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리경제는 주력산업 부진과 미래 먹거리 발굴 지체로 성장 잠재력이 약화됐다. 사회와 산업 전반에 한 단계 '점프업'이 필요하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인공지능(AI)이 주목받는다. AI 선도국은 잠재력에 주목하고 관련 기술을 선점하기 위한 대책 마련에 힘쓴다. 우리나라 AI 산업 수준은 선진국 대비 뒤처진다. 하지만 AI 융합은 초기단계인 만큼 전략적 접근과 추진력을 갖춘다면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 전자신문은 산업통상자원부, 산업통상자원 R&D전략기획단,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 한국산업기술진흥원, 한국에너지기술평가원 함께 '산업기술 혁신성장 좌담회'를 개최한다. 앞으로 분야별 전문가와 함께 혁신성장을 뒷받침하는 산업기술 발전 방안을 논의하고 대안을 제시한다. 첫 회로 서울 테헤란로 R&D전략기획단에서 '혁신성장을 위한 산업지능 구현방안'을 주제로 좌담회를 열었다. 산업지능(AI for Indusries)은 AI 기술 산업영역 적용을 의미한다. 고객가치 창출, 생산성 향상 등 산업 측면에서 AI를 다룬다.
◇참석자(가나다 순)
김경남 셀바스AI 대표
민승재 삼성SDS 마스터(데이터분석센터장)
설원희 산업통상자원 R&D전략기획단 산업융합MD
이정동 서울대 산업공학과 교수
이형수 전자부품연구원 융합시스템연구본부장
정구민 국민대 전자공학부 교수
정덕균 포스코 정보기획실 전무
※사회=이호준 전자신문 산업정책부장
◇사회(이호준 전자신문 부장)=우리 경제가 어렵다는 얘기가 많이 나온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산업 차원 뒷받침이 필수다. AI를 비롯한 신기술과 신산업 역할이 중요하다. 그만큼 AI에 대한 기대감도 높은데 현황은 어떤가.
◇설원희(R&D 전략기획단 MD)=과거 AI를 헬스케어에 도입하는 과정에서 의사의 반대, 환자의 불신, 보험회사 회의적 시각 등 난관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 AI는 의료 분야에서 가장 유용한 툴로 인정받고 있고 혁신적인 융합서비스를 구현한다.
많은 기업이 혁신 기회를 잡지 못 해 고배를 마시곤 한다. 자동차와 PC 확산에서도 기회를 잡은 기업보다 그렇지 못한 기업이 더 많았다. AI는 정체된 현재 산업 전반을 혁신할 근본 기술임을 고려할 때 관련 기술력 확보는 필수다. 각 산업과 국가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 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엑센추어 보고서에 의하면 2035년까지 12개 선진국을 분석했더니 AI를 적극 활용했을 때 경제성장률이 2배 정도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최근 정부도 '플랫폼 경제 구현을 위한 3대 전략투자 분야' 중 하나로 AI를 선정하고 향후 인공지능 기술 고도화와 산업과의 연계를 통한 고부가가치 산업 창출을 준비 중이다. 산업 지능화를 고민할 때 우리 기술을 잘 확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다른 나라의 산업지능 생태계와 어떻게 융합할지를 고민하는 것도 필요하다.
◇정구민(국민대 교수)=우선 AI 대표 분야라 할 수 있는 자율주행차와 스마트폰 분야를 보면 확실히 우리나라보다는 외국계 기업이 돋보인다. 자율차는 구글과 벤츠가 앞서가고 있다. 지금은 레벨 3 자율주행을 통해 고속도로 정도는 자율차가 책임져야 한다는 수준까지 언급되고 있다. 이미 많은 자동차 메이커가 고속도로 자율주행을 구현하고 있다. 2021년쯤엔 레벨 3 상용화를 통해 고속도로 자율주행 시대가 열릴 것으로 보인다.
이제는 도심주행을 위한 레벨 4, 5가 이슈다. 구글은 애리조나·캘리포니아 등에서 시범 운행 중이다. 벤츠-보쉬는 2019년 실리콘밸리 도심 자율주행 서비스를 발표했다. 일본은 2020년 도쿄 올림픽을 목표로 상용화 준비에 나서고 있다. 우리나라는 판교에서 자율주행 셔틀 운행 발표가 있었다. 도심 자율 주행은 고속도로보다 더 많은 것을 계산해야 되는 만큼 교차로 주행, 차선 합류, 끼어들기 상황 등에 대한 문제로 진화하고 있다.
