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0일은 '전기의 날'이다. 식목일을 비롯해 여러 기념일이 4월에 있지만,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기념일이다.
구한말 기록을 담고 있는 '대한계년사(大韓季年史)'에는 '1900년 4월 10일 민간 최초로 종로 네거리에 3개의 가로등이 점등돼 전차 정거장과 매표소를 밝혔다'는 공식기록이 남아 있다. 이를 기념하고자 대한전기협회를 비롯한 전기산업계가 뜻을 모아 1966년부터 '4월 10일'을 '전기의 날'로 지정, 각종 행사를 개최한다.
실제 우리나라 전기 역사의 첫 시작점은 이보다 130여년 거슬러 올라가, 고종황제가 경복궁 건청전에 '첫 전깃불'을 밝힌 날, 바로 1887년 3월 6일이다. 에디슨이 40시간 장수명 백열전구를 발명한 1879년 11월로부터 불과 8년 후의 일이다. 중국과 일본보다 2년이나 앞선 전기 역사를 우리나라가 갖고 있다는 큰 의미도 숨어 있다. 16촉광의 백열등 750개를 동시에 켤 수 있었던 당시 건청전의 발전기(에디슨주식회사 제조)는 동양 최고 수준의 설비였다.
발전기는 발생하는 열을 물로 식히기 위해 향원정 연못가에 설치됐다. 칠흑 같은 어둠을 밝히는 전등을 두고, 물을 먹고 켜진 불이라는 '물불', 묘한 불이라는 '묘화(妙火)', 괴상하다는 '괴화(怪火)', 건들거리면서 자주 꺼진다는 '건달불' 등 여러 별명이 붙었다. 뜨거운 물로 인해 물고기가 떼죽음을 당하기도 해 '증어(蒸魚)'라 불리기도 했다.
점등 시간에는 건청궁 주위에 이 전깃불을 구경하려고 인산인해를 이뤘다 하니, 촛불에 익숙했던 사람들에게 전기가 제공하는 새로운 빛의 존재는 실로 큰 놀라움이었을 것이다.
그로부터 130여년 만에 우리 삶의 터전은 전등뿐 아니라 모든 것이 전기로 작동된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전기에 의한, 전기를 위한, 전기의 세상'이 됐다. '전기화(electrification)'라는 용어처럼 전기의 보급이나 사용 정도가 문명 수준을 평가하는 지표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생활 속 전기에 대한 인식은 어떠한가. '전기'하면 떠오르는 것은 첨단 기술 이미지보다 전깃줄, 전봇대 등 단순 설비들은 아닌가. 대학에서 전기·전자·컴퓨터가 하나의 학부로 묶여있던 시절, '전기'공학이 선택 사항이 아니었던 상황과 별 다름이 없다. 안타깝게도 세상은 전기를 실재 가치보다 훨씬 폄훼하고 있고, 이는 모두 전기전공자의 책임으로 귀착되고 있다.
전기가 순식간에 사라진 세상은 잠깐의 상상조차도 끔찍하다.
뉴욕(1965년), 북미(2003년), 대만(2017년) 등 과거 대정전 사태에서 근래 베네수엘라 대규모 정전 사고까지 현대 사회에서 정전은 재난과 재앙 자체다. 공항·지하철·항만 등 국가 기반시설은 일시에 마비되고, 공장은 곧바로 멈추며, 은행이나 기업의 소중한 정보는 송두리째 날아간다. 정전 상황이 장기간 지속되면 범죄가 횡행하고 국가 안보마저 보장받지 못할 수 있다.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빅데이터, 클라우드, 5G통신 등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이끌 거대한 기술과 웨어러블 로봇, 드론, 자율주행차, 스마트 공장, 3D프린팅, 첨단의료기기, 스마트 시티, 하늘을 나는 자동차 등 현실로 다가온 최신 기기들이 우리의 기대를 한껏 부풀린다.
이러한 기술과 제품을 활용하려면 안정적 전기 공급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기존 수력, 화력, 원자력은 물론 태양광, 풍력, 연료전지 등 신재생에너지와 에너지저장시스템(ESS)을 연계한 첨단 전력공급 체계가 뒷받침돼야 한다. 스마트그리드, 고압직류송전(HVDC) 등 최신 송전 기술과 인프라도 함께 어우러져야 한다. 이 모든 에너지원과 기술, 기기는 '전기'라는 뿌리에서 나온 가지들이다.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세 개의 기(氣)가 공기, 습기 그리고 전기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지만 존재는 확실하다. 새삼 전기의 고마움과 소중함을 '찌릿찌릿'하게 느끼게 하는 4월 10일 '전기의 날'에 다가올 전기세상을 위한 '전깃불'을 밝히고자 스위치를 올린다.
최규하 한국전기연구원장 ghchoe@keri.re.kr
-
임동식 기자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