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지하철4호선이 처음 등장했을 때 모두가 놀랐다. 열차 앞뒤 어느 곳에도 기관사를 찾을 수 없었다. 열차가 스스로 신호를 읽고 판단해 운행하는 국내 최초 무인운전시스템이 들어갔다. 첫 '무인열차' 상용운전이었다. 무인열차 핵심은 소프트웨어(SW)다. 앞뒤 차량과 일정 간격 거리를 두고 운행하는 신호제어시스템 구축이 필수다. 철도신호제어시스템은 실시간으로 신호 체계를 파악·전달해 열차를 제어하는 고난이도 기술이다. 일부 글로벌 기업만 가능한 영역이었다.
이를 한국 실정에 맞게 국산화해 SW를 공급한 기업이 대아티아이다. 대아티아이는 철도신호제어시스템 분야만 20년 이상 연구 개발해온 철도 정보기술(IT) 전문기업이다. 오랜 연구개발(R&D) 끝에 철도신호제어시스템 대부분을 국산화해 세계적 수준의 제품 라인업을 완성했다. 부산지하철 4호선을 비롯해 세계 최초 무인중전철인 신분당선, 인천2호선, 김포경전철 등 무인운전시스템과 경부고속철, 호남고속철 등 국가 대형 철도사업에서 중추 역할을 담당한다.
대아티아이 성공을 이끈 최진우 대표는 1977년 철도고등학교에 입학 후 40여 년간 철도 분야만 매진한 '철도맨'이다. 국내 철도 시장 발전 과정을 지켜봤다. 최 대표를 만나 철도신호제어시스템 분야 최고 기업이 되기까지 과정과 앞으로 목표 등을 들어봤다.
-철도 분야는 어떤 계기로 시작하게 됐는가.
▲철도와 인연은 고등학교 때부터였다. 철도고등학교 전기신호과를 졸업했다. 당시 철도 신호 분야에서 독보적이었던 대기업에 입사해서 근무 내내 철도 관련 사업을 담당했다. 2000년 세계적인 철도회사를 만들겠다는 포부를 가지고 대아티아이를 창업했다. 현재까지 우리나라 철도신호기술 발전에 노력했다.
-철도 분야 흥망성쇠를 다 봐왔다.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면.
▲지금은 다양한 교통수단이 등장하고 발달했다. 그러나 불과 몇십년 전만 하더라도 경부선 철도가 하루만 마비되면 한국 경제가 30일 후퇴한다는 얘기가 나왔다. 철도는 지역 간 화물 운송 주요 수단이라 경제와 직접 연결되는 중요한 분야였다. 지금도 1980년대 만큼은 아니지만 철도는 중요한 교통수단이다. 유라시아 철도길이 연결된다면 대륙을 횡단하는 핵심 수단으로 다시 주목 받을 것이다.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한국철도교통관제센터 사업을 수주했던 때다. 전국 철도 상황을 한 눈에 확인하는 세계적 수준의 통합관제실이다. 2002년 발주 당시 우리나라 철도역사상 가장 큰 단일 신호시스템 사업이었다. 대기업과 경쟁 끝에 대아티아이가 수주했다. 이 사업이 발판이 돼 오늘날 대아티아이가 만들어졌다.
-어떻게 국내 최고 수준 철도 신호시스템 회사로 성장했나.
▲예전의 국내 철도신호시스템 분야는 외산 제품이 대부분이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기술 국산화에 매진했다. 독보적 기술력 확보가 최우선이었다. 20여년 연구개발 끝에 철도신호시스템 거의 전 분야를 국산화했다.
철도교통관제시스템 CTC(Centralized Traffic Control System)를 개발·상용화했다. 전국 모든 철도를 하나의 관제센터에서 효율적으로 일괄 통제해 열차 안전 운행과 정시성을 확보한다. 유럽 국가별로 상이한 열차제어시스템을 표준화한 '차상신호시스템'을 2011년 국산화했다. 경춘선, 전라선 등에 적용해 막대한 수입 대체효과를 가져왔다.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하는 열차 충돌이나 탈선을 방지하는 '전자연동장치' 시스템에 3년간 100억원 이상 연구개발비를 투입해 국산화했다. 그간 철도신호시스템 국산화 성공으로 가져온 수입 대체 효과는 1조5000억원 수준에 달한다고 판단한다. 결과적으로 국산화로 원천기술력을 확보해 국내 철도산업 발전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 기대한다.
-가장 어려웠던 순간은.
▲처음 대표로 사업을 시작했을 때가 마흔 살 때다. 회사가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하다 보니 주변에서 시기와 견제를 많이 받았다. 초반에 사업하기 쉽지 않았다. 기술력에 더 매진한 이유도 기술로 승부를 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기술 투자 전략을 통해 시장에서 기술로 인정받고 성장했다.
-국내를 넘어 해외도 활발히 진출 중이다. 어떤 성과를 올렸나.
▲해외 진출은 글로벌 기업과 기술경쟁으로 대단히 어려운 과업이다. 신호제어 분야 독보적인 기술력을 바탕으로 해외 사업에 꾸준히 도전했다. 인도네시아, 필리핀, 말레이시아, 태국 등 동남아를 중심으로 인지도를 높여 나가고 있다. 누적 수출실적은 지금까지 400억원 수준이다. 말레이시아 '철도차량 개보수' 사업을 진행했고 현재 필리핀 마닐라 지하철사업 신호시스템,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LRT 1사업 신호시스템 사업을 진행 중이다.
