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년 전인 2002년 12월 12일 노무현 후보가 대권을 잡았다. 당선 자체가 '기적'이었다. 파란만장한 인생만큼이나 집권 내내 이슈를 몰고 다녔다. 노무현 대통령을 떠올리는 건 최근 정보통신기술(ICT)과 과학계에서 흘러나오는 '홀대론' 때문이다. 홀대라고 말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무관심'이다. 문재인 정부는 노무현 정권 적통을 이어받았다. 참여정부 성과와 업적을 계승하고 발전하겠다고 선언했다. 정치·외교는 물론 경제 정책 기조도 큰 틀에서 방향을 같이한다. 그러나 유독 ICT 분야로 눈을 돌리면 문재인 정부와 노무현 정부는 극과 극을 달리고 있다.
산업계에서 기억하는 '노무현'은 'IT 대통령'이다. 역대 대통령 모두 전자산업과 정보화에 기여했지만 노 전 대통령은 결이 달랐다. 직접 코딩하고 프로그램을 짜는 수준이었다. 국회의원 시절 정치인을 위한 인맥 관리 프로그램을 손수 개발했다. 영국 가디언지는 '세계 첫 번째 인터넷 접속 대통령(World's first internet president logs on)'이라며 당선을 축하했다. 가디언은 “HTML웹사이트 코드를 이해하는 첫 대통령”이라고도 평했다.
노 전 대통령은 집권 후에도 관심이 남달랐다. 청와대 업무관리 프로그램 'e지원'과 'e국무회의' 도입을 지휘했다. 대통령 시절 김병준 비서실장과 함께 작고한 서삼영 전산원장을 수시 독대할 정도로 애정이 각별했다. 이 덕분에 국정시스템 전반을 혁신하면서 전자정부 수준을 크게 끌어올렸다.
노 전 대통령은 무엇보다 안목이 있었다. ICT는 새로운 성장 동력이자 경제 회복 대안이고, 과학기술은 미래를 위한 투자라는 생각이 확고했다. 처음으로 과학기술 부총리 체제를 도입하고 오명 과학기술 부총리에게 임명장을 수여하며 “이제는 20~30년 후 어떻게 먹고살 것인가를 고민할 때”라면서 “과학기술 부총리 체제에 미래가 달려 있다”고 힘을 실었다. 그렇게 '대한민국=ICT 강국'이라는 명성이 자리를 잡았다. 모두 ICT와 과학 이해도가 높았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이 취임한 게 2017년 5월이다. 노 전 대통령 집권 마지막 해부터 따져도 10년 넘은 세월이 흘렀다. 당연히 ICT 산업도 변했다. 훨씬 성숙해지고 저변이 넓어졌다. 단일 산업에서 모든 산업을 받쳐 주는 기반으로 위상이 올랐다. 초등학교 소프트웨어(SW) 교육이 의무화될 정도로 생활 일부가 됐다. 세상이 상전벽해 됐는데 여전히 ICT만 관심을 가져 달라는 주문은 설득력이 떨어질지 모른다. 국정에 바쁜 대통령에게 프로그램 개발 능력을 갖추라는 것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 '오지'(5G 통신)니 '삼디'(3D프린터)니 하는 표현은 우스개로 넘길 수 있다.
그래도 기술에 있는 '진가'는 알아야 한다. 노 전 대통령을 높이 평가하는 배경은 프로그램 능력이 아니라 '디지털 리터러시'에서 나오는 안목과 식견이었다. ICT를 모르고 세상이 어디로 흐르는지 통찰력을 얻기가 쉽지 않다. 대한민국 미래라 일컫는 혁신 성장, 4차 산업혁명 모두 ICT와 과학 없이는 개념조차 잡기 어렵다. 한두 마디 거들 수 있지만 딱 거기까지다. 그래서일까. 미래 키워드를 이야기할 때면 대통령도 청와대도 한없이 초라해 보인다. 지난주 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주요 ICT 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을 백악관으로 초청해 '미래 전략 로드맵'을 논의했다. 실리콘밸리에 팽배한 반트럼프 정서를 알면서도 흔쾌히 손을 내밀었다. 미래를 위해 무엇이 필요한 지를 정확하게 알고 있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노무현 정부 때와 같지만 달라 보이는 이유다.
전자산업/정책 총괄 부국장 bjk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