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무역기구(WTO)가 다음 달부터 디지털 통상 규범 정립에 나서는 가운데 우리 정부가 전자상거래 분야에 '자유화'(비차별) 원칙을 요구하는 한편 글로벌 플랫폼 기업에 대해서는 '공정 경쟁'을 주장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디지털 통상 규범 협의가 향후 3개월 동안 잇달아 열리는 만큼 우리 정부의 대응이 주목된다.
8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WTO는 다음 달 스위스 제네바에서 국제 디지털 통상 규범을 논의하는 'WTO 전자상거래 협상'을 시작한다.
WTO 전자상거래 협상은 다자 기구 차원에서 처음 열리는 디지털 통상 협상이다. 그동안 자유무역협정(FTA) 등 양자 협의 차원에서 논의돼 온 디지털 통상 규범을 국제 공통 규범으로 확장하기 위한 논의를 진행한다.
산업부 관계자는 “지난해에 열린 회의는 디지털 통상 이슈를 정리하는 차원이었다”면서 “다음 달 열리는 회의에서는 실제 디지털 통상 규범 제정 내용과 방식을 논의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우리나라를 포함해 미국, 일본, 노르웨이 등 총 76개국은 지난 1월 열린 세계경제포럼(일명 다보스포럼)에서 WTO 전자상거래 협상 지지를 공동 선언한 바 있다. 다음 달 열리는 회의에서도 이들 주요국이 참석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미국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개정 협정인 미국·멕시코·캐나다협정(USMCA) 등에서 국경 간 데이터 이동을 논의한 만큼 디지털 통상 규범 협의에서 목소리를 높일 것으로 전망된다.
우리 정부는 WTO 전자상거래 협상에서 우리나라 강점인 전자상거래 분야에 대해 자유화 원칙을 주장할 예정이다. 구글·아마존 등 글로벌 플랫폼 기업에 대해서는 공정 경쟁을 적용해야 한다는 논리를 펼칠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 전자상거래가 세계 경쟁력을 갖췄기 때문에 교역을 확대하는 것이 우리나라에는 유리하다.
실제로 유엔무역개발협의회(UNCTAD)에 따르면 2016년 국내 전자상거래 산업 규모는 1조달러로, 세계 5위를 기록했다. 전자상거래 수출 절반이 중소기업인 만큼 교역 확대 시 우리 중소기업이 혜택을 볼 것으로 예측된다.
이와 관련해 산업부는 8일 열린 대외경제장관회의에서 관련 사안을 보고했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에도 대응 방안을 설명할 예정이다.
1998년 WTO가 '전자상거래 작업계획'을 채택했지만 이후 디지털 통상에 관한 국가 간 논의는 20년 동안 공전됐다. 그러다 지난해 디지털 통상 규범 정립을 위한 비공식 회의를 아홉 차례 열면서 논의의 물꼬를 텄다.
WTO는 오는 5~7월 디지털 통상 규범 협의를 열 계획이다. 산업부에서는 지난해 4월 디지털경제통상과를 신설하고 관련 작업을 위한 밑그림을 그려 왔다. 향후에도 세계 각국이 디지털 통상 규범을 둘러싼 논의의 초석을 다질 것으로 보인다.
산업부 관계자는 “현재 (디지털 통상 규범 제안서) 방향은 세웠고, 관련된 규범 텍스트를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다”면서 “이달 말까지 관계 부처와 협의해 (제안서) 초안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변상근기자 sgbyun@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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