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양호 대한항공 회장이 국민연금, 소액주주 등으로부터 대표이사직을 박탈당했다. 2014년 '땅콩회항'부터 시작된 조양호 회장 일가의 '갑질'에서 비롯된 부도덕한 행위가 회사 경영과 주주가치에 피해를 입혔다는 이유에서다. 이로 인해 창립 50주년을 맞이한 대한항공은 '비전 2023' 경영전략, '국제항공운송협회(IATA) 연차 총회' 등 중·단기적 경영 계획에 큰 변화가 일어날 전망이다.
27일 서울 공항동 대한항공 본사에서 개최된 '제57기 정기 주주총회'는 조양호 회장 입장에서 경영권 '사수'가 걸린 중요한 날이었다. 사내이사 연임에 대해 반발이 심했기 때문이다. 조 회장은 우호 지분 33.35%를 비롯해 임직원 지분 위임, 외국인 투자자 설득 등 찬성표 확보에 나섰다. 하지만 이날 조 회장 연임을 찬성하는 표는 주총 추석 지분의 64.09%(4489만1614주)에 그쳤다. 조 회장은 1999년 대표이사가 된 이후 20년 만에 물러나게 됐다.
이에 따라 대한항공 이사회는 조원태 대표이사 사장을 비롯한 사내이사 3명, 박남규 서울대 교수를 비롯한 사외이사 5명 등 총 8명으로 구성됐다. 조 회장을 대신할 사내이사에 대한 계획은 아직 없다. 조원태 사장과 우기홍 부사장이 공동 대표로서 대한항공을 꾸려나갈 예정이다.
실질적인 경영권은 한진가 장남인 조원태 대표이사 사장이 갖게 될 전망이다. 조 사장은 2004년 대한항공 경영기획팀 부팀장으로 입사해 2009년 여객사업본부 본부장(상무), 2011년 경영전략본부장(전무), 2013년 화물사업본부장(부사장), 2016년 총괄부사장, 2017년 사장 등으로 승진했다.
조 사장은 지난해부터 '소통 리더십'을 앞세운 경영방식을 추구하고 있다. 지난해 3월 사내이사로 선임돼 2021년까지 임기가 남아있다. 또 한진가에서 경영권 참여가 가능한 유일한 사람이다. 다만 '인하대 부정 편입학과 졸업' 의혹을 받고 있어 경영상 리스크가 존재한다.
조 회장의 '우회 경영참여'도 배제할 수 없다. 조 회장은 대한항공 최대주주인 한진칼의 우호지분 28.7%를 보유한 1대주주이기 때문이다. 오는 29일 열리는 '한진칼 주총'에서는 조 회장 측근인 '석태수 한진칼 대표이사의 사내이사 재선임 안건이 채택된 상황이다. 행동주의 펀드 '그레이스홀딩스'를 비롯한 소액 주주 대부분이 반대하고 있지만, 석 대표의 재선임이 유리한 상황이다.
채이배 바른미래당 의원은 “조 사장의 경영 방식이나 조 회장의 경영 산업으로 대한항공이 피해를 입어서는 안된다”면서 “내년 혹는 후년에 조 회장이 다시 사내이사 후보로 올라올 수 있기 때문에 감시 역할을 지속적으로 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한항공 입장에서는 조 회장의 대표이사직 박탈로 경영 계획에 차질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당장 급한 것은 오는 6월 국내에서 처음 열리는 IATA 연차 총회다. 조 회장은 이번 IATA 연차 총회 의장을 맡을 예정이지만, 최고경영자(CEO) 자리를 박탈당하면서 무게감이 떨어지게 됐다. IATA 연차 총회에는 전 세계 120개국 280개 항공사가 참여하는 항공업계의 '유엔 총회'다.
지난해 미국 델타항공과 구성한 조인트벤처(JV) 사업에도 차질이 생길 수 있다. 대한항공은 올 4월 '인천~보스턴', '인천~미니애폴리스' 노선 등 JV 사업 안정화를 위한 미주노선에 본격 취항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조 회장의 공백으로 사업에 힘이 빠질 가능성이 높다. 또 2023년까지 연 매출 16조원, 보유 항공기 190대, 부채비율 300%대 진입 등을 달성한다는 경영계획 '비전 2023'도 추진력이 약해질 전망이다.
한편 재계에서는 조 회장의 사내이사 연임 불발에 대해 유감을 표했다. 전경련은 이번 주총 결과에 대해 사법부가 판결을 내리기 전까지는 무죄로 추정해야 한다는 대원칙에도 반하는 결과라고 지적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국민연금 의결권이 기업에 대한 경영 개입이 아니라 국민 노후자금의 수익성과 안정성 확보라는 재무적 투자자로서의 본질적 역할에 초점을 둬야 한다고 전했다.
류종은 자동차/항공 전문기자 rje312@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