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기술(IT) 업계 화두는 변화다. 4차 산업혁명에 맞춰 새로운 기술이 쏟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변화기는 위기이면서도 한편으로 기회가 되기도 하다. 도태될 수도, 선점할 수도 있다. 그러나 무조건 빠른 것이 좋은 결과로 이어지진 않는다. 빠른 기술 도입에만 신경 씀으로써 자칫 기술 도입으로 무엇을 개선해야 할지 간과하는 경우도 많다.
인공지능(AI)도 여러 기업이 도입에 실패했다.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에 있는 MD앤더슨 암센터가 대표 사례다. 알파고가 AI 열풍을 불러일으키기도 전인 2013년 IBM AI 시스템 왓슨으로 암 진단과 치료법을 추천하는 개발 사업에 6200만달러나 썼다. 그러나 프로젝트는 지난해 중단됐다. 게임업체가 앞 다퉈 가상현실(VR)·증강현실(AR)을 도입했지만 성공한 것은 '포켓몬고' 등 손에 꼽을 정도다.
제조업에선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이 각광받고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 제조업 혁신을 일으킬 동력으로 떠올랐다. 그러나 국내외 공장자동화(FA) 솔루션 기업을 취재하러 나가면 국내 기업 운영자의 경우 디지털화로 어떤 부가 가치를 창출할 것인가와 같은 세부 계획은 세우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디지털과 제조업이 융합하면 안전사고 예측 및 예방, 에너지 효율화를 통한 비용 절감, 생산 자동화를 통한 노동 질 향상 등 다양한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운영자는 기업 특성과 상황에 맞춰 이 가운데 어떤 가치를 구현할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일선 제조업 현장에선 “도입해야 할 것 같긴 하지만 방법도 모르겠고 비용도 많이 들 것 같아 미루고 있다”고 한숨을 내쉰다. 자동화, 디지털화를 담당할 인력이나 교육 프로그램이 부족하다고 한목소리를 낸다. 스마트공장 최종 단계는 의사결정, 생산, 물류까지 자동화하는 것이지만 그 전에 여러 단계가 있다. 막대한 비용이 든다고 생각하지만 단계에 따라 기존 설비에다 일부 투자만 더하면 되는 사례도 많다. 처음부터 완벽한 스마트 공장을 추진할 필요는 없다. 최소 비용으로 기업에 꼭 필요한 가치를 얻는 데 집중하는 게 낫다. 디지털 융합에 너무 큰 그림으로 접근하다가 섣불리 포기하는 어리석음을 저지르지 말자.
오대석기자 ods@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