◇사회=우리 기업과 연구계에서 AI가 어떻게 활용되고 개발되고 있는지, 시장은 어떤지 궁금하다.
◇민승재(삼성SDS 마스터)=삼성SDS는 스마트팩토리와 물류에서 성공적인 적용사례를 보유하고 있다. 스마트팩토리 솔루션을 통해 IoT 센서로 수집되는 대용량 빅데이터를 AI로 분석해 실시간 이상 감지는 물론 장애시점을 예측해 설비 가동률을 높였다. 제조 생산과정 최적화를 통해 공정품질을 30% 향상시켰다.
물류 분야에선 유럽 전자제품 유통회사 매장에 적용한 결과 판매 예측 정확도를 25% 이상 향상시켰다. 유통회사 경우 매장 재고를 최적 수준으로 유지하려면 정확한 판매수요 예측이 중요하다. 판매량 예측을 통해 통합관리가 가능한 배송센터를 구축해 유럽 전자제품 유통회사 매장 재고를 줄이기도 했다.
◇정덕균(포스코 전무)=포스코는 약 3년 전부터 스마트팩토리를 적용했다. 포스코는 철강 공급과잉과 1970~1980년대 입사한 전문인력이 곧 퇴직을 앞둔 문제를 안고 있다. 회사 입장에선 이들 노하우를 어떻게 계승할 것인지에 대해 고민하고 스마트 기술 사용을 결정했다.
포스코가 정의한 스마트는 우리 경험과 스마트 기술 융합이었다. 철강 1위 기업 조업 노하우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다. 본연의 경쟁력을 어떻게 올릴 것인지가 스마트 도입 과정 핵심이었다.
포스코는 플랫폼도 자체 개발했다. 그동안 플랜트 산업·철강 분야에서 쓰이던 플랫폼은 단일 공정별 툴이었지 연속공정을 다루는 플랫폼은 없었다. 포스코는 하루에 약 300GB에 달하는 데이터를 수집하고 연간 120TB 데이터를 저장한다. 쇳물을 녹이는 고로는 너무 뜨거워서 데이터를 확보할 수 없었다. 그동안은 전문가 감으로 판단했는데 지금은 고성능 측정장치로 데이터 분석이 가능하다. 자동차용 아연도금판 코팅과 표면결함 판정도 데이터 기반 AI를 통해 품질을 높이고 있다.
◇김경남(셀바스AI 대표)=AI가 최신 개념은 아니다. 카메라로 들어오는 영상을 통한 서식 인식, 그리고 지금 스마트폰에서 쓰이고 있는 핸드라이팅 등도 20여년 전부터 AI였다. 당시 이런 AI는 룰 베이스였다. 하지만 인간이 직접 규칙을 적용하던 방식에서 AI가 스스로 학습하는 딥러닝이 적용되면서 관련 기능이 비약적으로 개선됐다. 과거처럼 필기 데이터를 저장해 룰 베이스 형태 세계 언어 인식 AI를 만든다고 하면 어마어마한 데이터를 확보해야 했다. 지금은 다르다.
메디컬 헬스케어 분야에서 AI 도입은 인상적이다. 길 병원이 IBM 왓슨을 도입한 이후 다른 대형 병원이 잇따라 AI를 도입했다. 조금씩 위기의식을 느끼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의료 분야 비정형 생체 데이터를 가지고 패혈증·공황장애·치매 등을 분석하는 시도가 진행되고 있다. 충치 발견 등 여러 분야에서 동시 다발적 연구 중이다.
의료 쪽에서 상용화를 구상하는 AI 서비스는 건강검진 데이터를 통한 질병 예측이다. 혈액검사를 포함한 검진데이터와 가족력, 생활습관 등이 담긴 문진 데이터를 이용한 AI 모델을 통해 질병 예측이 가능하다. 한중일 3국 검진센터에서 상용화했다. 최근에는 보험사 쪽으로 서비스를 확장 중이다.
◇이형수(전자부품연구원 본부장)=AI 기초기술은 유럽이 강세를 보여 왔고 미국은 AI 선도 기업이 대규모 장기 투자로 빠르게 우위를 점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중국과 일본에 비해 상승속도가 느리다. 전자부품연구원은 로봇·복지·의료·자동차·프로세서 분야에서 AI로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딥러닝 기반 '빈-피킹(Bin-Picking)' 로봇, 청각장애인 안전 관련 수어인식엔진 기술 등을 개발 중이다.
