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보다 더 정확히 질병을 진단해 내는 인공지능(AI)이 등장했다는 소식이 하루가 멀다 하고 뉴스를 장식해 식상함을 느낄 지경에 이르렀다. '계산기가 사람보다 빠르게 계산하는 것이 뭐가 그리 신기한 거라고?'라고 생각하던 사람들이 앞으로는 'AI가 사람보다 병을 더 잘 찾아내는 것이 뭐가 신기한 거라고?'라고 생각하는 시대가 점차 도래하는 것이다.
최근 AI는 충분한 양의 데이터만 있으면 스스로 학습해, 새로운 문제도 풀어내는 경지에 이르렀다. 환자 데이터를 충분히 확보할 수만 있다면 AI 의사 등장도 꿈이 아닌 것이다.
이미 영상분석 분야에서는 상당수 질환에서 인간 의사보다 AI 프로그램이 더 뛰어난 실력을 보이고 있다. 일반적인 진료 환경에서도 의사결정을 돕거나, 혹은 병원에 가기 전에 상담을 할 수 있는 챗봇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특히 챗봇 서비스 중 하나인 '바빌론헬스'의 경우 삼성에서 후속 스마트폰에 기본 애플리케이션(앱)으로 탑재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으며, 중국 최대 메신저 서비스인 위챗 서비스에도 진출하는 등 빠른 성장을 보이고 있다.
이런 챗봇형 AI는 상담-검사-치료가 모두 한곳에서 이뤄지는 고전적인 올인원 병원 모델에서 '1차 상담' 기능이 분리되는 것을 의미한다.
병원에 가기 전에 AI 의사와 1차 상담을 통해 '현재 가장 의심되는 질환은 무엇인지' '어떤 병원에 가야할지' '어떤 검사를 받아야 하는지' 등을 미리 알 수 있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AI 추천에 따라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게 되고, AI가 검사결과를 분석해 어떤 진단을 받을지 또한 짐작이 가능하다.
물론 이것이 전부는 아닐 것이고, 반드시 이렇게 될 것이라고 확신하는 것도 섣부른 예측일 것이다. 그러나 이런 전문성을 갖춘 의료인급 개인 비서의 등장은 현존하는 의료계 '독점적 권위'의 해체와 더불어 의료 시스템 또한 더욱 가속화된 '무한 경쟁 시장'으로 변해갈 것을 짐작하게 한다.
이제 의료는 의사의 손을 점점 떠나고, 헬스케어와 의료의 경계는 점점 더 모호해질 것이다. 의료산업이 갖는 고부가가치적 속성으로 인해 경쟁은 더욱더 치열해질 것이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도 결코 잊지 않아야 할 점은 이 모든 것이 '고품질의 데이터가 생산되는 환경'에서만 실현될 수 있는 생태계 속성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한의학연구원은 향후 6년간 한의학의 의료 데이터 생태계 구축을 위한 AI 한의사 연구에 연간 25억원을 투입할 예정이다. 이는 마중물에 불과하며 실제 한국의 우수한 의료 인프라, 특히 한·양방 협진이라는 한국 최고의 의료상품을 위한 빅데이터를 구축하려면 범국가적인 지원과 대승적인 협력이 필요할 것이다.
2030년 세계적인 통합의료 AI 시스템이 개발돼 한국의 미래 핵심 산업이 되어 있기를 기대해본다.
이상훈 한국한의학연구원 미래의학부 책임연구원 ezhani@kiom.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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