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일제강점기와 해방, 6·25전쟁까지 고난의 역사를 보냈으나 극빈국에서 기술 강국으로 탈바꿈하는 기적을 연출했다. 해외 선진국이 수백년에 걸쳐 이룬 산업혁명에 버금가는 성장을 불과 수십년 만에 이뤘다. 압축성장 신화를 일군 원동력은 '과학기술'이다. 자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불모의 나라'라는 약점과 한계를 과학기술로 극복했다. 과학기술 개발을 위한 전폭 투자, 국민적 노력은 석유화학, 정유, 전자, 철강을 단기간 주력산업으로 성장시켰다. 과학기술 마법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기술 발전이 또 다른 기술 개발로 이어지면서 지속 성장 고리를 이었다. 그동안 쌓은 과학기술 성과를 재조명하고 의미를 짚었다.
◇1950년대…참치 잡이 기술부터 과학 이론까지
6·25 전쟁의 상흔이 할퀴고 간 국토는 불모의 땅이었다. 먹을 것이 귀했다. 정부는 바다로 눈을 돌렸다. 이승만 대통령은 경제난 타결을 위해 원양어업사업을 국가 주요 관심 사업으로 지정했다. 정부 주도 아래 중앙수산시험장(현 국립수산과학원), 해무청(현 해양수산부), 제동산업 등 관련 기관이 매달려 원양기술을 개발했다.
중앙수산시험장이 연승어구 개발에 착수, 해외 어장 개발의 시초가 되는 시험 조업을 실행했다. 이 과정에서 연승어업 '기초·원천 기술'을 확보했다. 긴 줄에 여러 개 낚시를 매단 이 어구는 식량부족으로 고통 받는 국민을 굶주림에서 해방시켰다.
이후 우리나라 어업 기술 수준은 선진국 대비 0%에서 90%까지 수직 상승했다. 원양어업은 연승어구 기술 확보에 힘입어 1960~1970년대 주요 수출전략산업으로 우뚝 섰다. 외화획득을 이끌었다. 1971년에는 원양수산물 수출금액이 1억달러로 우리나라 총 수출금액 10억달러의 10% 내외를 차지했다.
1950년대 과학기술 성과는 단순히 먹고 사는 문제 해결에 그치지 않았다. 이태규 박사는 불규칙한 액체의 움직임을 설명한 '리-아이링' 이론으로 국제 학계에서 주목받았다. 리-아이링 이론은 비뉴턴 운동 방정식을 세계 최초로 증명했다. 이 박사는 이 성과로 노벨화학상 후보로 거론되며 대한민국 위상을 높였다.
니트로글리세린의 합성과 다이너마이트 제조기술을 국산화한 것도 이 당시다. 화약의 국산화는 1960년대 석회석, 무연탄, 보크사이트 등의 지하자원 개발과 제1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을 성공적으로 이행한 요인으로 손꼽힌다.
전자산업 강국 기반을 마련한 것도 이때다. 라디오 국산화를 이뤘다. 금성사(현 LG전자)는 1958년 라디오 개발에 돌입해 1959년 11월 15일 최초의 국산 라디오 'A-501'을 선보였다. 이전까지 전량 수입에 의존한 라디오를 국산화함으로써 전자산업 일자리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라디오 국산화율은 60%까지 올라섰고 우리나라 전자산업 기틀을 마련했다.
◇1960년대…경제 성장 기반을 다지다
1959년 충주시에 들어선 '충주비료 공장'은 우리나라 최초 현대식 비료 공장이다. 대표 질소질 비료인 요소비료를 생산했다. 1961년 5월까지 3만5000톤을 생산해 비료 자급자족 발판을 마련했다.
충주비료공장은 농산물 생산 확대를 이끈 동시에 우리나라 화학 산업 모태가 됐다. 공정 운영 기술, 장치·설비 유지 보수, 자동화, 건설 경험은 한국 화학 산업 밑거름이 됐다. 충주비료 공장은 영남화학, 진해화학, 충주신공장 그리고 아시아 최대 공장인 남해화학 모체다. 한국 최초 석유화학단지인 울산석유 화학단지 건설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화학산업은 이후 지금까지 우리나라 주력 수출 산업 역할을 이어오고 있다.
