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 100년, 우리 위성으로 바라 본 독립 운동 유적지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27일 3·1운동,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우리 민족의 독립 정신이 깃든 만세 운동 유적지 등을 촬영한 위성영상 8점을 공개했다.

공개 영상에는 선조들이 독립을 위해 헌신했던 발자취를 기억하기 위해 독립만세 운동의 함성이 울려 퍼졌던 곳과 독립투사의 숭고한 희생이 있었던 장소, 일제 강점기 아픔의 현장이 두루 담겼다. 영상은 국내 다목적실용위성 3호, 3A호가 촬영했다. 3A호는 세계적 수준의 고해상도(0.55m) 광학영상을 촬영할 수 있다.

▲ 3.1 독립만세운동의 함성이 울려 퍼졌던 장소

<태화관 터(좌)와 탑골공원(우)(3·1운동)>

○ 태화관 터 1919년 3월 1일,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29인이 모여 3.1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곳이다. 만해 한용운의 선창으로 “대한독립만세”를 외친 민족대표들은 일본 경찰에 의해 체포되었다. 현재 태화관 터에 삼일독립선언유적지 비석만 남아있다. ○ 탑골공원 1919년 3월 1일, 탑골공원에서 정재용이 독립선언서을
○ 태화관 터 1919년 3월 1일,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29인이 모여 3.1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곳이다. 만해 한용운의 선창으로 “대한독립만세”를 외친 민족대표들은 일본 경찰에 의해 체포되었다. 현재 태화관 터에 삼일독립선언유적지 비석만 남아있다. ○ 탑골공원 1919년 3월 1일, 탑골공원에서 정재용이 독립선언서을

<아우내시장(병천시장)>

1919년 4월 1일, 서울에서 3월 5일 남대문 독립만세운동을 참여한 이화학당 여학생 유관순 열사를 포함하여 3천여명 군중이 아우내 장터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대한독립만세를 부른 뒤 시위 행진을 했다. 다목적실용위성3A호, 2019.1.20.
1919년 4월 1일, 서울에서 3월 5일 남대문 독립만세운동을 참여한 이화학당 여학생 유관순 열사를 포함하여 3천여명 군중이 아우내 장터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대한독립만세를 부른 뒤 시위 행진을 했다. 다목적실용위성3A호, 2019.1.20.

<독립기념관>

1987년 국민 모금운동으로 건립된 독립기념관은 우리 민족의 국난 극복사와 발전사 자료를 모아 보존, 관리, 전시하고 있다. 3.1운동 당시의 감동과 선조들의 열망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다. 다목적실용위성3A호, 2019.1.20.
1987년 국민 모금운동으로 건립된 독립기념관은 우리 민족의 국난 극복사와 발전사 자료를 모아 보존, 관리, 전시하고 있다. 3.1운동 당시의 감동과 선조들의 열망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다. 다목적실용위성3A호, 2019.1.20.

▲독립투사가 숭고한 희생으로 옥고를 치른 장소

<서대문독립공원(서대문형무소)>

1908년 문을 연후 조국 독립을 위해 항거한 수많은 애국지사들이 옥고를 치렀던 곳이다. 3.1운동 때 유관순 열사가 갇혔던 지하 여자감옥, 윤봉길 의사가 복역 중 만들었다는 붉은 벽돌, 강우규 의사가 처형당한 사형장 등이 남아 있다. 1992년 8월 15일, 광복 47주년을 맞이해 서대문 독립공원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다목
1908년 문을 연후 조국 독립을 위해 항거한 수많은 애국지사들이 옥고를 치렀던 곳이다. 3.1운동 때 유관순 열사가 갇혔던 지하 여자감옥, 윤봉길 의사가 복역 중 만들었다는 붉은 벽돌, 강우규 의사가 처형당한 사형장 등이 남아 있다. 1992년 8월 15일, 광복 47주년을 맞이해 서대문 독립공원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다목

<뤼순 형무소>

1902년 건축되어 일본이 뤼순을 점령한 후 1907년 확장되었다. 1909년 만주의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독립운동가 안중근과 역사학자이자 독립운동가인 신채호가 순국한 곳으로 독립 운동가의 숭고한 희생과 고결한 뜻이 머문 장소다. 다목적실용위성3A호, 2018.4.15.
1902년 건축되어 일본이 뤼순을 점령한 후 1907년 확장되었다. 1909년 만주의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독립운동가 안중근과 역사학자이자 독립운동가인 신채호가 순국한 곳으로 독립 운동가의 숭고한 희생과 고결한 뜻이 머문 장소다. 다목적실용위성3A호, 2018.4.15.

▲일제 강점기 아픔의 현장

<일본 군함도>

1940년대 수많은 조선인들이 강제 징용 당한 곳이다. 섬의 모양이 일본 해상군함 도사를 닮아 군함도라 불린다. 다목적실용위성3호, 2019.2.13.
1940년대 수많은 조선인들이 강제 징용 당한 곳이다. 섬의 모양이 일본 해상군함 도사를 닮아 군함도라 불린다. 다목적실용위성3호, 2019.2.13.

<러시아 사할린섬>

사할린에 거주하는 한인들은 대부분 일제 말기에 징용노동자로 강제 연행되었으며, 제2차 세계대전이 종전된 당시 약 43,000명의 한인이 사할린에 거주하고 있었다. 강제징용 희생자들이 잠들어 있는 묘역에는 합동추모비가, 8.15 해방 뒤 고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귀국선을 기다렸던 코르사코프 항구에는 망향탑이 세워져
사할린에 거주하는 한인들은 대부분 일제 말기에 징용노동자로 강제 연행되었으며, 제2차 세계대전이 종전된 당시 약 43,000명의 한인이 사할린에 거주하고 있었다. 강제징용 희생자들이 잠들어 있는 묘역에는 합동추모비가, 8.15 해방 뒤 고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귀국선을 기다렸던 코르사코프 항구에는 망향탑이 세워져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신한촌>

새로운 한인촌이라는 뜻을 가진 신한촌은 블라디보스토크 외곽 산기슭에 있던 한인 집성촌이 북쪽으로 강제 이주되어 새로 터를 잡은 곳이다. 독립운동가 최채형, 이상설 등이 참여한 권업회, 한민학교 등 민족단체들이 모여 있던 곳이다. 1920년 4월 일본군에 의해 잔인한 학살이 있던 슬픈 역사도 있으며, 1999년 8월 3.1
새로운 한인촌이라는 뜻을 가진 신한촌은 블라디보스토크 외곽 산기슭에 있던 한인 집성촌이 북쪽으로 강제 이주되어 새로 터를 잡은 곳이다. 독립운동가 최채형, 이상설 등이 참여한 권업회, 한민학교 등 민족단체들이 모여 있던 곳이다. 1920년 4월 일본군에 의해 잔인한 학살이 있던 슬픈 역사도 있으며, 1999년 8월 3.1

최호 산업정책부기자 snoop@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