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재생에너지와 함께 성장하는 에너지저장장치(ESS) 시장을 겨냥해 대용량, 긴 수명, 안전성에 강점이 있는 바나듐레독스플로배터리(VRFB)가 부상하면서 희소금속 광물인 바나듐 가격이 13년 만에 최고 수준으로 올랐다.
29일 기준 유럽에서 거래되는 오산화바나듐(V2O5) 시세는 파운드당 28.15달러로 2016년 9월 이후 550% 이상 상승했다. 페로바나듐 가격도 유럽 내 시세가 ㎏당 128.3달러로 2005년 이후 최고치를 경신했다.
바나듐은 주로 자철석 광산에서 부산물로 생산되며 강철에 소량 첨가해 강도를 높이는데 흔히 쓰인다. 최근 최대 산지 중 하나인 중국의 엄격한 환경 규제로 많은 철광석 광산이 폐쇄되고 저품질 철강재에 대한 규제도 강화되면서 바나듐 수요가 늘어 가격 상승 요인이 되고 있다.
여기에 신재생에너지 확대와 함께 향후 수요가 크게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는 바나듐레독스플로배터리가 주목받으면서 가격 상승세에 영향을 주고 있다. 오산화바나듐은 바나듐레독스플로배터리에 많이 쓰인다.
레독스플로배터리는 출력을 담당하는 스택에 전해액이 흐르면서 전기화학 반응을 일으켜 충·방전을 반복하는 배터리다. 전해액으로 바나듐 계열이 주류를 이뤄 VRFB라고 부른다. 현재 상용화된 이차전지 중 가장 긴 20년 이상 수명이 보장되고, 휘발성 전해액을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폭발 위험성이 없다. 전해액 양을 늘리기만 해도 저장 용량을 키울 수 있기 때문에 대규모 제조에 용이하다.
이런 특성 때문에 높은 출력이 필요하지 않고 설치 공간에 제약이 없는 대용량 태양광 발전소나 풍력 발전소, 독립형 마이크로그리드 시스템, 배전용 기기에 신재생에너지와 연계해 사용하는 비즈니스 모델로 각광받고 있다. VRFB가 2028년까지 세계 신재생에너지 연계 ESS 시장의 최대 25% 수준을 차지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중국은 2020년까지 100메가와트(㎿) 이상 규모를 갖춘 VRFB 시범 프로젝트를 시작할 예정이다. 이미 다롄에 풍력 발전 연계 200㎿ 규모 세계 최대 VRFB 기반 ESS 프로젝트를 건설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에만 바나듐 7000톤이 필요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 세계 바나듐 생산량은 8만톤 수준이었다. 2010년 이후 바나듐 생산량이 꾸준히 줄면서 지난해 약 9000톤 공급부족이 발생했다. 강철 생산에 더 많은 바나듐이 필요하고 VRFB로 인한 추가 수요도 발생하면서 공급부족이 심화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업계관계자는 “바나듐 가격이 급격히 오르면서 그동안 낮은 가격 때문에 생산을 포기했던 많은 업체가 생산량을 늘리기 시작해 가격이 안정화될 수 있는 여지가 있다”면서 “배터리 제조사들은 제휴나 장기계약으로 가격 변동을 안정화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현정 배터리/부품 전문기자 ia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