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중반. 세계대전을 끝내고 평화를 되찾은 인류는 타임캡슐을 만들어 지혜를 후대에 전달하기로 한다.
UN은 '살아있는 인간'이야말로 최고의 타임캡슐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한 사람을 극저온 상태로 보존해 미래에 보내기로 한다.
과학자들은 극저온 상태에서 오랫동안 잠을 자면서 육체 노화를 막는 기계를 개발하고, 이 기계를 견딜 수 있도록 최적화된 인간을 찾기 위해 세계를 뒤진다.
여기까지만 보면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이야기라는 느낌이다. 할리우드 영화의 흔한 줄거리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이야기를 지은 사람이 한국인이고, 더군다나 1965년에 쓴 작품이라는 사실을 알면 놀라움을 감추기 어려워진다. 변변찮은 과학기술 하나 찾기 힘들던 시절에 쓰인 이 작품은 한국 최초의 장편 SF소설 '완전사회'다.
완전사회를 쓴 고 문윤성 작가는 1916년 강원도 철원에서 태어나 고등학교 재학시절 일본인 교사에 반항하다 퇴학을 당해 공사판을 전전하며 소설과 시를 독학으로 배웠다.
이 작품은 51세가 되던 1965년 주간한국 제1회 추리소설 공모전에 출품해 당선된 것으로, 당시 한국 상황을 고려하면 믿기 힘들 정도의 탄탄한 과학적 설계와 상상력이 인상적이다.
완전사회의 줄거리는 UN 특별 테스트에 한국인이 합격하고, 그는 인류 대표로 긴 잠에 빠져 22세기 미래에 깨어난다는 내용으로 이어진다.
그런데 그가 깨어난 미래는 여자들만 살아가는 여인천하다. 161년이나 시간이 지난 데다 남자인 주인공이 여자들만 있는 세계에 적응하기가 무척 힘겹다.
시대를 앞서 간 이 작품에 등장하는 '냉동인간'은 우리에게 익숙한 할리우드 영화의 단골 소재다. 데몰리션 맨과 인터스텔라, 배트맨과 로빈 등에 냉동인간이 등장한다. 먼 우주 공간을 날아가거나 불치병을 치유하기 위해 인간을 얼리는 것은 냉동인간이 등장하는 이야기의 단골 설정이다.
결국 시간의 흐름을 거스르지 못하는 인간의 한계를 냉동이라는 기술로 극복해보려는 시도인 것이다. 냉동인간을 현실에서 구현하려는 시도는 꾸준히 계속됐다.
러시아의 '크리오러스'라는 회사가 인체냉동보존을 시도했고, 미국에서는 '알코르 생명연장재단'이 비슷한 도전에 나섰다.
하지만 많은 과학자들은 냉동인간 성공 가능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현재 기술로 냉동인간을 만들 수는 있지만 깨어나게 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비관적 관측이 많다.
가장 큰 문제는 우리 몸에 있는 수십억개의 세포를 무사히 깨우는 게 매우 어렵다는 점이다. 얼리고 녹이는 과정에서 수분이 팽창해 세포막이 손상되는데, 우리 몸은 미세한 세포 손상에도 기능이 크게 손상될 수 있다.
이 때문에 과학자들은 뇌와 신경 세포의 비밀을 인간이 모두 풀기 전에는 냉동인간을 실제로 구현하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예상한다.
김용주 통신방송 전문기자 kyj@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