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 오염과 기후변화로 식량 수급이 큰 문제로 비화될 수 있습니다. 인류 존속을 위해서는 안정된 식량 공급을 이룰 수 있는 작물 연구가 꼭 필요합니다.”
곽상수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책임연구원(UST 교수)은 지난 25년 동안 '고구마' 연구에 매진한 연구자다. 별명이 '고구마 박사'다. 인류를 위협하는 식량난을 해소하려면 고구마 연구가 필수라는 믿음으로 한 우물만 팠다.
처음부터 학자가 꿈인 것은 아니었다. 영농 지도자가 되겠다는 마음으로 농학과에 진학했는데, 학업에 빠져들다 보니 어느새 연구자의 길을 걷게 됐다. 이후 모든 농민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고, 나아가 인류 전체의 식량난을 걱정하게 됐다.
그때 떠올린 것이 고구마였다. 고구마는 오랜 옛날부터 지력이 고갈된 땅에 재배하던 식물이다. 척박한 땅에서 특히 잘 자란다. 단위면적당 탄수화물 생산량도 다른 작물에 비해 월등하게 많다. 660㎡ 면적에 옥수수를 재배할 경우 한 해에 1명을 먹일 수 있는 반면에 고구마로는 3.9명을 먹일 수 있다. 전분 작물 가운데 가장 적은 물로도 기를 수 있고, 환경 오염을 일으키는 농약이나 비료도 거의 필요 없다.
곽 책임은 “처음부터 고구마 연구를 생각한 것은 아니었는데, 연구를 거듭할수록 미래 식량난의 해법은 고구마일 수밖에 없다는 확신을 가지게 됐다”며 “이후 정신없이 연구에 몰입해 20년 넘는 시간을 보냈다”고 말했다.
물론 처음부터 인정을 받은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를 이해하지 못하는 시선이 주를 이뤘다. 그러나 오랜 기간 공을 들인 연구가 성과를 내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2012년부터는 한국과학기술한림원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고, 2017년 과학기술 혁신장을 수상했다. 해외에서도 명성이 높아 중국과학원을 비롯한 중국 현지 네 개 대학 초빙교수를 지내고 있다.
그는 고구마가 극한 환경에 강한 원천인 '항산화' 기능을 연구, 황산화 효소 유전자 분리에 성공했다. 기업 기술 이전에 항산화 물질 생산까지 이뤘다. 황산화 기능을 하는 '카로테노이드'를 더 많이 생성하게 해 고구마를 기후변화나 재해에 더욱 강하게 하는 연구도 많은 진척을 보였다.
지금은 중국 사막화 지역이나 내몽골 자치구, 카자흐스탄 남부 지방과 같은 험지에서 고구마를 재배하는 연구에 힘쓰고 있다. 실제 재배가 가능하다는 것도 확인했다.
곽 책임은 “앞으로는 훨씬 더 척박하고 적합하지 않은 기후에서 고구마가 자랄 수 있도록 개량하는 연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곽 책임은 후배 과학자가 그동안 자신이 걸어온 길을 통해 용기를 얻기 바랐다. 꼭 필요한 연구라면 당장은 어렵고 공감을 얻지 못하더라도 언젠가 찬사를 받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연구에서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닌 방향이고, 남이 아닌 먼 앞을 바라봐야 한다”며 “후배 연구자가 미래지행적인 일에 과감하게 뛰어들어 끝장 보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대전=김영준기자 kyj85@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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