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고 좋은 차, 좀 심하게 표현하면 막 타기에 좋은 차, 유럽에서 가장 많이 팔린 전기차 르노의 '조에(ZOE)'를 시승한 이후에 내린 결론이다.
차량 가격 3000만원, 1회 충전 시 주행거리 300㎞(WLTP기준)에다, 요즘에 나오는 신차에서 흔히 보는 편리한 기능을 지닌 건 아니지만, 흠잡을 게 없이 완성도가 높은 차였다.
시승하는 동안 내내 사회초년생이나 주로 한 두명이 타는 영업사원용 법인차량으로 쓰면 좋겠다는 생각을 수차례 하게 됐다.
이달 초 프랑스 파리 중심지에서 일드 프랑스(Ile-de-France) 지역에 위치한 르노 프란(Flins) 공장과 시내 외곽의 베르사유궁전을 경유해 다시 파리 시내로 돌아오는 약 110km 구간을 르노 '조에'로 시승했다. 조에는 2012년 출시된 후 유럽에서 12만대 넘게 팔린 '베스트 셀링카'다. 소형차를 선호하는 유럽시장을 타깃으로 제작돼 유럽 이외에는 거의 출시되지 않은 차다.
시승한 모델은 2018년형 '조에 R110 에디션 원'. LG화학의 41㎾h급 고성능 리튬이온 배터리를 장착하고도 가격은 불과 2만3600유로, 우리 돈 약 3000만원이다. 평균 4000만원 중후반하는 우리나라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가격이다.
비슷한 용량의 배터리를 장착한 닛산 '리프 2세대'보다도 크게 저렴하고, 조에보다 낮은 배터리 용량의 기아차 '쏘울EV', 현대차 '아이오닉 일렉트릭'보다도 1000만원 가량 싸다. 국내 소비자들이 알면 깜짝 놀랄만한 일이다.
우리나라에서 조에를 산다면 국가 보조금 등을 지원받아 1000만원 중반에 구매할 수 있다. 그렇다고 가격만 저렴한 게 아니라 주행(거리)성능은 웬만한 요즘 신형 전기차보다 뛰어나다.
'START' 버튼을 누르자, 반갑게도 르노삼성 'SM3 Z.E.'와 비슷한 미세한 저음의 전기모터 소리가 들렸다. 계기판에 'READY' 표시 들어온 후 기어 레버를 'D'로 옮겨 주행을 시작했다. 프랑스 파리의 아름답고 생소한 풍경만큼 조에 주행 역시 새로웠다. 시내 외곽에 접어들면서 악셀를 힘껏 밟았다. 88마력 65kW 전기모터를 장착해 전기차 고유의 고출력과 빠른 질주감은 다른 승용 전기차와 다르지 않았다.
소음이나 흔들림도 없었고 속도감도, 승차감도 손색 없었다. 이어 엑셀을 더욱 힘껏 계속 밞았을 때 속도가 140km/h으로 제한됐다는 사실을 알았다. 즉시 차량 제원표를 살펴보니 1㎾h의 전기로 9.7km를 달린다고 적혀 있었다. 역시나 속도를 제한한 이유가 효율 때문일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속도를 제한한 건 아쉬웠지만, 지금까지 경험해본 전기차 중에 가장 좋은 연비(전비)다. 우리나라에서는 100원도 안되는 1㎾h 전기로 거의 10㎞를 주행하는 셈이다.
운전 중에 옆자리에 탄 르노직원에게 조에의 인기 비결이 무엇이냐고 질문했다. 대답은 '탁월한 디자인' '우수한 파워트레인 설계로 인한 뛰어난 에너지 효율' 그리고 도심지역 주행에 최적화된 모델이라는 설명이다.
'디자인'을 첫 번째로 꼽길래, 차에 내려 외부를 꼼꼼히 살폈다. 전체적으로 동글동글한 느낌의 작고 귀여운 이미지 였다. 전면부는 르노 엠블럼과 헤드램프가 이어지는 디자인을 적용해 역동성을 강조한다. 엠블럼 뒤에 전기차의 충전 포트가 장착돼 멀리서 봐도 전기차임을 한눈에 알수 있다.
조에는 도심생활에 유용한 전기차다. 전기차는 '고급차' '비싼차'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에 충분했다. 최대 주행거리가 300km까지 늘어나, 전기차는 매일 충전해야 한다는 부담도 없다. 한국에 출시된다면 패밀리카 등 큰차를 선호하는 개인 고객보다 업무용 법인차량 고객에 유용할 것이다.
파리(프랑스)=
박태준 자동차 전문기자 gaius@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