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IST 이사회가 신성철 총장 직무정지안을 유보하면서 논란이 증폭되고 있다. 정부의 신 총장 직무정지 요구가 관철되지 않아 후폭풍이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KAIST를 비롯한 과학기술계를 덮쳤다. 이사회 결과가 그동안 과기계 기관장을 향한 정부 감사를 비롯해 각종 처우가 정당했는지 여부를 의심하는 기폭제가 될 수 있다. 과기정통부와 과기계 간 갈등의 불씨 역시 해소하지 못해 숙제를 남겼다.
KAIST 이사회는 지난 14일 서울 양재동 엘타워에서 가진 제261차 정기이사회에서 신청철 총장 직무정지 안건 의결을 유보하기로 결정했다. 이사진이 안건을 한 시간 넘게 논의했지만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심도있는 논의 필요' 직무정지 유보…과기계 우려 반영
KAIST 이사진은 '더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는 유보 이유를 밝혔다. 현재로는 과기정통부와 신성철 총장 입장이 첨예한 대립을 보이고 있어 사태의 진실을 명확하게 알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과기정통부는 지난달 28일 “신 총장이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총장 재임 시 비리의혹에 연루돼 횡령과 배임 혐의가 짙다”며 검찰에 고발했다. 미국 로렌스버클리 국립연구소(LBNL)와 국제공동연구 과정에서 국가연구비를 지원받아 22억원을 부당지급하고 이 가운데 일부를 자신의 제자인 임모 박사에게 전했다고 밝혔다. 30일에는 신 총장에 대한 직무정지를 요구해 이사회가 열렸다.
반면 신 총장은 이달 4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22억원 지급은 국내 연구자 연구 확대를 위해 적법하게 진행한 것으로, 이 외 사항은 자신과 무관하다고 주장했다.
이후 과기계 곳곳에서 우려를 표했다. KAIST 교수를 비롯한 과학기술인, KASIT 교수협의회, 미국 실리콘밸리 KAIST 동문회, 바른과학기술사회 실현을 위한 국민연합(과실연) 등이 이사회를 앞두고 관련 성명을 냈다. 신 총장 고발과 직무정지 요구가 적절한 조사와 소명 절차 없이 이뤄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KAIST 이사회 유보 결정에는 이 같은 우려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유보' 결정은 정부 성급함 방증…논란 이어질 듯
이사회 결과로 신 총장이 KAIST 경영 업무를 지속한다. 직무정지를 요구한 과기정통부로서는 난처한 상황이 됐다. 유보 결정이 과기정통부의 신 총장 직무정지 요구가 섣부르게 진행된 것임을 입증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신용현 바른미래당 의원은 정부의 행보가 너무 성급해 신 총장 개인과 KAIST에 피해를 끼쳤다고 피력했다. 다시는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정부 인사와 감사제도 개혁이 불가피하다는 의견도 전했다.
신 의원은 “명확한 시시비비가 밝혀지기 전에 성급하게 비리 혐의가 공개되고 이사회 안건으로 올라가면서 KAIST 위상이나 신 총장 명예가 훼손됐고, 과기계의 국내외 신뢰에도 악영향을 끼쳤다“며 ”인사 투명성을 높이는 인사개혁과, 신뢰할 수 있는 감사방식 개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애초에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에서 벌어진 일로 KAIST 총장을 직무정지하는 것이 이치에 맞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양수석 출연연연구발전협의회 총연합회(연총) 회장은 “애초 사태의 본질을 충분히 파헤치지 않고 검찰 고발이나 직무정지를 논한 것도 문제지만, 근원지와 동떨어진 곳에서 직무정지를 논했다는 것부터 잘못”이라며 “과기정통부가 주장하는 비위행위의 근원지가 DGIST인데 설령 당사자라고 해도 현재 상황에서 KAIST 총장 직무정지를 시키는 것은 옳지 않은 일”이라고 주장했다.
◇진실 파악 중요해져...갈등 봉합도 과제
직무정지안이 유보된 만큼 진실 파악에 힘을 기울여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신 총장 사태로 과기정통부와 과기계가 보인 반목과 진실을 밝히는 일을 냉정하게 분리하고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
과기정통부와 과기계 간 힘겨루기 양상으로 번지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이승섭 KAIST 교수협의회 회장은 “이제 중요한 것은 진실”이라며 “과기정통부와 학교, 과기계가 서로 맞서기보다는 갈등을 효율적으로 잘 풀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양측이 슬기롭게 해결책을 제시해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노석균 과실연 상임대표도 “정부 주장대로 신 총장의 비위행위가 실제로 있었는지, 아니면 문제가 없었는지를 가려내는 것이 중요하다”며 “과기정통부와 과기계가 갈등을 빚는 것처럼 보일 것이 아니라 원만하게 협의하며 진실을 밝혀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김영준 기자 kyj85@etnews.com 공동취재 최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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