대한민국 최초 연구용 원자로인 'TRIGA Mark-Ⅱ'도 1960년대 모습을 드러냈다. 이 원자로는 1962년 3월 첫 임계에 도달한 뒤 1995년 1월 가동이 정지될 때까지 33년 동안 우리나라 원자력 산업 발전에 기여했다. 우라늄 핵분열을 통해 10여종의 의료용 방사성 동위원소 생산과 중성자 관련 연구 등 여러 분야에 다양하게 활용됐다. 1995년 연구용 원자로 '하나로'의 자력 설계·건조에 성공하고, 2009년 요르단 연구용 원자로(JRTR) 건설 사업 수주, 2014년 네덜란드 연구용 원자로 'HOR' 개선 사업 수주가 그것이다. 우리나라는 이후 수출까지 하는 원자로 기술 강국으로 발돋움했다.
◇1970년대…컴퓨터, 컬러 TV '우리 손'으로
1973년 우리나라 최초 컴퓨터 '세종 1호'가 모습을 드러냈다. 세종 1호는 미니컴퓨터지만 완벽한 구성을 갖춘 컴퓨터 하드웨어 효시로 평가받는다. 미국 데이터제네럴사 '노바 01' 사양과 기능을 우리 기술로 구현했다. 처리용량도 12KW로서 표준 사양의 '노바 01'기종과 같고 명령코드와 주소로 구성되는 인스트럭션 구조도 같다. '노바 01'과 차별화되는 점은 당시 미국 인텔사가 개발해 화제가 된 1KB짜리 D램을 메모리로 사용했다는 점이다. 처리속도를 크게 개선시켰다.
컴퓨터 독자개발 감동은 컬러 TV 국산화로 이어졌다. 금성사는 1977년 컬러 TV 첫 모델인 'CT-808' 생산에 성공했다. 흑백 TV 생산 10년 만에 이룬 성과이자 당시 컬러TV 방송시기가 정해지기도 전에 나온 결과물이다.
흑백 TV가 막 생산되기 시작했을 때 TV 한 대당 가격은 6만8000원으로 직장인 1년 연봉보다도 비쌌다. 하지만 물량이 부족해 추첨을 통해 제품을 살 정도였다. 1970년대 중반부터 TV를 선두 제품으로 해외에 구축한 유통망과 영업 전략 노하우 등은 이후 휴대폰 같은 다른 전자·IT 제품의 해외 진출 발판이 됐다.
천재 물리학자로 불리는 이휘소 박사는 이 시기 수준 높은 연구성과를 발표했다. 이 박사의 게이지 이론의 재규격화와 참(charm)입자의 예견(참 쿼크가 존재할 경우 이들이 결합할 때 나타나는 입자들의 성질을 규명)은 소립자 물리학 발전에 큰 획을 긋는 공헌으로 남아있다. 이 연구업적을 토대로 해외 과학자 7명이 노벨상을 수상했다.
◇1980년대…ICT 강국 신화를 쓰다
국내 통신산업은 1986년 전전자 교환기 TDX-1 상용화로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 미국, 일본, 프랑스에 이어 세계 10번째 디지털 전자교환기 자체 개발, 생산국이 됐다. 막대한 수입 대체효과와 기술력 향상을 가져왔다. 무엇보다 경제성장 걸림돌이었던 통신 적체를 해소하고 1가구 1전화 시대를 열었다.
TDX-1 상용화는 곧 TDX-10 상용화 성공으로 이어졌다. TDX-10은 10만 회선, 중계선 6만회선 용량 규모다. 1991년 상용시험에 성공했다. 금성, 삼성, 대우통신, 동양전자통신 4개사가 교환기를 생산해 1997년 말까지 총 400만 회선을 국내에 보급했다. 삼성전자, LG정보통신, 대우통신, 동양정보통신 등 4개교환기 산업체 및 동아전기 등 전원 장비 산업이 이때를 기점으로 성장했다. TDX 개발로 수입대체 효과 4조3406억원, 수출 1조458억원 등 모두 5조3864억원 경제 효과가 창출됐다. TDX 기술은 CDMA(TDX-10MX) 핵심기술로 활용돼 이동통신 분야 경쟁력 강화에도 기여했다.
한글과컴퓨터는 1989년 한글 워드프로세서 상용제품을 선보였다. 한글 워드프로세서는 조합형 문자코드 사용으로 한글을 포함한 모든 경우의 수 글자 표현이 가능했다. 개별 PC에서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한글문서 작성에 최적화 기능을 선보였다. 한글 워드프로세서는 국내 시장 점유율 20%로 고가 외산 제품을 대체함으로써 기업 운영비 부담을 덜었다.
