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세 첫 부과 영국…칼자루 쥔 OECD 압박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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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이 2020년부터 디지털세 부과에 나선다.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과 같은 대형 정보기술(IT) 기업을 정조준했다. 유럽연합(EU) 중심으로 불붙은 디지털세 부과 움직임이 더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이제 막 시작한 국내 디지털세 부과 논의에도 기폭제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변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다. 국제조세 표준(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있는 OECD는 그동안 디지털세 도입 반대 입장을 수차례 밝혀 왔다. 영국의 이번 조치가 OECD 태도 변화를 끌어낼지 관심이 집중된다.

30일 복수 외신에 따르면 영국 정부가 2020년 디지털기업 서비스 매출을 과세 표준으로 설정, 세금을 물린다. 대상은 검색엔진,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플랫폼, 온라인 마켓 등을 통해 벌어들인 수입이다.

세금 탈루 의혹을 받고 있는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을 겨냥한 결정으로 풀이된다. 이들 기업이 벌어들이는 영국 내 매출 가운데 2%를 세금으로 걷겠다는 게 골자다. 영국 정부는 2022~2023년 연간 세금이 약 4억파운드(약 5855억원) 들어올 것으로 예상했다.

필립 해먼드 영국 재무장관은 “조세 시스템에 대한 공정성 훼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조치”라면서 “영국에서 사업하며 수익을 올리는 세계 거대 기업도 공정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디지털세는 기존에 없던 과세 체계다. 법인세와는 별개다. 디지털 서비스 매출에 일정 세율을 곱해 세액을 계산한다. EU가 유럽 내 기업 평균 실효세율(매출 대비 납부세액)을 조사한 결과 23%로 나타났다. 반면 디지털기업은 9%에 불과했다. 디지털세를 2~3% 추가, 적어도 10%대 세금은 내도록 하겠다는 게 EU와 영국의 구상이다.

세계 주요 국가들이 이 같은 행보에 동참했다. 영국에 앞서 스페인이 먼저 칼을 빼 들었다. 내년부터 디지털세 3%를 걷을 계획이다. EU는 2020년에 3%를 물린다. 다만 걸림돌이 있다. 아일랜드, 체코, 스웨덴, 핀란드가 반대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수십여 나라에서 디지털세 부과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인도를 비롯해 아시아·태평양 지역 최소 9개 나라와 중남미 국가가 포함됐다. 국내 역시 첫 디지털세 법안이 발의될 예정이다. 세율은 EU와 같은 3%가 유력하다.

OECD와의 대립이 불가피해졌다. OECD는 현재 '이전 가격 가이드라인'을 설계하고 있다. 이전 가격은 특수 관계 거래에 적용된 금액을 뜻한다. 2020년에 선보인다는 목표다. 시일이 더 연장될 가능성이 짙다. OECD는 고정사업장 기준으로 세금을 부과하는 전통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디지털세 찬성 진영과는 완전히 결을 달리하는 셈이다.

OECD 가이드라인이 법률 구속력을 갖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국제표준이라는 점에서 세계 모든 나라가 따를 수밖에 없다. 영국도 OECD 가이드라인이 나올 때까지만 디지털세를 유지한다. EU도 비슷한 입장이다.

임재광 법무법인 양재 회계사는 “OECD가 내놓을 고정사업장 기준 조세 체계에 세계가 따라갈 수밖에 없다”면서 “EU, 영국 움직임이 큰 반향을 일으키진 못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임 회계사는 “OECD를 자극해 가이드라인 작업 속도를 높이게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종희기자 choijh@etnews.com, 전지연기자 now21@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