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지자체가 앞 다퉈 지역화폐를 도입하고 있다. 지역화폐 발행과 사용량이 급증하면서 지역경제 활성화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는 평가다. 하지만 사용처가 제한되고 모바일 결제가 안되는 등 불만 목소리도 많다. 일부 지역에서는 탁상행정으로 도입하고 있는데다 지자체장 홍보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 무늬만 블록체인 기술을 도입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국적인 붐이 일고 있는 지역화폐 발행 현황과 효과, 개선 방향 등을 살펴본다.
지역화폐는 말 그대로 특정 지역 안에서 현금처럼 사용하는 화폐다. 국가가 발행하는 법정화폐와 달리 지자체가 발행하고 관리까지 맡는다. 일명 '고향사랑 상품권'으로도 불린다. 온누리 상품권은 전국의 전통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해 만들었지만 고향사랑 상품권은 발행한 특정 지자체 내에서만 사용할 수 있다. 지역화폐는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와 함께 기존 화폐를 대신할 수 있는 '대안화폐'로도 주목받고 있다.
지역화폐는 1930년대 세계적으로는 대공황때 무수한 지역화폐가 발행됐다. 우리나라에서도 외환위기 때 30여개의 지역화폐가 도입됐다가 사라지기도 했다. 이 때문에 경기가 어려울 때 지역화폐가 주로 등장한다는 주장도 있다. 지역화폐는 법률에 따라 중앙은행이 발행해 강제 통용력을 갖는 법화와는 달리 지역사회 또는 지역공동체 간 합의를 바탕으로 거래된다.
지난 8월말 기준 지역상품권을 발행한 지자체는 11개 시·도 64개 기초 지자체에 달한다. 인천 1곳, 광주 1곳, 경기 4곳, 강원 10곳, 충북 8곳, 충남 8곳, 전북 4곳, 전남 11곳, 경북 8곳, 경남 8곳, 제주 1곳 등이다.
광역 자치단체 단위에서 도입한 지자체는 강원도가 유일하다. 발행 규모는 2016년 30억원, 2017년 550억원, 2018년 250억원 등 현재까지 830억원에 육박한다.
전국적으로 지역화폐 발행 규모는 2015년 892억원에서 2016년 1087억원, 지난해 3100억원으로 급증했다. 올해는 3300억원 가량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가 지난해 국정과제로 지역화폐를 활성화하기로 하면서 더욱 주목을 받고 있다. 정부는 무너지는 골목상권을 되살리기 위해 지방 공무원의 신규 복지 수당, 복지 포인트를 최대 30%까지 지역화폐로 지급하기로 했다.
지역화폐는 대도시나 광역시도 보다는 주민의 지역 애착도와 공동체성이 높은 농촌, 산촌, 어촌 등 지방 소도시에서 도입효과가 크다. 지역 주민의 타지역 구매 대체효과, 관광객의 지역 내 구매 촉진, 내부 순환 등 효과도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행정안전부가 지난 1월 한국지방행정연구원에 의뢰한 '고향사랑 상품권 경제적 효과 분석 및 제도화 방안' 연구 결과에 따르면 상품권 도입으로 강원 양구군 소상공인 1인당 소득이 2.13%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역주민이 다른 지역소비를 줄이고 지역 내 소상공인 상품 이용을 늘린 덕분이다.
강원 화천군의 경우 상품권 발행 및 운영 예산(4400만원) 대비 부가가치 효과가 15.9배(6억9800만원)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성남시가 지난 2016년 빅데이터로 분석한 결과에서는 설 명절 시기 골목형 시장인 분당 돌고래시장과 금호시장 매출이 지역화폐에 힘입어 평균 27.8% 늘어났다.
지역화폐는 주로 지역 축제나 관광지 홍보에 열 올리는 지자체가 발행하고 있다.
관광객에게 상품권을 판매해온 강원 춘천시는 외지인의 지역 내 매출 기여도가 큰 것으로 분석됐다. 지난해 1~8월 기준 상품권 판매액은 6억원, 지역 내 매출은 22억8000만원으로 3.75배에 달했다. 이는 관광객 한 사람이 춘천에서 상품권을 1만원어치 구매하면 지역 내에서 3만7500원가량을 소비한다는 의미다.
전남 곡성군이 발행하는 지역화폐 '곡성 심청 상품권'은 2001년 이후 올 4월까지 262억원가량 유통됐다. 상품권 가맹점만 400곳이 넘는다.
산천어축제로 유명한 강원 화천군에서는 1만2000원을 내고 입장권을 사면 화천군에서 사용할 수 있는 5000원권 상품권을 받는다. 지난해 화천 상품권 발매액 17억4000만원 가운데 중 40%가 넘는 7억2000만원이 축제 기간에 팔렸다. 화천군 지역화폐 유통액은 175억원을 넘어섰다.
제주도에선 전국 최초로 전통시장 전용 지역상품권인 '제주사랑상품권'이 지난 2006년 9월부터 발행됐다.
전북 군산시도 최근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군산사랑상품권 판매에 들어갔다.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 가동 중단, 한국GM 군산공장 폐쇄로 어려운 군산 경제에 도움을 주기 위해서다. 상품권은 5000원권과 1만원권으로 10% 할인 판매한다. 지역상점 5000여곳이 가입한 상태다.
경기도 성남시는 지난 2006년 전통시장 활성화를 위해 성남사랑상품권을 도입했지만, 현재 가맹점이 2860여곳으로 늘어났다. 지난해 청년배당, 생활임금과 최저임금의 차액, 아동수당 등을 성남사랑상품권으로 지급하기도 했다.
지역화폐는 타 지역이나 대형 할인마트 등에서는 쓸 수 없어 주로 골목상권과 재래시장으로 풀린다. 지역자금의 외부 유출을 최소화하고 지자체 재정자립도를 높이는 데 유리하다는 평가다.
또 신용카드처럼 수수료를 내지 않아 상점 주인들이 선호한다. 지역 내 거래와 생산, 소비가 확대하는 '선순환 구조'를 기대할 수 있다. 특히 설, 추석 등 명절 시기에 집중 유통되면서 대목 경기에도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지역화폐는 농어촌 지자체에서 점차 서울, 수도권 대도시로 확산되는 추세다.
올 하반기나 내년 초에 경기도 양주시, 안산시, 시흥시, 충북 온천군 등 약 10곳이 향후 지역상품권을 발행할 예정이다.
광주시는 지역화폐 도입을 위해 타 지자체 운영 사례, 행정안전부 연구용역 결과 등을 검토하고 있다. 전남도도 정부 소상공인 전용 결제방식을 하나로 통합하는 방침에 맞춰 지역화폐인 '전남페이'를 도입할 방침이다.






<표-고향사랑 상품권 발행 현황>
(2018년 8월 기준, 행정안전부)
광주=김한식기자 hski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