삼성전자는 1988년 서울 올림픽 개막에 맞춰서 최초의 국산 아날로그 휴대폰(모델명 SH-100)을 개발, 그 이듬해 5월 출시했다. 모토로라 등 휴대폰 글로벌 제조사가 독점한 시장에 도전장을 던질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1990년대…ICT 강국으로 도약
1980년대 말 산·학·연 합동 연구 아래 선진국과의 경쟁에서 간발의 차이로 4M DRAM 개발에 성공했다. 1991년에는 16M DRAM 개발에 성공, 반도체 선진국 대열에 진입했다. 1992년 세계 최초로 64M DRAM을 개발, 선진국을 추월한 뒤 세계 메모리 반도체 시장 점유율 1위 자리를 고수하고 있다.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은 DRAM 분야 매출 세계 최상위 수준이다. 1992년 이후 지금까지 독보적 위상을 지키고 있다.
1992년 6월엔 우리별 1호가 발사됐다. 우리나라 최초 위성이자 운용 성공사례다. 이후 꾸준한 연구가 이어지면서 1999년 5월 우리별 3호가 독자개발로 탄생했다. 소형위성 개발 전 과정 설계기술 확보, 선진국대비 기술수준 90%대로 향상시키는 극적인 전환을 이루는 계기로 평가받는다. 우리별 위성 독자기술은 1999년 국내 민간기업 위성사업 진출의 기반이 됐다. 또 위성상용화 및 위성영상 사업화 바탕이 됐다. 1990년대 총 4기의 위성을 해외에 수출, 위성 부문에서만 약 8800만달러(약 950억원) 매출을 달성했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이 1994년부터 다목적위성 개발에 착수한 이래 광학·레이더 탑재체, 적외선 채널 등을 탑재한 5기의 아리랑위성을 순차적으로 개발해 안보 등 국내 공공수요 독자충족과 동시에 세계 최고수준의 저궤도관측위성 개발능력을 확보하고 세계 시장 진출 기반을 다졌다.
한국통신이 개발한 무궁화위성 1호와 2호는 국내 최초 통신·방송위성으로 서로 편파(Polarization)를 달리해 같은 위치에 있어도 간섭을 주지 않도록 설계됐다. 이를 통해 우리나라는 독자 위성에 의한 본격적인 국내 위성 통신·방송 서비스를 제공해 21세기 통신 선진국 진입 발판을 마련했다. TV 난시청 지역 해소와 방송 품질 향상에 기여했다.
아리랑위성 개발로 한국의 저궤도 지구관측위성 개발 기술 수준은 선진국 기준에 도달했다. 위성활용서비스 이용이 확장되고 있는 추세에 따라 위성의 시스템설계, 구조계, 열제어계, 추진계, 전력계, 원격측정명령계, 통신계, 탑재체개발, 조립·시험, 제품보증 기술을 산업체에 이전, 위성개발기술의 국내 산업화기반을 구축했다. 무궁화위성 또한 ITU로부터 위성을 조기에 확보해 국제 경쟁력을 배양하고 21세기 우주 개발 경쟁에 참여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했다.
1994년엔 포항방사광가속기가 완공됐다. 포스코, 포스텍, 정부가 공동으로 참여한 대형 프로젝트다. 포항가속기연구소는 3세대 방사광가속기를 세계 5번째로 건설한 데 이어 2011년 세계 최신 3세대 방사광가속기로 업그레이드에 성공했다. 2015년 준공한 4세대 방사광가속기는 선진국을 좇아가는 추격형에서 탈피해 선진국형 선도 장치를 성공적으로 구축한 사례다.
미국, 일본에 이어 세계 3번째 성과다. 방사광가속기 구축·운영 과정에서 확보한 기술은 핵융합 시설, 극지탐험선 아라온호, 우주발사체 나로호 등 설계·제작 기초가 됐다. 3세대 방사광 가속기의 경제적 파급효과는 연간 3조432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1995년엔 코드분할다중접속방식(CDMA) 기술이 개발됐다. CDMA 디지털 이동통신 시스템은 이동통신 수요 폭증에 대응해 통화용량을 아날로그 방식보다 수십배 증가시킬 수 있는 획기적 기술이다.
우리나라는 CDMA 개발로 이동통신 단말기 및 시스템 등 장비전량 수입국가에서 수출국가로 탈바꿈했다. 26만명 고용 창출효과와 13조1000억원 경제적 파급 효과를 유발했다. 국내 시스템, 단말 제조사에 기술이전을 해 기술의 산업화, 장비의 국산화 및 수출과 고급 일자리 창출에 기여했다. 동시에 3G, LTE, LTE-A 등 이동통신 기술개발을 선도하는 계기가 됐다.
