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어질 줄 알았던 전기차 배터리 가격이 예상과는 달리 상승하고 있다. 불안정한 원재료 가격 영향에다 전기차 수요가 크게 늘어난 탓이다.
국내외 배터리 업체가 대규모 생산능력을 추가로 늘리기 전까지 향후 2~3년간 가격 상승 기조는 계속될 전망이다. 배터리 가격 상승으로 당분간 완성형 전기차 가격 인하도 기대하기 어렵다는 관측이다.
6일 업계에 따르면 LG화학과 삼성SDI이 최근 배터리셀 공급가격을 인상했다. 현대·기아차 등과 배터리셀 공급 금액을 10% 안팎 인상을 전제로 갱신·신규 계약이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과 LG가 2000년 중후반 전기차 배터리 사업을 시작한 이후 공급가를 올린 건 사실상 처음이다.
LG화학과 삼성SDI의 배터리를 공급받는 완성차 업체는 20여개로 배터리 가격 인상은 이들 수입차 브랜드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국내외 자동차 제조사가 공급받는 배터리셀 가격은 계약 조건과 공급 물량에 따라 다르지만 평균 1㎾h당 100달러 중반에서 200달러 중후반에 거래된다.
그동안 모든 시장조사업체와 관련 업계는 2022년경 셀 기준 ㎾h당 100달러 이하를 목표로 배터리 가격이 꾸준히 하락할 것으로 전망해왔다. 블룸버그 뉴에너지 파이낸스(BNEF)에 따르면 2010년 ㎾h당 1000달러였던 전기차 배터리셀 평균 가격은 지난해 175달러로 하락했다.
GM은 현재 ㎾h당 145달러인 배터리셀 가격을 2021년에는 100달러 이하로 낮추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실 상황은 이와 정반대다. 업계는 최근 배터리 가격 인상이 △원재료 가격 상승 △급격한 수요 증가 △배터리 제조사 수익성 확보 움직임 등이 결합된 결과로 보고 있다.
원재료 가격은 배터리 가격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2016년 초 톤당 2만3500달러였던 코발트 가격은 지난해 3월 최고 9만5000달러까지 올랐다가 현재는 5만4500달러 수준이다.
니켈도 2016년 초 톤당 8500달러에서 지난해 4월 최고 1만5000달러까지 올랐다가 현재는 1만달러대에 거래 중이다. 리튬 가격도 2015년 ㎏당 37위안에서 2017년 말에는 155위안까지 올랐다가 최근 60위안대까지 하락하는 등 등락을 반복하고 있다. 최근 주요 원재료 가격은 비교적 안정화 추세지만 가격 변동에 대한 리스크는 상존한다. 앞으로 수요를 감안할 때 공급부족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원재료 수급 문제는 계속될 전망이다.
최근 자동차 시장에서 전기차 수요가 공급에 비해 크게 늘어난 것도 가격 인상 요인으로 꼽힌다. 세계적으로 전기차 수요가 급증하는 반면 글로벌 수준 품질 경쟁력과 양산능력을 확보한 배터리 업체는 한·중·일 5~6개 업체에 그친다. 이에 따라 전기차 배터리 시장은 전형적인 셀러스마켓(Seller's market:공급자 우위 시장)으로 빠르게 전환되고 있다.
배터리 제조사가 지난해부터 수익성 확보 기조로 돌아선 것도 주 요인이다. 배터리 업계는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수주 경쟁을 벌이면서 원가 수준으로 배터리를 판매했다. 이에 따라 고질적인 저가 수주 논란도 불거졌다. 하지만 최근 국내 배터리 제조사는 수익성 확보를 최대 과제로 꼽고 있다. 전영현 삼성SDI 사장은 이달 2일 시무식에서 “수익성 없는 성장은 사상누각”이라며 수익성 없는 외형 성장을 경계하기도 했다.
업계는 2~3년간 이 같은 현상이 계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각 배터리 제조사가 대규모 증설을 진행하고 있지만 업계 수요를 충족시킬 만큼 충분한 생산능력(CAPA)이 확보되는 시점이 2~3년 이후이기 때문이다. 국내 업체 뿐 아니라 일본 업계도 마찬가지 상황이다.
이에 따라 전기차 가격 인하 요인도 당분간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 전기차를 구성하는 부품 중 배터리를 제외하고는 가격을 떨어뜨릴 요소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국내 배터리 제조사 관계자는 “언제까지 원가 수준에 판매를 계속할 수 없기 때문에 최근 가격 정상화를 하게 됐다”면서 “가격이나 인상폭은 물량과 계약 시점에 따라 다르며 장기 계약이 아닌 단발성 주문에 대해서는 가격을 더 높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박철완 서정대 교수는 “최근 배터리 제조사의 가격 인상 움직임은 경영진이 수익 악화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결정이자, 자신감에서 나온 판단으로 보인다”면서 “자동차 제조사도 가격 주도권을 놓치지 않기 위해 배터리 공급사를 다변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태준 자동차 전문기자 gaius@etnews.com, 정현정 배터리/부품 전문기자 ia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