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직속으로 '4차산업혁명위원회'가 만들어질 당시 청와대는 위원회 명칭에서 '혁명'이라는 단어에 솔깃했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촛불 혁명'으로 박근혜 정부를 심판해서 정권을 잡았다는 배경 때문이었다. 정확한 목적과 방향에서 설립했다기보다는 그만큼 우여곡절 끝에 만들어졌다는 이야기다. 그때는 농담으로 들렸다. 위원회 출범 1년을 맞는 지금은 사실이 아닐까 하는 엉뚱한 생각이 든다. '위원회 무용론' 때문이다. 쓴소리가 빗발친다. 분위기만 봐서는 당장 간판을 내리든지 이름이라도 바꿔야 할 판이다.
따가운 시선에 위원회는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할 만큼 했다”고 강변할 수 있다. 그래도 칭찬보다 비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단순히 위원회 성과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 미래가 달렸기 때문이다. 따져 보면 위원회에 쏟아지는 비난은 그만큼 기대가 컸기 때문이다. 기대에 비례해 실망도 클 수밖에 없는 법이다. 조만간 2기 위원회가 새 진용을 갖추고 출범한다. 2기는 달라야 하지 않을까.
세 가지를 제안하고 싶다. 먼저 확실한 방향성이다. 4차산업혁명이라는 용어조차도 자리 잡지 않은 상황에서 명확한 위원회 실체를 보여 주기란 쉽지 않다. 분명한 지향점이 필요하다. 위원회 존재 근거인 '4차산업혁명위원회 설치 및 운영에 관한 규정'에 따르면 위원회 기능이 무려 14가지가 된다. 국가 전략 수립에서 부처별 실행 계획 조율, 신산업과 신서비스 육성, 인재 양성, 핵심 기술 확보, 생태계 조성, 사회 합의 도출, 국제 협력과 지역 혁신, 심지어 국민 공감대 형성까지 A4 한 장이 훌쩍 넘어간다. 예산 43억원, 위원 30명 안팎으로 가능할 지 신기할 정도다.
과욕이다. 선택하고 집중해야 한다. 할 수 있는 일과 하고 싶은 일은 다르다. 필요한 분야를 선정해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게 존재감에 유리하다. 규제 혁파나 미래 인재양성, 일자리 로드맵과 같은 큰 그림이면 족하다. 그것도 부담스럽다면 '4차산업혁명 활성화 법'과 같은 틀을 마련해 주는 게 옳다. 4차산업혁명을 위한 생태계 기반을 만드는데 주력하자. 추진 주체는 어차피 기업이다.
두 번째는 유연한 리더십이다. 역할과 책임을 구분해서 맡겨야 한다. 위원회는 행정 부처가 아니다. 정책 자문과 조정이 주된 업무다. 실상 힘이 없는 한시적 자문 조직일 뿐이다. 정책 수립, 추진, 실행은 희망사항일 뿐이다. 이 때문에 청와대와 담당 부처 역할이 중요하다. 청와대에서는 과학기술보좌관, 담당 부처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로 각각 일원화돼 있다. 문미옥 보좌관과 유영민 장관에게 역할을 맡겨야 한다. 두 사람은 장병규 위원장 못지않게 4차 산업혁명에 관해 속속들이 알아야 한다. 이들이 위원장 못지않은 소명의식으로 의제를 적극 제시하고 대응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대통령을 움직여야 한다. 대통령이 나서면 쉽고 빠르게 갈 수 있다. 대통령 한 마디에 기업이 움직이고 공무원이 뛰기 시작한다. 부처별로 엉킨 실타래도 손쉽게 풀 수 있다. 속 보이지만 어쩔 수 없다. 정보화 불모지로 있던 대한민국이 정보통신기술(ICT) 강국으로 우뚝 선 배경에는 소신 있는 정책 관료, 밤낮없이 뛴 기업 역할이 컸다. 무엇보다 집권자의 따스한 시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1년 전 위원회 출범식에서 “대한민국 미래를 부탁한다”고 당부했다. 4차 산업혁명이 정말 대한민국 미래라고 대통령이 진심에서 믿는다면 나머지는 모두 일사천리로 진행할 수 있다. 그러나 거기까지는 위원회가 함께 가야 한다. 그게 위원회에게 주어진 가장 큰 임무다.
전자/산업정책 총괄 부국장 bjk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