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급 화마가 미국 캘리포니아를 덮쳤다. 같은 날 세 곳에서 불길이 연달아 치솟은 '트리플 산불'이었다. 북부 뷰트 카운티에서 가장 큰 '캠프 화재'가 발생했고, 남부 벤츄라 카운티를 시작으로 '울시 화재'와 '힐 화재'가 뒤를 이었다.
이번 화재는 '최악의 산불'로 불린다. 많은 사람과 건물을 삼켰기 때문이다. 22일 기준 83명이 숨졌고, 563명의 행방이 묘연한 상태다. 한때 실종자가 1000명을 훌쩍 넘겼던 것에 비하면 많이 줄었지만, 실종자 상당수가 80대 이상 고령자여서 인명피해는 추가로 늘어날 전망이다. 이는 캘리포니아에서 발생한 이전 산불을 아득히 뛰어넘는다. 가장 많은 사망자를 낸 1933년 그리피스 파크 화재에서도 29명이 희생됐다.
건물 피해도 압도적이다. 캠프 화재로만 주택 1만3900여채, 상업 건물 500여채, 기타 건물 4200여채가 파괴됐다. 종전 단일 화재로 가장 많은 피해를 입은 건물 수는 5600여채다. 이번 화재의 파괴력은 막강했다.
어떻게 이런 국가재난급 산불이 발생했을까? 사실 캘리포니아는 초대형 산불 발생지로 유명하다. 매년 2500여건의 크고 작은 산불이 일어난다.
그러나 11월에 대형 산불이 발생한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다. 캘리포니아는 가을과 겨울이 우기여서 지금 시점에 많은 비가 내리기 때문이다. 반면에 여름에는 산림이 바짝 마르면서 대형 화재가 집중된다.
올해에는 불행히도 산불 이전에 비가 거의 오지 않았다. '123년 만에 닥친 최악의 가뭄'이라고 불릴 정도였다. 작은 불씨가 여름 내내 가물은 초목을 덮었다.
여기에 바람이 가세했다. 캘리포니아에는 매년 10월부터 이듬해 봄까지 계절풍인 '산타아나 바람'이 불어온다. 이는 모하비사막과 내륙 분지에서 형성된 고기압이 태평양 해안가로 닥치면서 생긴다. 심하면 시속 130㎞에 달하는 강풍이 된다. 특히 시에라네바다 산맥을 넘어오면서 건조해지는데, 불씨가 멀리 퍼지는 최적의 조건을 만든다. 이 때문에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빠른 속도로 불이 번졌다.
이는 연소 면적과 피해 현황을 분석한 결과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캠프 화재의 경우 연소 면적은 22일 기준 15만3336에이커(acre)로 620㎢다. 서울(605㎢) 면적보다 크지만 역대 캘리포니아 산불에 비하면 10위 안에도 들지 못한다. 지난 7월 발생한 산불의 경우 캠프 화재의 세 배인 약 46만에이커를 태웠다. 그러나 사망자는 단 한 명, 건물 피해는 280채에 그쳤다. 위치 요소도 작용했지만 이번 화재가 그만큼 빠르게 번졌다는 방증이다.
일각에서는 조심스럽게 지구온난화가 대형 산불을 키웠다는 의견이 나온다. 기후변화로 기온은 높아지고 강수량이 줄면 더 잦고 강력한 산불이 발생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병두 국립산림과학원 박사는 “산불의 모든 책임을 지구온난화에 전가하는 것은 옳지 않다”면서도 “진작 왔어야 할 우기가 오지 않았다는 점에서 기후가 변한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번 산불은 불로 인한 직접 피해뿐만 아니라 간접적인 환경 피해도 야기할 전망이다. 수많은 피해 건물에서 유해 요소가 피어난다. 건물과 자재 속 유독성 물질이 대기 중에 퍼지고 뒤늦게 오기 시작한 비를 타고 지상에 내려앉는다. 다양한 호흡기 질환의 원인이 되고 암도 유발할 수 있다.
이 박사는 “이번 산불 피해는 직접·간접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사람에게 닥쳐올 것”이라며 “산을 개발하고 활용하는 방식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대전=김영준기자 kyj85@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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