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초고성능컴퓨팅(HPC) 사업이 겉돌고 있다. 계획한 예산도 확보하지 못하고, 개발 조직도 분리돼 시너지가 전무한 것으로 드러났다. 지능정보사회를 위해 야심 차게 출범한 'HPC사업단'은 이름뿐인 조직으로 전락할 공산이 커졌다. 한국형 HPC 사업에 먹구름이 드리워진 것이다. 장밋빛 계획에 그친 HPC 사업은 이미 예고돼 있었다. 정부는 5개년 사업으로 매년 100억원을 투자해서 2020년까지 1페타플롭(PF)급 슈퍼컴퓨터를 개발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예산 확보에 실패하면서 2016년 설립 예정으로 있던 HPC사업단은 1년이나 늦은 지난해 중반에 출범했다. '뭉텅이 예산'은 고사하고 시스템 소프트웨어(SW), SW특성화대학,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 과제비 등에서 예산을 자투리로 받아오면서 '누더기 예산'으로 전락했다. 여기저기에서 급하게 예산을 끌어오면서 HPC사업단 중심의 과제 수행이 힘들게 됐을 뿐만 아니라 개발 조직도 분리됐다. 하드웨어(HW)와 SW를 분리해 시너지도 전혀 없고, 개발이 되더라도 원하는 성능이 나올 지 걱정하는 상황이다. 정부도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 예산이 부족하고 분리 개발해 반쪽 사업으로 전락할 공산이 커졌지만 뚜렷한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올해 4분기부터 개발 주체끼리 분기와 반기 워크숍을 개최하겠다는 엉뚱한 답변만 나오고 있다.
HPC는 빅데이터·인공지능(AI) 시대에 필수 플랫폼이다. 과학기술 수준을 높이는 인프라로서 환경 문제, 재난 예측, 국가 미래전략 수립 등 쓰임새도 무궁무진하다. 이 때문에 미국·일본 등 선진국은 물론 중국도 매년 1조원 이상을 투입하고 있다. 국내도 단순히 포토폴리오 차원에서 HPC 사업을 바라봐서는 안 된다. 막대한 연구 예산이 필요한 이유는 그만큼 개발이 어렵지만 쓸모가 많고, 국가 경쟁력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어떤 분야보다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더 늦기 전에 HPC 사업을 다시 들여다봐야 한다. 예산부터 개발까지 면밀하게 점검해야 한다. 연구개발(R&D) 분야 대표 전시 행정 사례가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