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아, 정현 등 불모지에서 자란 운동선수가 세계인들의 눈길을 끄는 멋진 경기를 펼치고 나서 세계 스타로 발돋움할 때마다 온 국민은 한마음으로 기뻐하고 감동한다. 훌륭한 DNA와 개인의 피땀 어린 노력이 주요 성공 요인이다. 그러나 선수 성과를 바탕으로 시스템을 체계화하고 업그레이드한다면 우리는 제2, 제3의 김연아와 정현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요즘 국가 연구개발(R&D) 사업에 필요한 것 역시 우수 자원을 지속 육성하는 합리화 프로세스다. 2017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국 가운데 7위 수준의 국내 과학기술 혁신 역량과 우수한 정보통신기술(ICT) 수준을 고려할 때 국가 R&D 관리시스템 진화는 여전히 더디다. 평가 방식까지 세세하게 정하면 재량권이 없어져서 과제별 특성을 반영하기 어렵고, 새로운 혁신은 시도도 하지 못한다. 문제가 지적될 때마다 세부 가이드라인을 만들다 보니 규정 책자만 두꺼워져 간다.
국가 R&D 20조원 시대에 걸맞은 야심만만한 아이디어를 활성화하기 위해선 새로운 R&D를 해야 한다. '계획 대비 잘했느냐'를 보는 평가는 더 이상 의미가 없다. R&D 성과는 가치가 있는지, 활용은 어떻게 가능한지, 정부가 지원할 당위성은 있는지 등을 판단해야 한다. 평가위원 전문성을 논하기에 앞서 1점 차이로 탈락 또는 중단시키는 결정을 하는 심사가 아니라 의미 있는 결과가 나오도록 코칭하는 것으로 역할을 변경해야 할 때다. 5~6명의 소수 인원이 내놓는 한정된 지식보다 인터넷 평가시스템을 기반으로 다수 지성의 지혜를 모아야 한다.
'개발해 놓은 기술은 많은데 기초 원천 투자 부족과 단기성 지원, 부처 칸막이 등으로 연속성이 떨어지고 활용성이 낮다'는 정부기관 성과 분석과 개선 방안에는 수긍이 된다. 국가 R&D 투자를 하는 마당에 원천성이나 사업성도 없는 상태로 어중간한 영역에서 한번 해보자는 식의 투자는 언제까지 계속할 것인가. 기술성숙도(TRL) 2~4단계 영역에서 창의 아이디어로 세계 최고 기술에 도전하거나 TRL 6~8단계에서 트랙 레코드를 위한 확산 또는 사회 문제 해결형 R&D를 강화해야 한다.
2017년부터 적용된 국가 R&D 일몰제도는 예산 효율성과 R&D 정책 정합성 측면에서 시행되고 있다. 기술 단계별로 태동인지 성숙인지와 시장 진입 방식별로 차별화시켰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또 모든 신규 사업에 구체화한 목표를 요구하는 것도 2~3년 전에 정해진 대로만 연구하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에 아이디어를 구현하는 시간 싸움인 R&D 영역에는 맞지 않다. 수시로 중단과 신규 과제를 채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국가 R&D시스템의 올바른 역할을 위해서는 일률로 요구하는 세부 지침보다 시장 수요를 반영한 다양성과 재량권으로 혁신의 장을 만들어 주는 것이 필요하다. 국가 R&D에서 자주 사용하는 '선택과 집중 방식'은 국제통화기금(IMF) 관리 체제 이전부터 강조해 온 것이다. 대기업 중심의 경제 성장을 추구하던 시대는 지나갔다. 옳고 그름을 떠나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바꿔야 한다.
기업 간 수주 경쟁이 과열되는 분야에서 한쪽 손을 들어주거나 자금까지 쏟아 넣어 시장 경쟁 논리를 왜곡시킬 수 있는 일은 그만하고 배터리, 자율주행 자동차와 같은 미래의 게임 체인저 분야에서 창의 연구 경쟁을 유도해야 한다.
국가 R&D 20조원 시대에 도전하는 아이디어를 활성화시키고, 기간산업이자 혁신 성과를 창출하기 위해 일률로 정한 세부 지침보다 시장 요구를 반영하는 다양성과 재량권으로 혁신의 장을 만들어 주는 것이 필요하다.
방대규 한국에너지기술평가원 연구위원 bang@ketep.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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