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전기차 충전인프라 사업비를 축내는 편법 '브로커'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새해 예산이 확정되기도 전에 브로커들이 수천개 충전기 상면(주차면)을 확보한 뒤, 국가 충전서비스 사업자를 대상으로 별도 수수료를 요구하고 있다. 이들이 활동하는 과정에서 정부기관을 사칭하는 사례가 적발되기도 했다.
20일 업계에 따르면 복수의 전문 브로커가 국가 전기차 충전서비스 업체를 대상으로 편법 영업에 들어갔다. 현재까지 알려진 브로커 업체는 4곳이지만, 전면에 드러나지 않은 업체까지 합치면 10개 안팎으로 추정된다.
이들은 최소 1000개부터 3000~4000개의 충전기를 설치할 주차면(상면)을 확보, 주차면 당 10만원, 많게는 20만원을 충전서비스 업체에 웃돈으로 요구한다. 더 많은 웃돈을 주는 사업자에게 주차면을 재판매하는 방식이다.
정부는 충전기와 설치·공사 지원금으로 공용 충전기 당 약 400만원 보조금을 지원한다. 충전 사업자가 별도 자기사업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보조금 범위 내에서 공용 충전기를 설치해 운영할 수 있다. 설치면을 많이 확보할수록 매출과 이익이 커진다.
정부 보조금을 이용해 수익을 내야 하는 충전 사업자 입장에서는 다량의 주차면을 확보한 브로커 유혹을 쉽게 떨칠 수 없다. 정부 보조금에는 별도의 외주업체(브로커) 영업비 항목이 없다. 충전사업자는 보조금 가운데 일부를 영업 브로커에 지급할 경우 자칫 부실 시공으로 이어질 수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새해 예산 등 정부 계획이 나오기 전부터 다수의 브로커가 충전기 설치사업자를 대상으로 이미 영업 중”이라며 “보통 아파트 단지 별로 브로커가 주차면을 대거 확보한 후 충전사업자를 대상으로 수수료를 요구한다”고 말했다.
브로커가 활개를 치면 부실 설치 가능성이 커진다. 실수요가 없는 아파트 단지나, 접근성이 떨어지는 곳에 무분별하게 충전기를 설치하게 되기 때문이다. 예산 낭비가 우려된다.
일부 브로커 중에는 정부와 환경공단 등을 사칭하면서 주차면을 확보하는 사례도 있다. 환경부는 지난 6월과 7월 두 차례 걸쳐 충전사업자에 브로커 이용을 자제하라는 경고 조치를 내린 바 있다. 하지만 최근까지도 이 같은 불법 영업이 계속되고 있다. 환경부는 다음 달 별도 지침을 마련해 편법 브로커 영업을 근절할 방침이다.
환경부 관계자는 “외주영업은 불법이 아니라 근절할 수 없지만, 문제가 되는 업체는 가려낼 것”이라며 “브로커를 사업자로 공식 등록하는 방안을 포함해 다음 달 사업자 지침을 보완하겠다”고 말했다.
박태준 자동차 전문기자 gaius@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