 중요성이 크다.

중기부 기술보호 전문법조인인 손보인 변호사는 “대기업이 중소기업과 계약을 맺은 상태에서 기술자료를 요청하면 대부분 실무자 선에서 자료가 그대로 넘어간다”면서 “자료 전달 단계에서 상대방에게 영업비밀 자료라는 사실을 객관적으로 인식시켜야만 차후 제도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정은기자 jepar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