로봇은 현재 지속적 데이터 학습으로 복잡한 곳에서도 원하는 물건을 고를 수 있는 인식률이 96.5%에 달한다. 수어인식엔진은 손과 얼굴, 입 등에서 특정 점을 추출해 수어를 96%가량 한국어 문장으로 옮길 수 있다. AI 관련 핵심 프로세서는 빅데이터 학습을 위한 뉴럴 네트워크 프로세서와 독립적 판단을 위한 뉴로모픽 AI 프로세서 핵심 부품을 개발하고 있다.
◇사회=우리 AI 산업 발전과 이를 통한 혁신성장, 글로벌 경쟁력 확보를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또 현장에서 겪는 어려움이 있다면.
◇민승재=AI 인력에는 AI 솔루션 기능을 정의하는 업종 전문가와 이를 구현하는 개발자가 있다. 두 부류 인재를 얼마나 확보하는가가 AI 경쟁력 원천이다.
업종 전문가는 산업이 발전하면서 기업 별로 자연적으로 확보되는 측면이 있다. 이러한 전문가가 AI 관련 지식이 없어도 기술융합을 할 수 있는 오픈 공공데이터 축적과 AI 분석플랫폼이 활성화되어야 한다. AI 개발자는 미국·중국 등 AI 선진국과 차이가 벌어졌지만 최근 우리 대학·대학원생이 데이터분석가, AI 개발자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앞으로 이들 양성 방안에 따라 AI인력 격차를 줄일 수 있다고 본다.
◇이형수=AI 요소는 컴퓨팅자원, 데이터, 알고리즘, 그리고 인재로 구분된다. 국내는 이중 데이터 확보와 인재 육성이 성장 걸림돌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산업별·서비스별 데이터 확보가 중요하다. 업종별 데이터 허브 플랫폼기술과 구축을 위한 민·관 투자와 노력이 절실하다. 기업이 요구하는 인재 양성을 위한 고수준 AI 전문인력 양성과 핵심 요소개발을 통한 전문 AI 스타트업 활성화의 국가적 지원이 필요하다.
또한 공공산업 기반 신뢰성 있는 데이터 확보 및 AI 산업을 위한 표준 데이터를 제공해 산업전반으로 기술을 확대시켜야 한다. 기업 역시 데이터 확보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국가 R&D 과제의 경우는 실증사업 등을 통해 수집·취득한 데이터를 공개하는 의무 규정 등을 두어 많은 연구자가 산업 데이터를 분석할 수 있는 장을 열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정덕균=결국은 사람이다. 전문가 노하우와 빅데이터로 모델링하는 사람이 필요한데 채용이 어렵다. 지금은 70여명 정도 인력을 직접 육성하고 있다. AI는 독립적인 학문이 아닌 모든 것의 연합이어야 한다. 임직원의 일하는 방식도 바뀌어야 한다. 왜 빅데이터로 가야하는 지에 대해 이해시키고 전사적 문화를 바꾸는데 노력했다. 빅데이터 경진대회를 통해 서로를 격려하고 데이터 기반 업무를 고민했다. 양질의 데이터 확보, 일하는 문화 혁신, 조직적인 혁신의 툴 세 가지가 결합돼야 한다.
◇정구민=올해 우버 사고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데이터 셋 수집도 매우 중요하다. 향후 사용이 가능하도록 정밀한 데이터 셋 수집과 처리가 필요하다. 수많은 정보를 처리하기 위해 어떠한 하드웨어를 쓸 것이냐도 이슈다. 우리나라 자동차 AI에서는 하드웨어 응용 분야 발전이 필요하다. GPU 기반 인공지능 소프트웨어 설계에 투자해야 한다.
스마트폰은 AI 칩셋 경쟁이 치열하다. 지난해 화웨이가 기린 970을 발표하면서 화제가 됐다. 우리나라 스마트폰 메이커들은 아직 AI 칩셋을 적용한 제품을 상용화하지 않았다. 내년 정도에 AI 칩셋을 적용한 스마트폰 상용화가 예상되고 있다. 상대적으로 애플과 화웨이가 돋보이는 상황이다. 앞으로는 GPU와 AI 칩셋 경쟁이라 할 수 있다. 손떨림 보정과 같은 것은 AI 칩 하나로 쉽게 해결이 된다.
우리나라 대기업의 AI 투자가 부족했다. AI 미래를 보고 투자를 적극적으로 해온 곳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AI를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져야 한다.
◇사회=국내 AI 기술·산업 발전을 위한 환경조성도 필요해 보인다.