동남아시아를 넘어 더 많은 국가로 향하기 위해 품질 확보에 주력한다. 대아티아이는 자체 개발한 많은 신호시스템에 국제안전성평가기관으로부터 최고 안전등급인 'SIL4' 등급을 획득했다. 국제 공신력을 확보, 안전을 최우선으로 평가하는 유럽 등 해외 진출에 좋은 발판을 마련했다.
-남북경협 분위기 속에 남북철도 관심이 뜨겁다. 전문기술을 보유한 대아티아이도 주목받는 기업이다.
▲지난해 남북철도연결 가시화로 많은 주목을 받았다. 현재 한반도는 남과 북으로 나뉘어져 섬이 아닌 섬이 됐다. 오랜 기간 세계로 뻗어가는 철도의 꿈을 잃어 버렸다. 우리의 미래 경제발전을 위해서는 한반도와 동북아 그리고 유라시아를 하나로 잇는 철도연결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남북철도연결이 선제 조건이다.
북한철도가 중국, 러시아와 연결되고 최종적으로 유럽과 연결되기 위해서는 유럽철도표준규격 신호시스템(ERTMS L1)이 필요하다. 대아티아이는 2011년 이 기술 국산화에 성공해 경춘선고속화등 다수 성공적 설치·운영 경험을 보유했다. 남북철도 연결, 실크로드 익스프레스 연결, 유라시아 철도 사업에 충분히 적용 가능하다.
내부적으로 TF팀을 꾸렸다. 대아티아이는 2000년대 초반 경의선, 동해선 남북철도연결사업에 참여했다. 남북철도 연결을 위한 진행사항을 공유하고 진행 가능한 철도사업을 깊이 연구하는 등 체계적으로 대비 중이다. 남북한 철도 통합관제와 신호제어기술 통합 발전으로 철도 기간 운송망이 복원되면 남북경협 진행과 효율이 높아진다. 남북한 경제 발전에도 크게 기여할 것이다.
-지난해 남북경협 외에도 실적 등 많은 면에서 주목받았다.
▲남북철도연결 가시화로 관심을 받으며 증권시장에서도 잠재력을 인정받은 한 해였다. 지난해 5·6월에는 코스닥시장에서 거래대금 1위를 기록했다. 신뢰받는 성실한 IR 활동으로 코스닥150지수와 KRX300 지수, 모건스탠리캐피탈 지수(MSCI)에 편입됐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즈 선정 아시아태평양지역 고성장기업 1000에 선정되는 등 좋은 성과를 기록했다.
내부적으로는 창사 이래 처음으로 지난해 수주액이 2000억원을 넘었다. 크게 성장했다. 모든 임직원이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는 신념과 열정으로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는 경영이념을 바탕으로 끊임없는 기술개발로 독보적인 기술경쟁력을 확보해 나가면서 각자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 시너지를 발휘한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2017년 소프트웨어(SW)공제조합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2년간 중점 활동한 부분과 SW산업 발전을 위한 제언을 한다면.
▲공제조합은 조합원 이익이 최우선이다. 조합원이 재정 문제나 도움이 필요할 때 먼저 찾고 맞춤형 지원을 해야 하는 곳이다. 취임하자마자 제2판교 옛 도로공사 부지에 SW창조타운 조성을 추진했다. 외부 회계법인에 타당성 조사를 의뢰했다. 경제성이 있다는 의견서를 확보했다. 최근 설계부터 시공까지 총괄 관리 감독하는 사업을 발주했다. 이 역시 설계단계부터 조합원 의견을 적극 수렴했다. 영세 SW기업이 확보하기 어려운 연구개발 환경을 공동으로 구축한다는 부분에 주안점을 뒀다.
국내 SW업계 발전을 위해서 제대로 된 가격을 받는 것이 중요하다. 철도분야도 마찬가지였다. 과거 고가의 외산 제품들의 독주 속에서 국내SW가 제대로 가격을 받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국산화 성공 후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다. 외산 못지않게 국산도 기술력을 인정받는다. 국내 기업이 실력을 확보한 만큼 그에 합당한 SW가격을 책정하고 막대한 개발비에 대한 가치를 인정해주는 노력도 동반돼야 한다.
최진우 대표는
최진우 대표는 1979년 철도고등학교 전기신호과를 졸업하고 1985년 중앙대 전기공학과를 졸업했다. 한국철도신호기술협회와 한국전력기술인협회에서 부여하는 시공, 감리 분야 특급 자격증을 보유했다. 1990년 당시 철도신호분야를 대표하는 대기업에 근무 후 대아티아이를 창업해 2000년부터 20년간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대아티아이는 2017년 연결기준 매출액 857억원, 당기순이익 66억원을 기록했고 2018년에는 설립 후 처음으로 연간수주 2000억원을 돌파했다. 한국철도학회 부회장을 비롯해 한국철도신호기술협회 이사, 한국건설교통기술평가원 평가위원으로 활동하는 등 국내 철도시스템 분야 최고전문가이다. 2017년 소프트웨어공제조합 이사장으로 취임 후 2000여개 조합사를 대표해 활동한다.
대담=김인순 SW융합산업부장
정리=김지선 SW전문기자 river@etnews.com
사진=박지호기자 jihopress@etnews.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