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재계가 절박하게 요구한 노동 개혁과 눈에 띄는 투자 환경 개선 등 경제 정책 전환에 앞서 고용, 투자, 상생협력을 주문했다. 경영 환경이 악화되는 가운데 기업 부담이 가중됐다. 정부의 연이은 경제 소통 행보에 앞으로 기업이 어떤 '액션'을 취할지 주목된다.

문 대통령은 15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2019년 기업인과의 대화'에서 “고용과 투자는 기업 성장과 미래 동력 확보를 위한 기반이며, 동시에 국가 경제와 민생에 기여하는 길”이라면서 “지금까지 잘해 오셨지만 앞으로도 일자리 문제에 특별한 관심을 두고 고용 창출에 앞장서 달라”고 당부했다.
이날 간담회는 '기업이 커 가는 나라, 함께 잘사는 대한민국' 슬로건 아래 자유롭게 토론하는 '타운홀 미팅' 방식으로 진행됐다. 대기업에서는 삼성·현대차·SK·LG 4대 그룹 총수를 비롯해 대기업 22명, 중견기업 39명, 전국상공회의소 회장단 67명 등 총 128명이 참석했다.
문 대통령은 “좋은 일자리 만들기는 우리 경제의 최대 당면 현안이자 300인 이상 기업은 청년이 가장 선호하는 좋은 일자리”라며 고용 확대를 강조했다.
대기업 설비 투자가 감소세인 점에 대해서는 아쉬움을 드러냈다. 문 대통령은 “주요 기업이 주력 산업 고도화와 신산업을 위해 꾸준히 투자했지만 지난해 2분기부터 전체 설비 투자가 감소세로 전환했다”면서 “여러 기업이 올해 대규모 투자를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정부 내 전담 지원반을 가동해 돕겠다”고 말했다.
중소기업과의 상생 협력 확대도 요구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상생 결제가 최초로 100조원을 돌파한 것은 공정한 성과 배분의 희망적인 사례가 될 것”이라면서도 “시혜 조치가 아니라 기업의 생존과 발전 전략 관점에서 상생 협력을 적극 추진해 달라”고 당부했다.
문 대통령은 올해 처음 20조원 넘는 연구개발(R&D) 예산으로 신기술 개발, 인력 양성, 첨단기술 사업화를 정부가 돕겠다고 약속했다. 신산업 육성을 위한 규제 혁신 의지도 내비쳤다.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 사회로 열린 토론에서는 기업인과 청와대·정부·여당이 현안을 두고 질의·응답을 했다. 현 정부 들어 청와대를 처음 방문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설비와 기술, 투자 등에 노력해 내년 이런 자리에서는 당당하게 성과를 이야기할 수 있도록 하겠다”며 “'일자리 3년간 4만명'은 꼭 지키겠다”고 말했다.
정의선 현대자동차 수석부회장은 “자동차 산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수출로, 무역확장법 232조 등 관세·통상 관련 문제가 잘 해결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며 정부 도움을 요청했다. 전기·수소차에 향후 4년간 5조원을 투자하겠다는 계획도 내놨다. 문 대통령은 “수소 자동차·버스 등은 미세먼지를 정화하는 기능까지 있으니 효과적”이라고 화답했다.
최태원 SK 회장은 사회적기업과 관련된 법안 추진 방향을 문 대통령에게 물었고, 황창규 KT 회장은 개인정보보호 규제와 관련된 애로 사항 등을 건의했다.
이날 현장에서 나온 기업인 질의는 17건이었다. 지난해 정부 출범 직후 대기업 총수와 가진 호프미팅이 경제 정책을 설명하는 수준의 상견례 성격이었다면 이날 행사는 경제 현안에 대한 실질 논의가 이뤄진 자리였다.
토론 직후 문 대통령은 참석자들과 기념촬영을 가진 뒤 박용만 회장을 비롯해 삼성·현대차·SK·LG 등 4대 그룹 총수, 경제단체장과 청와대 경내를 산책했다.
정부가 기업 투자 환경 개선과 기업인 기 살리기에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기업 부담도 커졌다. 정부 노력에 상응하는 '선물'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기업 선물은 곧 현 정부 정책 성과로 반영된다.
지난해 국내 대기업 영업이익 성적은 초라하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업계를 제외하면 국내 기업 전체 영업이익률은 7.6%에서 5.0%로 떨어졌다. 글로벌 보호무역주의 강화와 최저임금 등 대내외 악재까지 겹치면서 신규 투자 계획을 내놓기가 마땅치 않은 상황이다.
대기업 관계자는 “대통령이 기업에 새로운 시장과 산업 개척에 앞장서 달라고 강조했는데 움직여야 하지 않겠냐”면서도 “당장 내놓을 수 있는 카드가 없어 정부 정책에 부응하는 것을 내부에서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성현희 청와대/정책 전문기자 sunghh@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