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질안전보건자료 공개 내용 담은 산안법 전부개정안 국무회의 의결...산업계 기밀유출 우려 반발

앞으로 유해하거나 위험한 화학물질을 제조·수입하는 업체가 물질안전보건자료를 작성해 고용노동부에 제출하는 것이 의무화된다. 사전에 고용노동부 승인을 받는 경우에만 화학물질 명칭과 함유량을 영업비밀로 인정받는다. 제출 내용 중 일부는 온라인에 공개된다. 산업재해로부터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취지지만 해외 경쟁업체에 기밀유출 가능성이 있어 산업계가 반발, 시행까지 진통이 예상된다.

ETRI 반도체 실험실.
ETRI 반도체 실험실.

정부는 30일 국무회의에서 이같은 내용이 담긴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법률안'을 심의·의결했다. 개정안은 최근 변화된 산업현장 현실을 반영해 법 보호대상을 확대하고, 산업재해 예방에 대한 사업주 책임을 강화하는 등 내용을 담았다.

먼저 법의 목적을 '근로자' 뿐만 아니라 '일하는 사람'의 안전·보건의 유지·증진으로 확대했다. 그간 산업재해 위험에 노출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산안법 보호대상에서는 제외됐던 특수형태근로종사자와 배달종사자를 보호대상으로 포함했다.

기업의 산업재해 예방을 위한 시스템이 사업장 단위가 아닌 기업 차원에서 체계적으로 작동될 수 있도록 했다. 일정규모 이상 기업의 대표이사는 기업의 안전·보건에 관한 계획을 수립하고, 이를 이사회에 보고해 승인을 얻어야 한다.

사업장의 유해·위험 요소에 대한 실질적인 지배관리권을 가진 도급인 책임을 강화했다. 도급인의 안전·보건조치 의무를 일부 위험한 장소에서 도급인 사업장 전체로 확대해 수급인 근로자에 대한 산업재해 예방책임을 강화하고, 도급인이 의무를 위반한 경우 그 처벌수준을 수급인과 동일하게 높였다.

건설현장에 타워크레인 등 위험한 기계·기구를 운영할 때는 건설공사 도급인이 해당 기계·기구에 대한 안전·보건조치 의무를 부담하도록 하는 규정을 신설했다.

비용절감 목적의 외주화를 방지하기 위해 직업병 발생 위험이 높은 도금 작업과, 수은·납·카드뮴을 사용하는 작업 등의 도급을 금지하되, 일시·간헐적 작업이나 수급인의 기술 활용 목적의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허용했다.

유해하거나 위험한 화학물질을 제조·수입하는 자에게 물질안전보건자료를 작성해 고용노동부에 제출하도록 의무를 부과했다. 유해화학물질로 인한 근로자 건강장해를 예방하기 위한 것이다. 고용부는 그 동안 기업이 영업비밀 여부를 자의적으로 판단해 자료를 공개하지 않아 근로자가 위험에 노출되는 문제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사전에 고용노동부 승인을 받는 경우에만 화학물질의 명칭과 함유량을 영업비밀로 인정받도록 해 화학물질에 대한 근로자의 알권리를 보장했다. 물질안전보건자료 영업비밀에 관한 사항은 비공개 심사한다.

비공개 승인을 받더라도 노출시 유해성·위험성을 유추할 수 있도록 대체명칭과 대체함유량을 기재해야 한다. 고용부는 제출받은 물질안전보건자료 중 일부 내용을 홈페이지 등을 통해 공개하고 전산시스템을 구축해 관리한다.

이에 대해 산업계는 영업비밀 유출 우려가 있다며 반발했다. 반도체·디스플레이 등 업계에선 핵심 첨가제, 물질 한 점 등이 모두 노하우고 영업비밀인데 이를 고용부에 보고하고, 온라인에 일부 공개한다는 것은 해외 경쟁사에 정보를 숟가락 채 떠 넘겨주는 격이라는 얘기다.

박영만 고용부 산재예방보상정책국장은 “물질안전보건자료 비공개 요청이 기각되더라도 해당 기업이 인정하지 못하면 '이의제기' 절차나 행정심판·소송 등을 통해 추가 논의하게 될 것”이라며 “기업의 요구를 충분히 수용할 수 있는 절차를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 국장은 또 “산안법 개정안 중 물질안전보건자료 부분은 산업통상자원부와 환경부 등 관계부처 협의를 거쳐 당초 원안대로 결정됐다”라며 “향후 국회 논의과정에서 산업계 등 추가적인 의견이 나오면 수렴할 것”이라고 말했다.

개정안은 실효성을 담보하고자 사업주의 안전·보건조치 위반에 대한 형사적 제재를 강화했다. 안전·보건조치 위반 사업주에 현행 '7년 이하의 징역'에서 '10년 이하의 징역'으로 상한을 높였다. 안전·보건조치 위반으로 근로자가 사망한 경우 해당 법인에 벌금형의 법정형을 현행 1억원에서 10억원 이하로 높였다.

고용부 관계자는 “정부는 의결된 산안법 전부개정안을 신속히 국회에 제출하고, 개정안이 조속히 통과될 수 있도록 최대한 지원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함봉균 산업정책부(세종) 기자 hbkon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