◇2000년대…격차를 벌리다
2006년 언제 어디서나 인터넷이 가능한 휴대형 인터넷 기술, 와이브로(WiBro)가 선보였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과 삼성전자가 개발한 이 기술은 최대 다운로드 속도 10Mbps, 최대 전송거리는 1km, 시속 120km로 이동하면서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이다. 와이브로 기술이 개발됨으로써 요금과 전송속도로 무선인터넷을 자유롭게 쓸 수 없었던 시기에 끊김 현상 없이 휴대인터넷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됐다. 개발 기술은 국제표준화(IEEE 802.16e)돼 해외수출로 이어졌다.
한국전력공사는 765kV급 변압기 및 차단기 등 변전설비, 송전 기자재 및 송전선로 설계기술을 개발, 2000년 당진-안성, 태백-가평간을 연결하는 격상 사업에 성공적으로 적용했다. 고품질 국가 전략망을 실현했다.
2006년 한국항공우주산업은 T-50 고등훈련기 개발에 성공했다. 고등훈련기는 동시공학이 완벽하게 적용된 세계 최초 군용기로, 컴퓨터 설계 프로그램인 CATIA와 COMOK을 100% 활용해 개발기간과 비용을 절감했다. 훈련기로는 세계 최초로 디지털 비행제어기술(Fly by Wire)을 장착하는 등 첨단 디지털 항공전자 시스템을 장착했다. 총 개발비는 2조817억원이 투입됐다. T-50 고등훈련기의 국내 연구개발로 생산물량 증대는 물론 부가가치 창출, 산업기반 조성에 기여했다. 군 무기체계 조달 시 수입대체 및 훈련비용 절감 등 국방예산 절감에도 도움을 줬다.
한국철도기술연구원은 해외에서 도입한 고속철도 기술을 국내에서 소화·흡수하고 이를 기반으로 고속철도시스템을 독자 개발할 수 있는 원천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한국형 고속열차 개발에 뛰어들었다. 그 결과 차량 디자인에서부터 핵심장치까지 순수 국내기술로 우리 고유의 동력집중식 고속열차인 '한국형 고속열차'를 개발했다. 최고속도 352.4km/h 기록 및 20만km 이상 운행으로 안전성과 신뢰성을 확보해 KTX-산천으로 상용화에 성공했다. 한국형 고속열차 기술개발을 통해 우리나라는 프랑스에서 도입한 기술보다 향상된 설계·제작·시험 등 고속열차 전주기에 대한 핵심 원천기술을 확보했다. 일본,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에 이어 세계 5번째 고속철도 원천기술 보유국가가 됐다.
◇2010년대…미래 성장동력을 발굴하다
한국원자력연구원은 2012년 스마트원자로(SMART) 표준설계인가를 획득했다. 이 원자로는 열출력 330MWt, 전기출력 100MWe의 소형 일체형 원자로로 인구 10만 소외 지역이나 벽지 등에 전력과 물을 공급할 수 있도록 설계된 다목적 원자로다. 전력생산, 해수담수, 지역난방 공급 등이 가능하다. 대형원전 출력의 1/10(100MWe) 규모로 주요 기기를 원자로 용기 안에 배치해 기존 원전대비 안전성을 10배 이상 증진시켰다.
스마트원자로는 우리 기술을 통해 안전성, 경제성, 시장성 등을 갖췄다. 2012년 세계 최초로 표준설계 인가를 획득하고 2015년 사우디아라비아 수출에 성공했다. SMART 개발에 3447억원과 연인원 1700명이 투입됐다. 상용화로 기대되는 수출효과는 국내 생산 파급효과 1조1395억원, 고용유발 효과 4339명으로 추산된다. 2050년까지 중소형 원전 500~1000기 이상 건설을 통해 발생하는 시장은 350조로 예측된다.
2012년 박남규 성균관대 교수팀은 최초로 안정성을 확보한 고체형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를 보고해 관련 연구붐을 불러일으켰다. 이후 3년 만인 2015년까지 1300여편의 관련 연구논문이 발표됐다.
클래리베이트 애널리틱스는 지난해 22명의 노벨상 후보를 발표하면서 박남규 성균관대 화학공학과 교수를 포함시켰다. 클래리베이트 애널리틱스는 과학연구 정보 데이터베이스인 '웹 오브 사이언스' 논문 인용 데이터를 분석해 해마다 노벨상 후보 명단을 발표한다. 한국 과학자가 클래리베이트 노벨상 수상 후보에 선정된 건 유룡 카이스트 교수(기초과학연구원 단장)에 이어 두 번째다.
