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규제의 필요성을 입증해야 하는 '규제 정부 입증책임제'를 전 부처로 확산한다. 정부는 1만6000여개 행정규칙 가운데 규제 개선 민원이 많거나 시대에 뒤떨어진 낡은 규제 등 480개 행정규칙을 오는 5월까지 우선 정비한다.
국무조정실은 모든 부처에 '규제입증위원회'(가칭)를 설치하는 등 규제 정부 입증책임제 추진 체계를 구축했다고 27일 밝혔다.
그동안 민간이 규제 폐지의 필요성을 입증해야 했지만 앞으로는 정부가 규제 존치 이유를 입증하는 식으로 패러다임이 바뀐다. 정부가 입증하지 못하면 해당 규제를 폐지하거나 개선해야 한다. 정부는 각 부처의 연말 평가에 입증책임 정비 현황을 반영, 규제 혁신을 가속화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규제 정부입증 책임제는 이보다 앞서 기획재정부가 지난 1월 말에 시범 도입했다. 최근에 문재인 대통령이 타 부처로의 조기 확산을 지시했다.
문 대통령은 1월 기업인과의 대화에서 이 제도가 상당한 규제 혁파 성과를 거뒀다고 평가했다. 이에 따라 국조실은 민간이 중심이 되는 위원회를 설치하고 행정규칙을 점검키로 했다.
이에 따라 부처들은 차관 등 부기관장 또는 민간인을 위원장으로 하고 민간위원을 과반수로 하는 규제입증위원회 구성을 완료했다. 대한상공회의소, 중소기업중앙회 등 경제단체도 참여한다. 규제 소관 국·과장이 위원회에 나가 규제 존치의 필요성을 입증해야 한다.
정부는 경제단체와 기업이 규제 개선을 건의한 기존 과제 가운데에서 부처가 '수용 곤란' 또는 '중장기 검토' 사항으로 답변한 과제도 재검토한다. 규제입증위가 이 과제부터 심의, 5월까지 완료할 예정이다.
규제 혁파의 사각지대에 있는 행정규칙(고시 등)도 입증책임제를 통해 정비한다. 각 부처는 현재 1만6000여개의 행정규칙을 운용하고 있다. 이 가운데 규제를 포함하는 규칙은 1800개에 이른다. 각 부처는 일차적으로 규제 개선 민원이 많고 시대에 뒤떨어진 분야를 2~3개씩 선정해 총 480개 행정규칙을 추려냈다. 규제 필요성을 입증, 5월까지 정비한다. 나머지 1300여개 행정규칙은 연말까지 정비한다. 정비 대상 행정규칙이 많은 일부 부처는 내년 상반기로 기한을 정했다.
정부는 기획재정부가 1월부터 시범 실시한 외국환거래·국가계약·조달 분야 입증책임제 결과도 발표했다. 기재부는 총 272건의 규제를 발굴, 이 가운데 83건을 폐지·개선하기로 했다.
외국환거래 관련 스타트업의 창업 활성화를 위해 소액해외송금업 자본금 요건을 완화(20억원→10억원)한다. 소액해외송금업자의 송금 한도는 건당 3000달러에서 5000달러, 연간 3만달러에서 5만달러로 각각 상향한다. 무인환전기를 활용하는 환전 영업자의 환전 한도는 하루 1000달러에서 2000달러로 높인다.
저축은행도 자산이 1조원 이상이면 해외 송금·수금 업무를 허용한다. 우체국에서 외국인도 우편환으로 해외송금을 할 수 있고, 단위 농·수협은 외환 송금뿐만 아니라 수금도 가능하도록 한다. 증권·카드사 해외송금한도는 건당 3000달러에서 5000달러로, 연간 3만달러에서 5만달러로 높인다.
조달 분야 입찰 경쟁 촉진을 위해 과도한 입찰 참가 자격 제한 규제를 폐지한다. 입찰 기업의 자금 부담을 낮추기 위해 입찰보증금은 지급각서로 대체할 수 있도록 한다.
기재부는 존치하기로 한 규제는 여건변화, 민간 개선요구를 종합 고려해 필요성을 다시 판단할 방침이다. 연내 조세행정·국유재산 등 기재부 소관 다른 분야로 입증책임제를 확대 실시한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장관은 “규제의 필요성을 공무원이 입증하도록 책임을 전환하는 것만으로도 상당수의 규제 혁파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 주는 조치”라면서 “앞으로 정부는 국무조정실 중심으로 규제 입증책임제를 전 부처로 신속하게 확산시키고, 정비 실적을 주기적으로 점검하겠다”고 말했다.
<주요부처별 행정규칙 정비계획>
문보경 정책 전문기자 okmun@etnews.com, 유선일 경제정책 기자 ysi@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