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그룹이 파격적인 부회장·사장단 인사를 단행하며 정의선 총괄 수석부회장 체제 기틀을 마련했다. 그간 연구개발(R&D) 본부 중심으로 채워졌던 '정의선 사람'들은 기획·전략뿐 아니라 계열사 전체로 고루 퍼지게 됐다. 다만 노무·대관 등 특수 역할에 대해서는 큰 변화를 두지 않으면서 조직 안정화까지 고려했다.
12일 현대차그룹은 김용환 현대차 전략기획담당 부회장을 현대제철 부회장으로, 정진행 현대차 전략기획담당 사장을 현대건설 부회장으로 보임하는 등 부회장, 사장 17명에 대한 인사를 실시했다.
이번 인사에서 가장 큰 변화는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브레인'으로 알려진 김용환 부회장 보직이 변경된 것이다. 1983년 현대차에 입사해 35년 넘게 현대차에서 근무한 김 부회장은 2010년 그룹 기획조정 담당 부회장으로 승진하면서 정 회장의 최측근으로 주요 경영방향 결정에 핵심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미래 자동차 분야에서 뒤쳐진 것과 최근 실적 악화 등에 대한 책임을 지고 일선에서 물러난 것으로 알려졌다.
또 2011년부터 7년 넘게 현대차 대관을 책임졌던 정진행 부회장 이동도 파격적이다. 정 부회장은 회사와 정부 사이에서 다양한 정책에 대한 '가교' 역할을 해왔고, 대체 인력이 없다고 평가받아왔다. 이번 인사에서 승진과 함께 이동한 것은 그간 공로가 인정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4년 넘게 답보 상태인 삼성동 '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 프로젝트 해결사 역할이 주어진 것으로 분석했다.
그룹 홍보실장을 맡고 있는 공영운 부사장은 사장으로 승진하면서 홍보실장과 전략기획담당을 겸직하게 됐다. 그간 정진행 부회장이 맡아온 대관 업무까지 총괄하게 된다. 또 장재훈 전무는 HR사업부장에서 경영지원본부장으로 이동해, 현대차 전체 경영업무를 지원하게 된다.
현대차그룹 경영전략 컨트롤타워인 전략기획 부문은 후속 인사에 따라 정의선 체제가 완성될 것으로 보인다. 앞서 원종훈 기획조정3실장은 지난 8월 인사에서 현대파텍스 대표이사로, 여수동 기획조정2실장은 이번 인사에서 현대다이모스·파워텍 사장 겸직으로 각각 임명됐다. 전상태 전무가 기획조정2실장으로 임명됐지만, 당분간 김걸 기획조정1실장(사장)이 큰 역할을 수행할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그룹은 이번 인사를 통해 R&D 부문의 교체를 단행했다. 정 수석부회장은 이번 인사에서 R&D 부문에 대한 본인 체제를 완성했다.
서울대 기계공학과 73학번 동문인 양웅철 연구개발담당 부회장과 권문식 연구개발본부장 부회장은 나란히 고문으로 물러났다. 그동안 두 사람은 정 회장이 추구하던 '품질경영'을 실현시키기 위한 기술 개발을 맡았다. 양 부회장은 파워트레인(동력계통), 차체, 서스펜션 등 자동차 기술을 총괄했고 권 부회장은 친환경차, 자율주행차 등 미래기술 부문을 담당했다.
알버트 비어만 차량성능담당 사장은 연구개발본부장으로 임명되면서 양 부회장 역할을 맡게 됐다. 첫 번째 외국인 연구개발본부장이 된 비어만 사장은 BMW 고성능차 'M' 브랜드 개발총괄책임자 출신으로 2015년 현대차그룹에 합류했다. 이후 신차 성능 개선과 고성능차 'N' 사업의 성공적인 시장 진입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비어만 사장은 연구개발본부부본장으로 임명된 조성환 현대오트론 부사장과 함께 자율주행차, 커넥티드카 등 미래 자동차 기술 개발에도 힘을 싣는다.
지영조 전략기술본부장은 부사장에서 사장으로 승진하면서 권 부회장이 맡고 있던 미래기술 부문을 책임진다. 브라운대 응용수학 분야 석·박사 학위를 보유했고, AT&T 벨 연구소, 컨설팅 업체 맥킨지·엑센츄어를 거쳐 삼성전자 미래전략실에서 현대차그룹으로 합류한 미래기술 분야 전문가다. 본부 내 오픈이노베이션센터장인 차인규 부사장 등과 함께 스마트시티, 모빌리티, 로봇, 인공지능(AI) 등 미래기술에 대한 핵심과제를 수행하게 된다.
이 밖에도 박정국 현대모비스 사장, 박창섭 현대케피코 부사장, 문대흥 현대오트론 사장 등도 정 수석부회장에 힘을 실어줄 인사로 평가된다.
재계 관계자는 “이번 인사는 젊고 힘이 넘치는 현대차그룹으로 탈바꿈해 미래 자동차 기술 분야에서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한 중요한 변곡점이 될 것”이라며 “연말 정기 인사, 내년 수시 인사 등을 통해 정의선 체제를 완성해 갈 것”이라고 했다.
류종은 자동차/항공 전문기자 rje312@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