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는 단군 이래 가장 잘 살고 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최빈국에서 세계가 부러워 할 정도로 성장한 나라는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모두 과학기술 덕분이다. 지금의 한국 산업경제 발전이 있기까지 과학기술인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다. 과학기술인은 국가의 명운이 과학기술에 달렸다는 소명감에 늦은 밤까지 연구소의 불이 꺼지지 않을 정도로 연구 열정을 불태웠다. 성과는 산업계 곳곳에 적용돼 경제 성장의 밑거름이 됐다.
국립대전현충원 국가유공자묘역에서 이들을 볼 수 있다. 고 최형섭 박사, 고 최순달 박사, 고 한필순 박사 세 분의 선배과학자가 안장돼 있다.
최형섭 박사는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 설립에 산파역을 맡았으며 초대 과학기술처 장관으로 한국 과학기술개발 토대를 다졌다. 또 대덕연구단지 조성에 기여한 일등공신이다.
체신부 장관을 역임한 최순달 박사는 한국과학기술원(KAIST) 인공위성연구센터를 설립해 우리나라 첫 인공위성인 우리별 위성 발사에 성공하고 통신산업 발전을 이끌었다.
한필순 박사는 한국원자력연구소장을 역임하고 한국 원자력기술 자립을 이룬 원자력계의 대부로, 중·경수로의 핵연료 국산화를 이끌었고 한국 표준형 원자로와 연구용 원자로인 하나로 개발사업도 성공시켰다.
정부도 늦게나마 국민이 존경할 만한 우수한 업적이 있는 과학기술인을 '과학기술유공자'로 지정해 명예와 긍지를 높이고 존중하는 사회문화를 만들고 있다. 2017년 고인 22명을 포함해 32명을 유공자로 지정했고, 지난해에는 16명(고인 11명 포함)을 지정해 예우하고 있다.
그러나 필자는 과학기술인을 기억하고, 정신을 계승하려는 노력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묻고 싶다.
일부 과학기술인은 시대적인 소명을 가지고 현장에서 묵묵히 노력하고 있지만, 일부는 그렇지 않은 것도 현실인 것 같다. 지금처럼 과학자가 하고 싶은 연구를 마음껏 하고 대접받는 시대가 있었던가? 연구비가 없어 연구를 못하는 경우는 거의 없을 정도로 과학기술 연구개발비가 충분하다. 오히려 연구비가 많아서 긴장감도 적고 안주하지는 않는지 묻고 싶다. 우리나라의 과학자에 대한 대우도 과학강국 일본, 중국보다 나쁘지 않다고 생각된다. 그런데 연구현장에서 피부로 느끼기에는 긴장감도 절실함도 부족한것 같다. 연구도 전쟁이다. 내가 생각하는 아이디어는 세상 누군가도 생각할 수 있으며 먼저 결과를 내고 특허출원하고 논문을 쓰면 2등은 무용지물이 되기 쉽다.
최형섭 박사 묘비에 적혀있는 '연구자의 덕목' 5가지를 상기하고 계승할 필요가 있다. 연구자는 정직해야 한다. 부귀영화에 연연해서는 안 된다. 시간에 초연한 생활연구인이 돼야 한다. 직위에 연연하지 말고 직책에 충실해야 한다. 아는 것을 자랑하지 말고 모르는 것을 반성해야 한다. 참으로 지금도 되새겨야 할 귀중한 가르침이다.
필자는 올해 소망이 있다. 국립중앙과학관 일원과 같은 대덕연구단지 내 적절한 자리에 '최형섭 박사 기념공원과 기념동상' 건립을 위해 시민과 과학기술인이 십시일반으로 기금을 조성하는데 노력하고자 한다. 이미 몇몇 과학기술 단체에서 흔쾌히 취지에 동의했다.
현재 우리가 처해진 국내외 여건은 참으로 어렵고 위험하다. 무엇이 문제인지를 정확히 진단하고 이를 해결하는 과학기술인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이다. 시대정신을 고취하고 연구자로서 자긍심을 갖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선배 과학기술인의 철학을 계승, 발전하고자 초심을 상기시키기 위해서라도 귀감이 되는 선배과학자가 '과학영웅'으로 환생하도록 하는 노력이 절실하다.
곽상수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책임연구원(UST 교수) sskwak@kribb.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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