◇이정동(서울대 교수)=산업 지능화는 노력을 기울인다고 다 되는 것은 아니며 시행착오도 있어야 한다. 하지만 과연 지금 우리 사회가 많이 시도할 수 있는 환경인지를 되돌아봐야 한다.
대통령까지 나서서 규제완화를 언급하지만 규제를 없앤다기보다는 업데이트한다는 생각으로 접근해야 한다. 기술 발전에 따라 규제를 계속 바꿔나가야 한다. '규제 프리'식으로 접근하면 관련 담당자는 쉽게 움직이지 않는다.
규제는 사실 정책보다는 정치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정치인들이 정말 많이 고민해야 한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SNS 카풀 문제를 예로 들면 관련 사태는 오래 전부터 예고됐다. 택시 카풀 문제는 10년 전에도 다 알았고 예상된 사태였지만 손을 놓고 있었다.
AI에 대한 기존 인력 저항도 생각해야 한다. AI가 산업에 도입되면서 기존 인력 역할은 어떻게 달라질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스마트화하니 좋다더라” 식 접근으로는 한계가 있다. 공정이 스마트화됐다면 업무 또한 고도화돼야 한다. 스마트팩토리는 회사 전체가 같이 어울려야 된다.
◇김경남=규제 관련 질문을 많이 받는데 아직 규제에 대한 불편함은 있다. 우리가 제공하는 서비스는 진단이 아니고 예측이다. 미국과 일본도 명확히 헬스케어로 인정을 해주고 있다. 우리나라가 글로벌 기업 대비 AI알고리즘과 플랫폼기술이 다소 뒤처져 있더라도 다양한 분야 양질의 의료데이터를 보유했기 때문에 메디컬 헬스케어분야 인공지능 적용모델을 잘 만들면 경쟁력이 있다고 본다.
◇이정동=보조금 지원도 신중해야 한다. 정부가 스마트팩토리 5000만원을 지원하면서 관련 기기만 외롭게 설치됐다. 기기와 데이터가 서로 소통해야 하는데 이런 것이 움직일 수 있는 플랫폼이 없다. 정부가 직접 공공 AI 플랫폼을 만들까 걱정되지만, 해당 플랫폼은 있어야 한다. 정부는 민간기업에 이래라 저래라 할 것이 아니라 산업 지능화를 어떻게 효율적으로 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기업 참여노력이 부족했던 부분도 있다. 지금이라도 빠르게 추진해야 하는데, 올해 우버 사고 났을 때 이곳저곳에서 부정적인 얘기가 많이 나왔다. 이후 우버 테스트는 16개 규제가 추가돼 재개됐다. 16개 추가 조항은 당시 사고로 인해 나온 결과물이다. 만약 우리나라에서 관련 사고가 났다면 몇 개월 뒤에 재시험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사회 문화가 변해야 한다. 19세 학생이 대학교에 들어와 23세에 졸업하는 시스템은 구시대다. 지금은 평생 공부해야 한다. 이들이 학교에서 배운 AI는 취직 후 회사에서 만나는 AI와 다를 것이다. 교육이 아닌 학습으로 바뀌어야 한다.
◇설원희=AI기술이 기술선진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뒤져 있는 것은 맞다. 하지만 산업에 적용해서 경제적인 효과를 보기 위해서 기술 확보 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산업별로 유효한 데이터를 모아 많은 기업이 활용할 수 있는가다.
결국 AI 결과는 연관데이터의 양과 질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본격적인 산업지능 시대는 아직 열리지 않았고 대한민국에게도 기회는 열려 있다. 이 기회를 어떻게 살릴 수 있을까? 플랫폼기반 성공사업 경험치가 적고 하드웨어 위주 제조업을 질 높은 서비스산업으로 탈바꿈시켜야 하는 우리나라에서 기업이 머리를 맞대고 대승적인 차원에서 데이터를 공유해 이 산업지능 생태계에 참여하는 모든 기업이 윈윈하는 경험이 필요하다. 정부는 그러한 산업생태계가 잘 만들어지고 선순환적으로 커갈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데 전력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산업데이터 기반 플랫폼 구축과 더불어서 이를 활용 연계할 수 있는 산업지능 고도화, 그것을 뒷받침하는 산업기술 R&BD 전략화, 환경구축과 정비가 필요한 시점이다. 기업은 당면한 산업문제 해결은 물론 기업가치 상승의 새로운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정리=
조정형 산업정책부(세종) 기자 jeni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