박 교수가 후보에 오른 것은 '고효율 에너지 전환이 가능한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를 개발·응용한 연구로 관련 분야에서 높은 피인용지수를 얻었기 때문'이다. 박 교수가 2012년 세계 최초로 고체형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를 개발해 '사이언티픽 리포트'에 게재한 논문은 현재까지 4200회 이상 인용됐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은 2013년 1월 30일 세 번째 시도 만에 고흥군 나로우주센터에서 나로과학위성(STSAT-2C)을 나로호(KSLV-I)에 실어 지구 저궤도(근지점 고도300km, 원지점 고도 1500 km)에 쏘아올리는 데 성공했다. 대한민국은 세계 11번째로 자국 기술로 우주발사체를 발사한 국가가 됐다.
나로과학위성은 1년간 우주공간에서 지구 타원궤도(300×1500km)를 하루 14바퀴씩 우주방사선량과 이온층 등 우주환경 관측 임무를 수행한다. 관측 데이터는 태양활동 극대기에 맞춰 우주방사선량 모델링, 우주방사선이 우주부품에 미치는 영향, 이온층이 통신시스템에 미치는 영향 등을 연구하는 데 이용한다. 나로호 개발에 따른 생산유발효과는 3629억원, 부가가치 유발효과는 2365억원, 고용창출효과는 4647명으로 추정된다. 또 나로호를 통해 확보한 기술과 경험은 국가 우주개발진흥기본계획에 의거해 발사체 독자개발을 통한 기술자립이라는 기술적 연장선상에서 후속 추진중인 한국형 발사체(KSLV-II) 개발에 직접적으로 연계돼 활용됐다.
2013년, 삼성전자는 기존 평면구조 낸드플래시가 직면한 집적도와 고속화 기술 한계를 극복한 24단 3차원 V낸드플래시를 세계 최초로 양산했다. 한국 반도체 산업이 3차원 메모리시대를 여는 순간이다. 3차원 V낸드는 '초고속, 초고용량, 초절전, 고품질'의 스토리지 제품과 솔루션을 제공해 글로벌 메모리 시장이 지속 성장할 수 있는 새로운 원동력으로 평가받는다.
앞서 삼성전자는 2015년 세계 최초로 48단, 256기가비트(Gb) 3D 낸드플래시 양산에 성공했다. 이후 서버, PC, 모바일용 등 낸드 제품 전체로 '4세대(64단) 256기가비트(Gb) 3비트 V낸드플래시' 라인업을 확대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7월 업계 최초로 2세대 10나노급(1y) 공정을 적용한 16Gb(기가비트) LPDDR4X(Low Power Double Data Rate 4X) 모바일 D램 양산에 들어갔다. 2017년 11월 업계 유일 2세대 10나노급(1y) '8Gb DDR4 서버 D램'을 양산한 지 8개월 만이다.
2018년엔 누리호 엔진 시험발사체 발사 성공으로 과기계가 흥분했다. 우리기술로 만든 75톤급 엔진 개발과 발사 성공은 국내 우주개발 역사의 중요한 전환점으로 평가된다. 발사체 독자 기술 확보 첫발을 딛었고 국민 관심도 이끌어냈다. 우리나라가 우주발사체용 독자 엔진 보유국 반열에 진입했다는 평가다.
◇총평:허염 실리콘마이터스 대표(한국공학한림원 산업기술성과발굴위원회 위원장)
2010년대 들어서도 우리나라 경제 성장에 기여하는 기술 성과가 꾸준히 나왔다. 반도체, 건설, 소재, 철강 분야에서는 세계 정상 기술 개발이 이뤄지고 있다. 경제 성장으로 이어지는 기술을 보면 창의성이 있고 미래 산업 기반 기술로 활용되는 것이다.
메모리, 디스플레이 분야는 이런 선순환이 지속되고 있다. 현재 세계 선도 기술력을 보유했고 신기술을 개발하면 사실상 세계 최초다. LED, 태양광 분야도 이런 대열에 올랐다.
그러나 안심할 수 없다. 전통산업 분야에 성과가 편중됐다는 지적이 따른다.
인공지능(AI) 등 4차 산업혁명 관련 분야 신산업은 기술 개발, 상용화 실적이 부족하다. 성과는 결국 투자에 달렸다. 어떤 산업도 반도체처럼 초기부터 대규모 투자를 단행할 수 없다. 현재 우리가 보유한 우수 경쟁력을 융합하고 스타트업 단계 아이디어를 사업화할 수 있는 생태계 구축이 필요하다. 이제 과거와 같은 압축 성장은 불가능하다. 과감한 규제 개혁과 투자만이 새로운 성장동력을 키우는 길이다. 초기 주도권을 잡은 수소차 분야 등은 기술개발과 함께 관련 인프라 투자를 병행해야 한다. 이를 통해 신산업은 물론 조선, 철강 등 기존 산업도 융합 기술을 활용한 재도약이 가능하다.
최호 산업정책부기자 snoop@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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